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때로는 피곤할 정도로, '젊음'에 집착한다.
중학교 2학년이 초등학교 4~5학년을 보면서 '이야 우리 늙었네, 아재네'한다니 말 다했다.
그 덕에, 세대를 '판별'할 수 있는 도구들도 꽤나 많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후에 올 가사를 묻는 것이 대표적이다. 여담이지만, '사랑스러워'를 떠올린다면, 아재다. 20대는 '핫이슈'를 떠올리고, '젊은' 10대는 '오로나민씨'를 떠올린다고 한다.
오늘은 또 다른 '세대 판독기'에 대해 이야기 해 보려고 한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뒤에 올 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1.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2.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초등학교 때부터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마다 지겹게 들었던, "국기에 대한 맹세"다.
1번과 2번 중 어느 쪽이 "젊음"을 증명하는지는, 이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 같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처음 만들어진 건 1968년이다.
그 당시의 문안은 이러하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4년 후인 1972년에는 한 차례 수정을 거친다.
연령대에 따라 익숙하게 느낄 수도 있는 버전이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그리고, 현재 국기에 대한 맹세는 다음과 같다.
2007년에 수정되었으니 2000년 이후 출생자들은 이 버전만을 듣고 자란 셈이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빰빰바밤- 하는 웅장한 음악과 함께 넓은 운동장에 울려퍼지던 국기에 대한 맹세는 꽤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기억 저 편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떠올려보면,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날이 추우나 더우나 수많은 초등학생들이 줄 지어 서서 태극기를 향해 '경례'하는 모습은 때로는 괴랄하기까지 하다. 그 경례가 또 어디 그냥 경례였던가. '앞 친구 뒤통수 이외에 다른 것들이 보여서는 안된다'는 강요에 가까운 주의를 수도 없이 들으면서, 한 치의 오차 없이 줄을 딱 맞추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지 않았던가. 앞 친구와 '앞으로 나란히' 또는 '양팔 벌려 좌우로 나란히' 간격으로 서 있으면 내가 정확히 저 친구 뒤에 서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잘 서 있는 것이 맞나,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담임 선생님이 학급 홈페이지에 북한 초등학생들의 애국조회 영상을 올리면서 "우리가 얘네들 반만큼이라도 줄 맞췄으면 좋겠다~"하는 글을 썼던 기억도 아직 남아있다.
그 기원이 군사독재든 일본 군국주의든, 확실히 국기에 대한 맹세니 경례니 하는 것들은 전체주의의 잔재다. 이러한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최근 국기에 대한 맹세는 과거의 영광을 잃은 듯한 모습이다. 길을 가다가도 5시에 국기 강하식이 시작되면 그 자리에 멈춰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게 하던 시절은 스러지고, 어릴 때부터 무비판적으로 행해 왔던 일들에 반감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 역시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한 치의 오차없이 줄을 맞추려 노력했던 어린 날의 내가 괴상하게 느껴졌다.
앞으로도 국기에 대한 맹세와 경례는 계속해서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국민이 국기와 그것이 상징하는 국가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의식이기 때문에, 아무리 문안을 수정하고 의식을 단순화해도 국가주의적 색채를 완전히 빼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이 왜 국가에 충성해야 하는가?'
하는 논쟁은 국민의례가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는 논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조금 느리지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 하다.
2007년 수정 문안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라는 구절을 주목할 만 한데,
'조국과 민족'이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바뀐 건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다문화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조국과 민족'이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는 자각이고,
둘째는 국민이 '충성'을 다할 대상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 국한된다고 명시한 것이다.
이는 달리 해석하면 대한민국이 '자유롭거나 정의롭지 않다면' 국민은 충성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옛날 로크를 비롯해 숱한 서양 사상가들이 이야기했던 민중의 저항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