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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쫑쫑 Apr 07. 2020

불만족

무엇이 나를 우리를 불만족으로 이끌까?

어느 날, 내 후배는 우울증이 있는 거 같다고 나에게 말했다. 아이를 어렵게 가졌지만 그 어렵게 가진 아이 때문에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집에서 아이 우유 챙기는 일, 남편 기다리는 일, 우는 애 달래는 일등 자신의 하루가 무가치하게 느껴진다고 했었다. 나는 애가 없으니까 그녀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무엇인가 그녀의 삶에 불만이 아주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표정과 말투, 눈빛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물론 이 또한 지나갈 것이고 아이가 조금 더 크면 그녀는 다시 자신의 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그때의 우울은 지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또다시 그때의 우울함이 아닌 다른 우울함이 그 자리를 매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항상 끊임없이 찾아오는 우울함과 불만족스러움을 견디거나 모른척하며 살아가니까.


도대체 왜 우리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우울함 불만족스러움을 견디며 살아야 할까? 원하는 직장을 가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원해서 애를 낳았는데도 말이다. 인간은 원래부터 그런 존재일까? 애초부터 완벽한 만족이라는 것은 없는 것일까? 


나는 14년 차 카피라이터다. 10년 동안은 정말 행복하게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을 즐겼다. 남들이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쓸 때 없는 생각이라 하더라도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고 오랫동안 생각한 것의 결론이 나오고, 아이디어가 되는 그 과정을 즐겼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 일이 1도 재미없다.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즐겁지가 않다. 왜 나에게 이런 불만족이 생긴 걸까?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해봤다. 지난 세월 동안 광고업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서? 유학을 다녀온 후 더 나은 일이 있을 거 같아서? 수없이 많은 생각들을 했지만 무기력하게도 나는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냥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마 내 후배도 나와 같이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울함이 그녀를 삼켰을 것이다. 나 또한 지금의 상황을 견뎌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견뎌야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애썼다. 그래야 내 마음이 덜 우울할 것만 같았다. 이런 이유를 찾으려고 애를 쓰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비겁하게 나의 합리화를 하려는 걸까?라는 걱정도 함께했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나도 참). 그래서 결국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Anyway.


내 경험을 비춰보았을 때 불만과 우울은 자신이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나타나는 것 같다. 물론 상황을 바꾸면 되겠지만 모두들 알지 않나 현실적으로 어떤 상황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어떤 사람들은 자기 합리화는 변명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신건강에 이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 매사에 이런 식의 합리화를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겠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엔 합리화는 부정적인 생각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합리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늦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질 생각이니 지금 현재 회사를 나가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애를 낳고는 회사를 나가자. 이 일은 더 이상 나에게 호기심이나 흥미를 자극하지 않으니까. 조금만 견디어 보자라고 지금을 견뎌야 하는 나만의 합리화를 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끊임없이 찾아왔던 불만족했던 생각들이 조금은 무뎌지기 시작했다. 몇 년후에 다른 회사에 취업하기 힘들면 사업을 하자라는 생각으로 나는 지금을 잘 넘어가고 있다. 


평생을 행복하게만 살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기가 처해있는 상황이 바꿀 수 없다면 그래서 너무 불만족스럽고 우울하다면 우리 그냥 자기 합리화를 해보자. 누군가 변명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은 나의 상황을 모르니까. 나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나의 마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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