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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명의여명 Dec 30. 2022

나도 그 시절 내 여름의 왕이었다

킹 오브 서머(2013)-조던 보트-로버츠


흐르는 시간과 사계절의 변화는 종종 인생의 여정에 비유되곤 한다. 여름의 끝은 그래서 뜨거운 열정과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 청춘의 마지막이라 불리기도 한다. 새벽바람이 차가워진다 싶은 것이 여름의 끝인가 싶은 날, 숲에서 여름 한철을 뜨겁게 지낸 청춘들의 드라마를 보고 싶었다.



엄마가 죽고 누나가 떠난 뒤 아빠와 둘만 집에 남은 고등학생 조는 삐걱대는 아빠와의 생활을 견디기 어렵다. 단짝 찐구 패트릭은 숨 막히게 조아대며 통제하려는 부모님에게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몸에 두드러기가 날 만큼 괴롭다. 존재감도 희미한 비아지오는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학교의 괴짜이다. 어느 날 우연히 숲 속의 공터를 함께 발견한 조와 비아지오는 조의 단짝친구 패트릭과 함께 숲 속에 그들만의 집을 만들어 갑갑한 일상과 부모님과의 갈등으로부터 탈출한다.




영화는 성장 그리고 성장통에 대한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하다. 책과 건축현장을 훔쳐본 데서 얻은 지식과 굳이 찾지 않아도 넘쳐흐르는 십 대의 상상력만 갖고 셋은 집을 지었다. 여기저기 버려진 폐품들과 부모님 지갑에서 (훔쳐)나온 돈과 공구로 충분했다. 본인들을 찾을 부모님에 대비해 핸드폰은 멀리 가는 버스에 실었다. 준비는 끝났다.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여름 내내 지어놓은 숲 속의 집으로 들어가는 날 밤, 어두컴컴한 비 속에서 패트릭은 탈피 중인 매미를 본다. 아직 날개도 마르지 않아 보이는 매미는 건드려도 도망가지 못하고 움찔댈 뿐이고, 베리류를 채집하다 발견한 뱀의 허물은 성장의 과정에 남겨지는 흉물스럽고 두려운 그 무언가이다. 그리고 그 뱀에 물리는 순간 그들 모두는 그 낙원에서 추방된다.




There is no time in the woods! Lets go exploring!
숲 속에 (무언갈 해야 하는) 시간 따윈 없어! 나가서 탐험하자!

첫날 아침, 큰 나무로 둘러싸인 아늑한 숲 속의 평지에 지어진 집의 문을 열고 나온 조의 얼굴은 새로운 자유로운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있다. 동물의 생명을 취하는 데 대한 거부감으로 사냥을 하지는 못하고 부모님께 훔쳐 나온 돈으로 먹을 것을 사서 지내고 있지만, 제가 마련한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싸워서 얻어내었다고 느끼는 그 자유는 조 자신이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세 친구가 숲 속에서 지내는 처음 며칠 동안의 일상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천국 같다. 숲 속의 모든 곳이 그들의 놀이터요 테마파크다. 마쉐티 정글도를 휘두르며 수박을 쪼개고 비탈에서 물로 뛰어든다. 밀밭처럼 펼쳐진 들판에서 달리기 하고, 숲을 관통하는 관을 두들기며 비트를 타고 춤을 춘다. '숲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책은 아직 그 쓸모를 찾지 못했다.



고사목이 쓰러지고, 갈등이 표면으로 떠오른다. 친구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고 우정은 잣대에 올랐다. 그리고 패트릭과 비아지오가 떠난 숲에 혼자 남은 조와 아빠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병원에서 아버지가 건네주는 것으로 손을 씻고 수염을 깎는 조의 모습과 숲의 모습이 교차된다. 들판은 누렇게 변해있다. 태양은 물에 잠겨 힘을 잃은 채 반짝인다. 아이는 성장하고 숲의 계절도 가을로 넘어갔다. 그렇게 조의 여름이 끝났다.



영화 속 숲의 식생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아 친근했다. 떡갈나무처럼 보이는 참나무와 고로쇠나무가 북미를 점령하고 있다는 칡인가 싶은 덩굴이 몇몇 나무를 덮고 있다. 물가엔 버드나무 같은 것들이 보이고 패트릭이 채집한 과일들을 보니 사과나무와 산딸기, 혹은 블랙베리 같은 관목들도 있나 보다. 조가 비밀리에 시장을 보러 다니는 마트로 가는 길 주변에는 뽕나무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땅은 낙엽으로 덮여있어 푹신하고 들쥐와 토끼와 사슴, 뱀, 까마귀와 올빼미가 살고 있다. 건강한 숲이다. 그 숲 속에 덩그러니 남은 세 친구의 집 한 채는 곧 숲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렇게 그 들의 여름도, 청춘도 숲의 일부가 되겠지. 우리 모두는 그렇게 그 여름의 왕들이었다.



겨울의 한 복판, 한 해를 넘기는 시점에서 여름을 추억해 본다.




뜬금없는 덧글1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등장한다. 시야가 좁고 잔소리 많은 패트릭의 엄마가 여러 번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휠체어를 타고 있는 분을 위해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는 사람도 그 패트릭의 엄마다. 세상에 나쁘기만 한 존재도 착하기만 한 존재도 없다. 다 각자 당면한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애꾸눈이 생각났다.



뜬금없는 덧글 2

영화에 계속 보이는 새 중에 올빼미가 있다. 납작한 얼굴에 세상의 모든 지혜를 담고 있는 듯 한 눈을 가진 올빼미와 부엉이를 구별하기 어려워 글을 쓰면서 찾아보았다. 부엉이는 눈썹과 연결되어 머리 위로 솟아잇는 눈썹으로도 보이고 귀로도 보이는 '귀깃'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영화에 보이는 친구는 올빼미.



뜬금없는 덧글 3

영어 제목은 the kings of summer, 여름의 왕들이다. 개봉 전 영화가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되었을 때의 제목은 Joe's House, 조의 집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조 지만, 그 여름은 조와 패트릭, 비아지오 모두의 여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제목을 바꾼 것이 아닐까? 한국어제목에 복수형을 없애버리면서 감독이 제목을 바꾸면서까지 의도했던 의미가 사라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여름이 있었다.

그 여름에 우리는 모두 왕이었다.

겨울이라 할 수 있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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