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 괴담
별도 달도 없는 아주 조용한 어둠, 풀벌레 소리 조차 잠들어 버린 어느 깊은 밤이었다.
그날도 그는 삶이 무엇이고 자신이 누구이며, 세상에 대한 이치를 알고자 오랜 시간 명상 수행 중이었다. 어찌 보면 그는 세상 사는 게 괴롭고, 원망스럽고, 지나가는 개까지 미워서 진리를 찾고, 해탈과 열반을 체득해서 자유롭고 싶어서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는 오늘도 갈망을 마음에 품고 명상에 전념했다.
그날의 어두운 밤은 유독 조용했다. 신경 쓰일 정도로 조용한 밤 깊은 산골의 명상은, 심연의 깊은 적막과 함께 뒤통수를 두려움으로 찌릿하게 했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명상은 두려움도 잊은 체 몰입의 깊은 단계를 넘어서 버렸다. 나중에야 느낀 거지만 몰입의 단계를 넘어선 어느 순간은 잠을 잔 것 같은 착각이 들긴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평소와 비교해 알 수 있었다.
의식할 수 있는 전/후를 살펴보면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다만 의식 전/후 사이에 의식할 수 없었던 묘한 심의식 같은 체험도 있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깊은 선정의 비상비비상처 상수멸_진정등의 특정 단계를 넘어서는 체험으로 여겨졌다. 그동안 수행 중 독특한 체험들이 많았으나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경험이었다. 이번 경험은 어찌 보면 순간의 죽음 속에서 지옥이라는 곳을 갔다 온 괴상한 체험이었다.
죽음이라고 해본 적이 없어 표현하기 힘들지만 완전히 의식 없음의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갔다 온 지옥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육체적 고통을 받는 곳이 아닌 심리적으로 완전한 고독의 외로움에 묶여 고립된 지옥이었다. 정말 살면서 경험해본 적 없는 육체적 통증을 참다못해 기절하는 것과는 다르게 전혀 다른 의식적 고통이었다.
그는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한다.
깊은 명상은 지옥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까지 의식만 남은 순수한 고요의 상태였던 것 같았다. 그런 후 아무것도 없는 순간의 체험은 의식 조차 없는 순수한 죽음 같은 것인지 또는 의식이 죽은 건지,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런 후 시간이 지나 의식만이 살짝 돌아온 느낌이 남겨져 있었고, 의식은 아주 작디작은 먼지보다 작게 어둠 중앙에 남아 있는 듯한 상황이었음을 깨어나고서야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당시에는 어떠한 것도 인지할 수 없는 그냥 작은 점 하나만의 의식만 있다는 경험적 느낌의 기억과...
몸이나 외부의 어떠한 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그러다... 어디론가 의식이 훅 빨려 들어갔다.
'어ㅓ.. ' 외마디 소리 묵언의 비명 조차도 순간의 반쪽짜리가 되어 미지의 세계로 사라졌다.
그렇게 빨려 들어간 곳은 3곳이었으며, 각각 다른 환경의 경험이었다.
처음 빨려 들어간 곳은 도무지 앞/뒤/옆/위/아래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무주 공간이었다. 그곳은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도 없고, 아니 가지지도 않았고, 영원히 죽을 수도 없고, 아니 어찌 죽을 방법이 없었고, 무한 세월 어둠 속에서 눈이 아닌 의식만 멀뚱멀뚱 남아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처절한 곳이었다.
몸이 있다는 느낌조차도 없었으며, 오감으로 통해서 느껴져 오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어떠한 것도 느껴지거나, 말 조차도 할 수 없으며 들리는 것도 없었다. 움직이려고 해도 몸의 감각이 없어 할 수 없었으며, 사방팔방 온통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그렇게 덩그러니 점 하나의 의식만이 칠흑 속에 있었다. 그냥 완전한 칠흑 같은 암흑뿐이었다.
심지어 생각이나 감정조차도 거의 없었다. 신체적으로 살아있는 느낌이라고는 도무지 없었다. 의식조차도 살았다거나 죽었다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멍청한 의식만이 멀뚱멀뚱, 죽은 건지 산 건지도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는 두려움만 어둠으로 둘러싸여 감옥에 남겨진 것만 같았다. 주위는 어둠뿐이며, 공간이라는 표현도 옳지 않았다. 움직일 수도, 움직여지지도, 감각 조차도 없는...
몸이 있어 움직일 수도 있는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묶여있는 느낌도 아니오, 몸이 있다는 느낌도 없지만, 그렇다고 의식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방팔방 온통 암흑만이 있다. 아니 느낄 수 없어서 안 느껴지는 암흑일런지도 모른다. 그렇게 덩그러니 홀로 남아있는 검은 우주의 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수 멍텅구리 맹탕 같은 의식만 덩그러니 존재했다.
느낄 수도 없는, 볼 수도 없는 순수한 칠흑의 세계이다.
암흑 입자라 불리는 힉스 에너지도 아닐 것이다. 느껴지지도 볼 수도 없어서 감지 조차 안 되는 색도 빛도 없는 세상이다.
그렇게 망연자실의 상황 속에서 긴긴 어둠의 시간을 맹하게 보내다, 갑자기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을 했다. 어찌 된 상황인지 영문을 모를 일이다. 그렇게 빨려 들어간 곳은 완전히 다른 거꾸로의 세상이었다. 암흑의 칠흑 세상에서 블랙홀을 넘어 웜홀을 지나 화이트홀로 빠져나온 것만 같은 곳이다.
이곳은 어둠과 반대되는 빛의 세상이라기보다는 백색 세상이었다. 빛도 아니고 하얀색도 아닌 백색의 흰 밤 세상이라는 표현이 걸맞을 것만 같았다. 이곳 역시 의식만 덜렁 있을 뿐, 칠흑에서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는 고독이라는 표현보다는 외로움이라는 색이 더 짙었다. 너무나 외로웠다.
몸 뎅이가 없어 흐르는 눈물도 없지만 감성적 느낌만 남은 체, 아무도 없이 홀로 뚝 떨어진 지독한 외로움의 세계였다. 허무함과 공허감의 무기력에 완전히 빠져 오랜 시간에 빠져있을 때쯤 또 어디론가 순간 이동을 했다.
옮겨간 곳의 세상은 앞서 경험한 두 곳과 완전히 또 다른 곳이었다. 표현을 하자면 맑디 맑은 거대한 수정 구슬의 안쪽 세상 같았다. 거대 우주 속 아무것도 없는, 그냥 순수하고 맑은 물방울 안 세상과도 같고, 거울 속에 아무것도 안 비추어진 검은빛 텅 빈 세상과도 같았다. 여전히 이곳도 환경만 다를 뿐 점 하나의 의식만 덩그러니 두둥실 떠 있었다.
투명한 세상은 검다라고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하얗거나 어떠한 빛과 색이 있다고 표현할 수 없었다. 깜깜한 것도 아니고, 밝은 것도 아니고, 그냥 텅 빈 아무것도 없는 진공 세상이었다. 그렇게 특이하고 괴상한 지옥의 지독한 맛을 본 세 곳 모두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심지어 몸이나 생각조차도 없는 것같이 의식만이 남겨져 설명할 수 없는 괴상한 지옥이었다. 괴상한 지옥이란 표현 외에 설명할 수가 없다. 소름없이 무섭다.
지독하리만큼 처절한 고독의 쓴맛이었다. 도무지 느껴지는 건 오르지 무주공간의 고립된 작디작은 의식뿐이었다. 어디론가 나갈 수도 없거니와 죽을 수도 없는... 넓디넓은 것 같지만 움직여지지 않는
그곳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어찌해할지도 모른다.
어찌할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할만한 것조차 없다.
생각조차도 멈춰버린...
그냥 그렇게 그런 상황에 지독한 고독과 두려움만이 내 맡겨져 버렸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잔인하게 고립된 고독과 외로움과 함께. 텅 빈 공간에서.. 쓸쓸하고 적막함이라는... 아니 이루 말할 수 없는 괴상한 세상의 상황 ... .. .
얼마나 지났을까... 내 맡겨진채 멍청하게 꿈인듯 환영인듯 모래없는 사막같은 척박한 별이 의식 아래로 희뿌옇게 암흑색 구름처럼 나타난다. 멀리서는 보일락 말락 작디 작은 별빛 같은게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척박한 별의 표면은 그나마 아무것도 없는것 보다는 낫다는 한숨이 돌아오듯 작디 작은 안도감이 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시간은 끝없이 흘러 흘러 망연자실하고 있을 때, 작은 내 의식처럼 어디선가 작디작은 바늘구멍 같은 또 다른 빛이 우주 끝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 빛은 점점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아니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 커지고 있었다.
빛과 함께 의식이 점차 돌아와 주마등처럼 과거 기억들이 촤르르 흘러간다. 가족과 친구와 자연 속 동물과 나무와 풀과, 물과, 흙냄새까지...
어느새 의식이 점점 두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소한으로 압축된 것이 점점 펼쳐지는 것만 같은 의식이 하나의 점에서 정상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의식은 그제야 명상 중이었다는 걸 알게 되고, 몸의 감각도 깊은 호흡과 함께 점차 돌아오고 있었다. 태아의 숨결처럼 미동도 없던 숨은 호흡으로 살아 돌아오고 있었다.
호흡이 뭔가 알려주려 말하듯 속삭인다.
'살아 있네...'
나중에서야 의식이 돌아온 후 의식마저도 잠깐 동안 없어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깊은 선정으로 임의적 죽음의 시간도 아니었다. 의식의 죽음이 잠깐 일어난 것도 같았다. 몸은 살아있지만, 의식이 죽음을 맛본 후 지옥을 체험한것 같았다. 사후 세계 임사 체험을 한것인지, 두뇌의 의식이 잠깐 죽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경험하고 돌아온 몸은 온통 식은땀으로 냉기와 함께 옷을 적시고 있었다. 돌아온 의식은 몸의 감각이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새벽녘 동틀 무렵의 커다란 창문 밖은 새소리와 자연의 푸르름이 밝아 오고 있었다. 반쯤 열린 창문 너머의 나무와 하늘과 공기에 흐름은 향기를 실어 나르고, 어느새 빈 마음은 지구의 자연과 함께하고 있다는 안도와, 함께 소리 없이 뜨거운 눈물만이 흐른다. 다시 한번 살아 있다는 것을 자연의 품에서 느끼게 해 주었다.
명상에서 깨어난 그는 느끼고 있다. 어머니 같은 아늑한 자연의 품속과 따스한 자궁처럼, 소중한 삶이 함께하는 지구의 아름다움 속에 있다는 것을... 그저 주기만 하는 자연의 고마움과 무한한 사랑을 온몸으로 전율하듯 느끼며 생각한다.
'세상이 원망스럽고 불만이 많으면, 그런 지옥으로 보내는 건 아닐까?...'
괴상한 지옥에서 돌아온 그는 울먹거리며 흐뭇한 미소로, 지구의 자연과 사람들이 새삼스럽게 사랑스러웠다. 그리고는 희안의 눈물을 훔치며, 동트는 아침을 만끽했다.
※ 원망과 불만을 조심하시라, 또 다른 괴로운 지옥 체험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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