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드 제단화: 나도 아기를 가지고 싶어요
한때 '장르를_시작도_못하게_해보자' 라는 인터넷 밈이 유행한 적 있었다. 어떤 순간의 대사나 상황을 바꾸어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사건을 원천 봉쇄하는 놀이다. <선녀와 나무꾼>에서 '혹시 이 쪽으로 사슴이 지나가지 않았습니까?' 하는 사냥꾼의 질문에 나무꾼이 '저 덤불 속에 숨어 있습니다.' 라고 정직하게 대답한다거나, 슬램덩크에서 '농구 좋아하세요?' 라는 채소연의 질문에 강백호가 '아니?' 라고 대꾸하는 식이다. 이 놀이를 크리스트교에도 적용해 본다면, 아마 그 순간은 <수태고지>가 될 것이다.
이 순간 마리아가 거부를 표시했더라면 아마도 이 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구원의 조검이 성립하려면 일단 예수가 사람으로 태어나야 했으니,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가 임신을 알리는 '수태고지'는 크리스트교 역사의 예고편이자 시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교회에서, 궁전에서, 집 안에서 이 기념비적인 사건이 재현되기를 원했고, 자신이 그 순간의 목격자가 되기를 바라며 미술 작품을 주문했던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앞서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의 수도원 벽화를 살펴보며 '수태고지'가 해당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것 처럼 묘사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이러한 현상은 같은 시기 북유럽 미술에서 더 빈번하게 나타난다. 14세기 후반 남부 네덜란드와 독일 지역에서 ‘데보티오 모데르나( Devodio Moderna)’라고 불리는 교회 쇄신 운동이 유행하게 되는데, 이 운동의 특징 중 하나는 명상을 통해 성경 속 장면에 자신을 투영시키는 기도법이었다.
이러한 관습은 곧 교회 미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탄생, 수난, 부활 등 성경 속의 사건이 관람자가 머무는 공간에서 재현되는 작품이 인기리에 제작되었고, 그 대표적인 작품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있는 로베르 캉팽의 <메로드 세폭 제단화>다.
척 봐도 수태고지인데 왜 '메로드' 라는 이름이 붙었냐면,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매입하기 전 이 작품이 벨기에의 메로드 공작가 소유였기 때문이다. 작품은 세 화면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중앙 패널 양쪽으로 붙어 있는 작은 패널에는 경첩이 달려있어 상황에 따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형태의 미술 작품을 ‘세폭화(Triptych)’ 라고, 두 화면으로 나누어진 작품은 ‘두폭화(Diptych)’라 부른다.
여담이지만 유명한 프랑스 향수 브랜드 ‘딥티크(Diptyque)’의 이름도 여기서 왔다. 이 브랜드의 창업주 셋이 처음 사업을 하려고 점포를 얻었을 때, 좁은 문 양쪽으로 같은 크기의 창 두 개가 나 있는 건물 외관의 모습이 마치 ‘두폭화’ 같다고 해서 ‘딥티크’를 상호로 정한 것이다. 아무래도 창업주들이 화가, 실내 디자이너, 무대 감독 출신이다 보니 미술사에 조예가 깊었던 모양이다. 재미있게도 사업이 번창하면서 붙어 있는 옆 건물까지 확장하여, 현재 파리 생 제르맹 거리에 있는 딥티크 본점의 외관은 똑같은 창문이 나란히 셋 붙은 트립티크 형태가 되었다.
부티크 매장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다시 메로드 세폭화로 돌아가 보자. 얼핏 보면 이 세 개의 패널은 서로 무관한 공간과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운데 그림은 수태고지인데, 오른쪽에는 웬 노인이 무시무시한 연장을 들고 앉아 있고 왼쪽에는 수사와 수녀가 대문 앞 마당에 무릎을 꿇고 있다. 사실 왼쪽 패널에서 쥐덫을 만들고 있는 노인은 성모 마리아의 남편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붓)아버지가 될 성 요셉이다. 젊고 아름다운 마리아의 정혼자가 왜 백발이 성성한 목수 할아버지와 결혼하게 되는지는 후에 다른 챕터에서 다시 알아보도록 하고, 우선 여기서는 왼쪽과 가운데 패널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자.
대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의 집으로 이제 막 들어선 참이다. 천사의 날개가 일으킨 바람에 탁상 위의 촛불이 훅 꺼졌는데, 마리아는 아직 천사의 등장을 알아채지못하고 독서에 집중하고 있다. 거실에는 얼핏 소박해 보이면서도 고급스러운 생활품들이 가득하다. 귀족가 궁전은 아니지만 최소 중산층 이상의 가정집이다. 창문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가문의 문장이 칠해져 있고 탁자 위의 꽃병은 값비싼 마욜리카 도기이며, 그 옆의 금속 촛대와 벽 뒷편의 물그릇 또한 일반 가정에서 흔히 보기 힘든 기물이다. 섬세한 장식 디테일이 조각된 벤치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호화로운 벤치와 부드럽고 푹신한 쿠션을 놔두고 그 앞의 바닥에 앉아 있다. 한국인들 눈에는 앉으라고 만들어 놓은 소파를 등받이로 쓰는 모습이 퍽 익숙하지만, 이 시기 관람자들의 눈에는 썩 자연스럽지 않은 모습이다. 마리아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거나 좌식 생활을 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이 시기 화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사람의 미덕인 겸손과 순종을 드러내곤 했다.
이 작품은 성모의 미덕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가득 차 있다. 마리아가 책(성경과 성무일도서)을 읽고 있는 모습은 성모의 지혜로움과 신실함을, 화병에 꽂힌 백합과 그 뒤의 흰 수건은 성모의 순결함을 상징한다. 순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처녀성 그 자체를 암시하는 요소들도 보인다. 화면 왼쪽 상단에 그려진 둥근 창 앞에는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일곱 개의 광선과 십자가를 짊어진 작고 흰 사람의 형태가 그려져 있다. 장차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예수가 될 씨앗이다. 이 빛 줄기의 경로를 따라가면 마리아의 무릎께 옷주름에서 별 모양으로 빛나는 반사광에 도달한다. 유리창을 깨지 않고도 집 안으로 들어와 마리아의 몸에 닿는 빛은, 성관계 없이 임신을 한 어느 소녀의 신기한 이야기의 완벽한 은유가 된다.
여기서 마리아는 붉은 옷을 입고 있는데, 앞서 본 두 점의 다른 <수태고지> 작품에서처럼 마리아의 옷은 푸른색 계열로 채색되는 것이 전통적이었다. 황후의 색으로 파랑을 쓰던 비잔틴 미술의 영향도 있고, 파란색 안료 자체가 워낙에 비싸기도 했다. 고귀한 색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파랑은 성모의 시그니쳐 컬러가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 성모는 예수의 피와 수난을 상징하는 붉은 색 옷을 입고 있다.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동시에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천사의 날개 위쪽에 작게 그려진 아기가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 또한 같은 의미다.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신의 아들이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음으로서 인류를 구원한다는, 크리스트교 교리의 핵심을 상징적 장치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구세주의 어머니라도 그렇지, 엄마가 될 여자에게 뭐 이리 강요하는게 많았는지 모르겠다. 겸손하고 지혜롭고 신실하며, 고통을 인내해야 하고 정숙하고 순결해야하며 처녀이기까지 해야 한다. 원하는 임신도 아니었는데 좀 누워서 맛있는거 먹이고 뒹굴뒹굴하게 두면 안되나. 구원이고 은총이고를 떼어놓고, 마리아 한 개인만 본다면 기구해도 이런 기구한 삶이 없다. 성관계도 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생겼고, 고생 끝에 겨우 낳아서 애지중지 서른 셋까지 키워 놨더니 장가도 못 가고 누명으로 공개 사형당했다. 죽을때 돼서 승천하면 뭐하고, 하늘의 여왕 칭호 받으면 뭐하냐고.
한편 오른쪽 패널에 그려진 수도사들은 사실 이 작품의 주문자 부부다. 무언가 더 경건하고 신실한 분위기를 풍기기 위해 수도복을 입은 모양이지만, 사실 이 부부는 벨기에 메헬렌 지역에서 활동하던 사업가 피터 엥겔브레히트와 그의 아내 마가렛 엥겔브레히트다. 엥겔브레히트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이 가운데 패널의 창문에 스테인드 글라스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진짜 수도사들을 위해 수도원 벽화로 그려진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은 엥겔브레히트 가의 집에 걸려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세폭화의 패널을 다 펼친 크기는 세로 64.5 가로 117.8cm로, 대충 오늘날의 50인치 가정용 텔레비전과 비슷한 사이즈다. 성당 같은 곳에 두기는 작은 사이즈고, 집 내부에 걸어 놓은 그림이었다는 뜻이다.
작품 속에서 엥겔브레히트 부부는 정원에 무릎을 꿇고 있다. 남편은 경외감 가득한 눈으로 황급히 모자를 벗어들었고, 아내는 눈을 내리깔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올린다. 열린 문 사이로 무언가를 본 것이다. 맙소사. 우리 신혼집 거실에 성모님이 앉아 책을 읽고 계신데, 대천사 가브리엘이 찾아왔고, 위쪽 창문을 통해 성령이 들어오는 중이다. 그렇다. 평범한 일상이 지속되던 그들의 집에서 수태고지의 순간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차마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래 이 패널에는 피터 엥겔브레히트만 그려져 있었으나, 결혼 후 마가렛의 초상이 추가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니까 마가렛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신혼집 장식이었을 텐데, 신혼집에 놓을 그림으로 이보다 더 적합한 그림이 어디 있을까.
막 결혼한 엥겔브레히트 부부에게 이 작품은 기독교의 시작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을 것이다. 내가 임신을 준비하며 <수태고지> 작품을 프린트하여 책상 앞에 붙여 둔 것과 마찬가지로, 새 신부 마가렛도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내게도 이런 날이 찾아오기를. 내게도 더할 나위 없이 귀하고 소중한 아기가 찾아오기를.
<메로드 제단화>의 소유자였던 애런버그 공 피에르 대런버그는 1849년 딸인 마리 니콜렛이 메로드 공작가에 시집갈 때 이 작품을 결혼선물로 주었다. 딸이 성령의 축복 아래 아이를 낳고 결혼 생활을 잘 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성모는 아니더라도, 내 아이가 세상의 구원자는 아니더라도, 이 순간의 신비에 나를 동일시 하고픈 마음. 15세기에도, 19세기에도, 그리고 21세기에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다 비슷비슷 했던가보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