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 the ground (2020) - J. 티켈, R.H.티켈
나에게 우디 해럴슨이란 배우는 골칫거리, 악동, 말썽쟁이의 이미지였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내추럴 본 킬러 (1994)'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자의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우디 해럴슨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지구의 토양 이야기는 사뭇 낯설었다. 하지만 그는 꽤나 활동적인 환경운동가로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이야기하는 사회운동 프로젝트인 보이스 유어 셀프 (Voice Yourself https://voiceyourself.com/) 를 추진하고 유제품 뿐 아니라 설탕과 밀가루도 먹지 않는 엄격한 비건이라고 한다. 그런 그의 활동 경력을 알고 난 뒤에 보기 시작한 영화 속 그의 목소리는 조금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영화 속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한다. 보존 농학자, 재생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농부, 사회운동가들과 과학자, 그리고 유명 배우들, 그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그리고 제안한다. 우리가 직면한 이 거대한 기후변화라는 재해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우리 발아래 놓여있다고.
기후변화와 탄소배출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로 영화는 시작한다. 이미 지구의 2/3이 사막화되어 가고 있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지금까지 탄소를 고정하는 토양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무시해 오면서 가속화되어 가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물의 뿌리로 가득 찬 토양 속 미생물들이 탄소 글루를 만들어 토양 속에 물과 함께 탄소를 고정시키는 기제에 대해 설명하고,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만들어 낸 질소비료와 살충제가 만들어낸 산업형 농업이 지금까지 토양을 얼마나 망가뜨려 왔는지, 그렇게 망가진 토양이 뱉어낸 탄소가 기후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무시무시한 음악과 함께 전달하며 공포심을 자극한다. 그리하여 지금 당장 토양을 구할 방법을 실행하지 않으면 60년 이내 지구상의 모든 표토가 사라질 것이라 주장한다. '나는 이미 포기했다'라고 말하는 우디 해럴슨의 목소리에 동조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4월, 경운을 하는 동안 전 세계의 토양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화면에서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동안 공포감은 극대화된다. 그러다 6월이 되고 식물이 자라나기 시작한 뒤 화면에 보이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급감하는 모습은 놀랍다. 그리고 바로 다음 타임랩스로 촬영된 식물이 자라는 모습은 너무나 황홀하리만큼 아름답다. 그렇게 식물이 지구 대기 속 탄소량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꿈틀거린다. 그리고 이어 소개하는 생물학적 탄소 격리 방법을 듣고 있으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차오른다. 하지만, 이 가능성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의 영역이 필요하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노골적이고 야비한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정치계의 기후논의는 뜬구름 잡기 일 뿐이다.
2015년 파리에서 진행된 COP21 기후변화 협약에서는 그저 말뿐, 무엇 하나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중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해 보이는 제안이 하나 프랑스의 농무부 장관인 Stephan Le Foll로부터 소개되었다. 프랑스의 농무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제안하고 그가 소개한 4/1000 계획은 전 세계의 토양의 탄소 보유량을 매년 0.4%씩 증가시켜 이를 통해 인류가 매년 배출하는 양만큼의 탄소를 토양 속에 격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토양은 그 무엇보다 가장 빨리 그리고 많이 탄소를 격리하여 저장한다. 실질적으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무기로 토양을 지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이는 농경지에 주입하는 각종 화학약품을 차단하는 것을 통해 실행된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나라들이 이 제안에 즉각 동의하여 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최대 농업국인 인도, 미국, 그리고 중국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심지어 트럼프 정부에 들어선 미국은 파리협정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비겁한 정치계의 행보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진행 중이다.
드로다운: 증가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이지 않는 대책이 아닌 적극적으로 대기 중 이산화 탄소의 양을 줄이는 방식을 이야기하는 용어이다. 토양을 치유함으로써 기후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기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토양을 이용하여 탄소를 포집하고 식물의 광합성과 토양 속 미생물을 이용해 탄소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이미 실행하고 있다. 바로 '재생'을 기반으로 하는 농법을 통해 구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단일 수종이 아닌 여러 수종의 나무를 심어 과일 숲을 만들고, 환경오염의 주범 중 하나로 여겨지는 목장 역시 방목을 통해 재생하는 목장으로 운영한다. 무경운 농법을 이용한 재생의 선순환을 유지한 채 농사를 짓는다. 이런 방식의 농업은 땅을 경운 하지 않아 물이 순환할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종류의 작물을 심어 여러 종류의 뿌리과 연결된 토양생태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자유롭게 방목된 동물들이 거니는 방목지는 탄소를 격리하는 능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증가한다. 더 풍부하고 살아있는 토양이 된다.
'재생'은 도시에서도 일어난다. 쓰레기 관리를 통해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의 퇴비화를 통해 토양을 살리는 샌프란시스코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 여기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재생'을 이야기한다. 유명한 배우인 패트리샤 아퀘트는 퇴비 화장실 보급에 나서서 순환의 과정 속에 포함시켜야 하는 인분을 노래한다. 그렇다, 똥은 순환의 궤 안에 남아 있어야 한다.
나무 심기를 통해 기후변화를 조절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토양을 건강하게 만들어 초지로 만드는 일은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일이고 몇 년 안에 결과를 볼 수 있는 일이다. 영화 속에 짧게는 15년 안에 3만 5천 제곱미터의 땅이 회복되는 과정이 소개되었다. 이러한 토양의 재생은 기후의 균형을 맞추는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재생된 토양 위의 지구는 그 상태로 낙원의 모습일 것이라고 배우 이안 서머 홀더는 이야기한다.
인류의 초기 문명을 이끌었던 많은 곳들이 지금은 사막화되어 있다. 마치 인간 문명은 지구 환경을 먹어치우고 번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제발 인간이 과거를 돌아보고 지난 실수로부터 배울 줄 아는 존재들이길 바란다. 토양의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디 해럴슨은 이야기한다. 자기도 포기하지 않았으니, 당신도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가 그들(토양과 토양 속 미생물)을 돌본다면 그들도 우리를 돌봐줄 거예요
If we take care of them,
they will take care of us.
뜬금없는 덧글 1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많은 다큐멘터리들 중 이 만큼이나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있었나 싶다. 영화 속 희망에 가득 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눈물이 핑 돌았다. 경운 된 토지 속 죽어가는 생명과 자연농법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가득한 방목장의 상태를 비교하는 장면은 비통했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과 세금으로 더 많은 화학제품이 땅에 뿌려지고 그렇게 죽어가는 땅을 보면 화가 났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졌다.
뜬금없는 덧글 2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 스타벅스에 앉아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다. 무엇을 먹는가, 무엇을 사는가, 그리고 무엇을 싸는가에 해답이 있다 하는데, 공정무역을 하고 있다 주장하지만 다국적 기업인 스타벅스에 앉아 탄소발자국이 길기로는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커피를 마시면서 환경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물을 찔끔거리고 코를 훌쩍이는 나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