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계속 평범하게 주입 중
옛날 같은 감정이 없다. 폭풍처럼 무언가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딱히 하고 싶은 것 없이 시간을 스쳐 보내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생활이 나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아주 만족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비싸지 않으면서 내 입에 부드러운 와인을 찾아 좋은 사람들과 저녁을 먹는다거나, 남편과 소파에 뒹굴 거리다 얼굴 마주치면 장난을 치다 뽀뽀를 한다거나, 다른 회사로 지금 파견을 와있지만 여기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서로 힘든 이야기를 하다가도 웃으면서 일을 하는 등. 20년 전 내가 일본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었을 때의 그런 아주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다.
가끔 20대의 나를 떠올려본다. 아주 감정에 충실했던 나의 스무 살. 그때는 혼자 방황도 많이 했고, 이별을 하고 많이 울기도 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겪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었던 나날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서 슬픔을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나의 20대는 그저 회사에 대한 불만과 반복된 사랑과 이별로 점철되어 지나갔다. 그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아파할 줄 아는 내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후회는 하지 않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뭉뚱그려 그때를 떠올리면 힘들었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나의 30대는 어땠을까? 회사를 박차고 나오기 전까지 그러니까 34살 까지는 정말 결혼을 하기 위해 애를 썼었다. 물론 회사 생활도 힘들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꾸역꾸역 살았다고나 할까? 디테일한 것들은 생각나지 않지만 나는 왜 그때 그렇게 멋모르고 감정에 충실하면서 살았을까? 조금 더 톤 다운된 감정으로 평화롭게 살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유학을 다녀오고 난 30대 후반은 이 전과는 몰라보게 많이 달라졌다. 나는 예전처럼 열심히 살지 않았다. 유학 시절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애를 쓰지 않아서 인지, 그렇게 감정의 널을 뛸 일이 없어서 인지 감정이 많이 무뎌졌다. 어느 정도 평화로움이 찾아왔다. 감정도 쓰면 쓸수록 그 감정이 발달하는 게 아닐까?
지금의 나는 혼자였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이런 게 아닐까? 살면서 점점 남편을 존경하게 된다.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리지 않은 걸 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되고 싶어 진다.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모든 감정이 눈 녹듯 사라진다. 가끔씩 찾아오는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들도 그가 어루만져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가 된다. 그런 게 좋다. 우린 서로에게 가장 허물없는 어린이다. 언제까지 그렇게 될지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오는 순간은, 둘 만의 공간에서는 그렇게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이 좋다.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아주 평범한 나의 일상을 무료하고 재미없고 열정이 없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이 안에서 좋은 것들을 만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갑자기 동화같은 마무리지만 이런 동화같은 삶을 나는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