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무용해도 좋은...' 유재은 작가님
브랜딩에도,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안 되지만 이상하게 가슴 뛰는 일이 있다. 나는 그것을 ‘무용한 루틴’이라 부른다. 구독자 8,300명의 류 00 작가님의 ‘브런치 작가 신간홍보’처럼 대형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1~2분씩 낭독해 SNS에 소개한 지 오늘로 4일째다.
책 내고 매일 쓰느라 정신없다는 핑계로 작가님들 글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만나서 축하하고 응원하면서도 그분들이 쓴 글을 평소 읽지 못해서 늘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모든 글을 다 볼 수는 없어도, 최소한 인연으로 이어진 열 분의 글만큼은 읽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먹어도 실천은 쉽지 않았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1~2시간 동안 그날의 글을 쓰고 출근한다. 퇴근 후 월요일은 셔플댄스, 화·목은 러닝클래스 훈련이다. 저녁 일정이 없는 수·금에는 제안서를 쓰거나 한 주의 피로를 달래다 보면 어느새 주말이 된다. 토요일 아침 러닝클래스에 가고, 청소와 글쓰기, 북토크에 다녀오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출근길 버스 1시간도 바쁘다. 새벽에 다 못 쓴 글을 무선 키보드로 마무리하고, 브런치·블로그·카페에 올리고, 사진과 음악을 골라 인스타에 올린다. 시간이 남으면 글을 줄여 스레드에도 올린다. 퇴근길에는 눈도 몸도 지쳐 글쓰기가 어렵다. 책을 읽고, 브런치 작가님들의 글까지 여유롭게 읽으려면 대체 어떤 시간을 줄여야 할까. 1년에 몇백 권씩 읽는 분들이 그저 존경스럽다.
어느 날 ligdow님의 짧은 2분 낭독을 들으며 나도 다른 브런치북 작가님들의 글을 짧게 읽어 나누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무리 바빠도 2분은 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떤 글을 읽을지 고르고 실수 없이 몇 차례 녹음하다 보면 결국 30분은 걸린다. 그래도 새벽에 30분만 떼어 소중한 분들의 글을 한 편이라도 읽고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ligdow님 글을 시작으로 고요한 동산님, 무명독자님, 아헤브 작가님 글까지 네 번째 낭독을 마쳤다. 처음엔 톡방에만 올렸지만 인스타에도 올리기로 했다. 작가님들의 브런치 글을 캡처해 낭독 속도에 맞춰 읽을 수 있도록 영상으로 만들고 작가 소개를 더해 올리기 시작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글을 찾는 과정, 읽으며 감탄하는 순간, 그 마음을 목소리에 담으려 애쓰는 시간, 톡방에 나누고 인스타로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하는 과정에서 내가 더 따뜻해졌다.
아헤브 작가님의 최신 글에서 '유재은' 작가님의 '무용해도 좋은...'이라는 책소개를 만났다. 아름다운 문장에 마음을 빼앗겼다. 짧게 낭독하고 사라지려 했는데, 글에 소개된 책에 마음이 쓰였다. 낭독은 신간 소개로 이어졌고, 나는 인스타에서 유재은 작가님을 찾아 팔로우했다. 그리고 홀린 듯 책을 구매하고 인증사진을 DM으로 보냈다.
브랜딩과 효율의 관점에서 보면, 다른 이의 글을 읽고 낭독하는 일은 ‘쓸모없음’을 뜻하는 ‘무용’이다. 새벽 낭독과 나눔, 인스타 소개는 '무용'하다. 하지만 '유용해지는 법'만 넘쳐나는 세상에서 가끔 자신만의 '무용'이 있어야 숨을 쉬지 않을까. 하루에 자기 잇속을 차리지 않은 시간이 단 2분은 있어야 영혼이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기지 않을까. 달리기도 그랬다. 쓸모없는 기술이었지만 오히려 내 삶을 살게 한 유용한 ‘무용’의 기술이었다.
유용함만 요구하는 세상에서 매일 30분쯤은 무용해도 좋다. 행운은 언제나 쓸모없는 자리에 숨어 있다. 한 달에 2만 원 기부런, 아껴온 내 sns의 한 자락을 내어 누군가의 존재를 알리고,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을 때 함께 세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는 걸 배운다.
'무용'은 '쓸모없음'이 아니다. 세상을 향한 몸짓이고 나비의 춤사위다. 나는 새벽마다 나를 위해 쏟는 시간에서 30분을 떼어낸다. 갈라진 목을 가다듬고 녹음기를 켠다. 이 무용한 낭독이 이상하게도 가끔 나의 하루를 안아준다.
P S. 댓글에 낭독 영상 링크 달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