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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Nov 15. 2022

소리와 방향을 삼키는 원시림의 비밀

시 오브 트리스 (2015) - 구스 반 산트 | 겨울의 납량특집




'시 오브 트리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수해’라는 제목의 영화는 구스 반 산트라는 꽤나 유명한 감독이 나오미 와츠와 매튜 매커너히, 그리고 와타나베 켄이라는 유명한 배우들과 만든 영화다. 사실 이 영화가 납량특집에 적합한 영화인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영화, 곱씹을수록 서늘하다.


영화는 아무런 설명 없이 아서 브레넌이라는 남자가 혼자 짐도 하나 없이 일본으로 떠나 아오키가하라 숲에 도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숲의 입구에서부터 각종 경고문이 가득하고 출입을 막기 위해 쳐진 금줄을 건너 서자 마자 보이는 것은 나무들 사이 누군가 죽은 뒤 남기고 간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 뿐. 심지어 죽은 지 오래지 않은 시체도 보이는 것 같다. 그 숲 한가운데 도착한 아서는 아내인 조안 앞으로 온 우편물을 바닥에 던진 뒤 아마도 수면제 혹은 신경안정제로 보이는 알약을 삼킨다. 그리고는 휘청이며 숲 속을 헤매고 다니는 한 남자를 발견한다. 도움이 필요한 듯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물을 건네고는 그에게 나가는 길을 가르쳐 주지만 남자는 찾지 못한 채 되돌아오고 아서 역시 길을 잃고 만다. 그렇게 두 남자는 아오키가하라의 출구를 찾아 떠돌고 아서는 계속 죽은 아내를 기억한다. 타쿠미라는 남자는 아오키가하라는 ‘연옥’이라고 불리운다고 하고 그곳에는 혼령들이 떠돈다고 알려준다. 숲을 나가는 길은 험하고 아서는 타쿠미와 대화 중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은 상실감 때문도 슬퍼서도 아닌,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온 것이라 고백한다. 그리고 가장 깊은 밤, 숲 속에서 아마도 숲이 잡아두고 있을 보이지 않는 아내에게 통곡하며 사과한다.



숲이 우리를 가둔다는 말인가요?
숲이 영혼을 잡고 있는 거지요. 영혼이 떠나고 나면 꽃이 피어요.

일본에는 수해(주카이), 그러니까 나무의 바다로 불리는 숲이 있다. 후지산 북서쪽, 864년 후지산 분화 당시 용암이 흘러내려 식은 자리에 만들어진 아오키가하라 숲은 약 3천 헥타르, 30km^2로 여의도의 10배 정도 되는 크기로 후지 하코네 이즈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이곳이 자살명소로 유명해진 것은 마츠모토 세이초의 소설 <파도의 탑>이 일으킨 베르테르 효과 때문이라는데, 이곳에 와서 자살을 하는 사람의 수가 월등하게 많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이후 CNN에서는 세계 7대 괴기 장소로 선정되고, 유튜브 등에서 끊임없이 괴담이 소개되고 소비되는 과정에서 이 죽기 좋은 곳의 이미지로 굳어버렸다는 것이 정설. 나침반이 돈다거나 나갈 수 없다거나 하는 여러 도시전설은 다만 전설일 뿐, 울창한 숲 속에서 방향을 찾기 어렵고 소리가 먹히는 듯 느껴지는 것은 어느 숲이든 마찬가지이다. (용암에 포함된 철 성분이 영향을 미친다는 설도 있고, 구멍이 뚫린 화강암이 흡음판 역할을 한다는 설도 있지만, 증명된 사실은 아닌 듯하다.)



숲은 두려운 공간이다. 사실 지금이야 대한민국 어디를 가든 핸드폰이 연결 안 되는 곳 찾기가 힘들고 어느 산을 가든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길을 잃는 것도 쉽지 않다고는 하지만 숲은 아직 품고 있는 많은 비밀을 무기로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한다. 오랜 역사 속 숲은 산적들과 도망자들의 공간이었고, 산군이라고 하는 호랑이의 앞마당이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들려주는 밤길 산속을 걷는 나그네의 이야기로 얼마나 많은 여름밤들을 시원하게 보냈는지 모른다. 그때의 막연한 공포는 이제 불 켜진 산책로와 야자매트나 데크로 깔린 등산로 아래로 숨어들었지만, 달빛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밤 부엉이 소리가 들릴 때 기억은 스멀스멀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어디에서 우는지 알 수 없는 소쩍새 소리와 지나는 바람에 춤추며 노래하는 나뭇잎들, 아무도 없는 듯 해 보이는 곳에서 들리는 낙엽 밟는 소리. 모두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디에서 오는지 무엇인지 모를 때는 머리끝을 세우는 공포가 된다. 등 뒤로 흘러내리는 내 땀조차 흐르는지 모를 땐 누군가의 손길 인양 섬뜩하다. 내 얼굴에 날아오는 이름 모를 곤충들이 두려운 것도 누구인지 몰라서 일 것이다. 고속도로 양 옆 깎아낸 산의 사면을 덮은 칡이 두렵게 느껴진 것도 개척자 정신으로 무장한 덩굴식물을 몰라서 그런 걸 지도 모른다. 그렇게 모르는 것은 두려움을 일으키고, 그 두려움이 태어날 때 알 수 없는 것들의 그림자는 내가 가진 공포를 먹고 그 형태를 갖춘다. 아마도 숲을 공부하고 싶었던 또 다른 이유인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알고 나면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이해하면 숲의 모든 동식물에 대한, 유한한 생명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덜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뜬금없는 덧글 1

나는 공포영화를 좋아한다. 공포영화가 만들어 내는 날카로운 분위기와 긴장이 좋고, 알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는 세상이 기껍다. 통제된 아드레날린이 만들어 내는 자극에 감사했다. 그러다 영화라는 장르에 익숙해지면서 영상을 통해 공포를 만들어 내는 문법을 알게 된 뒤로 공포영화는 힘을 잃고 말았다. 점점 더 나를 진짜 무섭게 하는 공포영화를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리고 영화 속 세상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 현실에는 훨씬 많다는 알게 되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뜬금없는 덧글 2

얼마 전 우리나라에 ‘지리산’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었다. 여러모로 욕을 많이 먹은 드라마이긴 하지만 지리산을 헤매며 살인자를 찾는 생령이라는 콘셉트는 흥미로웠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스토리나 배우들보다 더 중심에 있었던 것은 지리산이었던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품은 어머니 산, 지리산이 만들어 내는 공포는 어떤 모양일까?


뜬금없는 덧글 3

작년 고령산에서 ‘밤숲’이라는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여 산속에서 비박을 할 기회가 생겼다. 고령산에서의 밤, 숲은 평화로웠고 신비로웠으며 포근했고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아는 숲이어서 일까? 아니면 사람들과 함께였기 때문이었을까? 일본의 아오키가하라 숲은 사실 원령공주의 숲인 야쿠시마와 함께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사실 숲이 만드는 신비로움과 공포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종이 한 장의 경계는 사람들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겐 고령산도 공포의 숲으로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이야기.


뜬금없는 덧글 4

공교롭게도 ‘시 오브 트리스’가 나온 바로 다음 해에 같은 아오키가하라를 배경으로 한 ‘포레스트: 죽음의 숲’이 나왔다. ‘시 오브 트리스’가 아내를 잃은 남자의 후회와 상실,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조금은 철학적인 공포를 로맨스로 다룬다고 하면 ‘포레스트: 죽음의 숲’은 좀 더 아오키가하라라고 하는 숲의 공포를 적나라하고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아오키가하라 숲에서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어진 쌍둥이 동생 제스를 찾기 위해 일본을 찾은 사라는 아직 동생이 살아있다고 믿고 숲의 길을 알고 있는 가이드 미치, 기사 소재를 찾는 저널리스트 에이든과 함께 숲으로 간다. 그리고 죽기 위해 찾아간다는 숲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 듯, 사라는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 딱히 잘 만든 영화도 아니고 깜짝 놀라게 하는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그리 무섭지도 않다. 하지만 아오키가하라 숲을 소재로, 아니 어떤 숲이든 알지 못하는 깊은 숲을 공포영화의 소재로 삼는다면 딱 이 정도로 나올 것 같다. 혹시라도 납량특집이라고 해 놓고 너무나 말랑말랑한 ‘시 오브 트리스’에 실망하신 하드코어 공포영화 팬이 계신다면… 더운 날 땀 식히기에는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포레스트: 죽음의 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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