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로 돌아온 현석은 성당에 먼저 들려 기도를 했다. 아담은 무슨 일로 성당을 먼저 오냐고 물었는데 현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평범하게 주기도문과 성모송만 외치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애초에 아버지를 만난게 의도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현석은 기분이 좋았다. 땅이 그의 두 발을 받치고 있었지만 공중에 떠있는 듯한 가벼운 심정과 여유가 그를 십자가 앞에 데려왔을 뿐이었다. 그냥 왔다고 대답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성당과 멀어질수록, 집과 가까워질수록, 발을 들어 앞으로 내밀어 한걸음 옮겨질 때마다 집에 가면 다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으로 침투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당을 지나 열려있는 현관문이 보였다.
‘왜 열려있지? 보통 닫혀있는데.’
현석은 이유없이 불편한 마음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다미는 거실에서 책을 보며 혼자 선생님처럼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뭐하냐?” 현석은 못본척 지나갈 수 없어 물었다.
“공부하잖아. 현대 프랑스 철학에 대해서.”
다미가 읽고 있던 책의 표지를 보여주고는 책을 덮어 탁자에 올려 놓았다.
“너 리쾨르라고 알아?”
“철학자야?”
현석은 1인 소파에 앉아 다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거실에는 1인소파가 세 개가 있고 각 소파의 사이에는 소파 팔걸이의 높이에 맞는 탁자들이 있었다. 한 탁자에는 아기천사상 3개가 있었고 다른 탁자에는 성수병과 십자고상, 성모마리아상이 있었다.
“내가 철학에 관심있는거 봤냐?”
“이 철학자가 엄청 신박한 주장을 하더라고. 인간의 삶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할 수 없는게 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한데.”
“나 가창수행평가 맨날 빵점이잖아. 가수는 절대 못하겠네. 근데 그게 그렇게 대단한 생각인가?”
“그런걸 말하는게 아니야.” 다미가 현석 옆 소파에 앉았다. 책을 마리아상 앞에 놓고 현석을 쳐다봤다. “그럼 뭔데?” 현석이 물었다.
“성격을 말하는 거야. 소심해서 독립운동을 못했다든지, 참을성이 없어서 직장폭행을 일으킨다든지. 그런 성격 말야. 정환이오빠가 왜 그렇게 문란하게 살았을 것 같아? 나빠서가 아니야. 그런 성격을 타고난거야. 그래서 참아야할 걸 못참고 여기저기 난잡하게 다니고 무리한 짓을 하다가 죽어버렸잖아.”
“그만해라. 그런 얘기할거면 나 들어간다.”
“너 요즘 나랑 이야기 잘 안하는거 알아?”
“왜? 그것도 성격 탓이냐?”
“나랑도 좀 놀아.”
“너가 나쁜 짓 그만두면.”
“나쁜 짓이라니? 민국이랑 논게 나쁜 짓이야?”
그 순간 현석은 다미에게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외로움을 느꼈다. 그 때 민국이를 집으로 돌려보낼 때의 다미의 울음이 떠올랐다.
‘싸움이든 해결이든 어쨌든 계속 이대로 지내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야.’ 현석은 태도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현석에게 그렇게 생각할만한 마음의 힘과 여유가 오늘 생겨있었다.
“그럼 산책이나 가자. 테니스도 할까?”
어정쩡한 남매 사이인 둘은 테니스 라켓과 공을 챙겨서 마을 공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공터는 옛날 마을에 사람들이 많았을 때 창고로 사용된 큰 건물이 있었던 곳이였다. 창고가 헐어지면서 넓게 생긴 곳에는 여러 소문이 있었지만 줄어드는 인구 때문에 아무도 찾지 않는 빈 공간이 되었다. 현석과 다미는 마을로 이사왔을 때부터 둘이서 다른 사람들 안보고 뛰어 놀 수 있는 곳을 찾았고 그 장소가 모든 조건이 완벽한 곳이었다. 소꿉놀이나 술래잡기, 숨바꼭질같은 것은 성당이나 경로당, 집에서 했다면 이곳에서는 주로 캠핑, 테니스, 캐치볼, 축구를 했다. 다미는 현석이 학교에 가있는 동안 종종 이곳을 왔지만 현석에게는 반년만에 와본 곳이 되었다.
“넌 학교 다니고 싶지 않아?”
논 사이 좁은 흙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팔짱을 끼고 있는 다미에게 현석이 물었다. 사실 정말 물어보고 싶은건 ‘슬기 아빠 너가 죽였지?’였지만 다음에 물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다미의 친구이자 가족으로서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안다녀봐서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다니고 싶지 않냐고?”
“다녀봤으면 어떤 곳인지 알거니까 다니고 싶다 안다니고 싶다 생각이 들텐데 말이야.”
“그래... 아니, 그래가 아니고. 그러니까 지금 현재로선 가고 싶어 안가고 싶어?”
“굳이?” 다미가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가 절대 안보낼 걸. 학생들 빙의시킨다고.”
현석은 할 말이 없어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여자친구 생겼다고 자랑하려다가 관두었다. 아직 정말로 여자친
구가 된 것도 아니고 다미라면 놀리기만 할 것 같았다. 20분 동안 걸어서 도착한 그들의 아지트에서 한 시간 동안 테니스를 쳤다. 막상막하인듯 했지만 마지막 저녁 설거지를 걸고 한 시합에서는 다미의 압승으로 놀이가 끝났다. 둘은 집으로 돌아갔고 아담과 함께 저녁 식사까지 했다. 다미는 아담에게 테니스 이야기를 자랑하면서 현석이 설거지할거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다미에게 미소를 보내준 아담을 현석은 똑똑히 보았다.
‘오늘도 엑소시즘을 하겠지. 매일 쉬지 않고 하니까.’
현석은 마음 속으로 짧게 하느님께 아버지를 지켜달라고 기도한 뒤 방에 들어가서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에게는 살을 빼야겠다며 나갔다. 다행인지 무엇인지 아담은 현석에게 신경쓸 겨를이 전혀 없었다.
강예정의 집으로 가면서 현석은 오늘 서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생각안해야지했지만 한 번 물꼬가 트인 생각을 현석은 놔주지 않았다.
‘행복이란 이런걸까?’ 사실 다 모른척하고 그녀와 단 둘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망상적인 유혹을 혼자 마치고 예정의 집에 도착한 현석은 초인종을 눌렀다.
자신의 가족이 사는 집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초인종이 있는 집이었다. 예정이 직접 나와서 반갑게 현석에게 인사하고 현석은 집으로 들어갔다. 예정은 사과와 배를 준비하고 있었고 권자중과 현석은 주방 식탁에 앉아서 총싸움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도 많이 외로웠나보네.’ 생각보다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고 세상 즐거워하며 이야기하는 자중을 보고 있으니 현석은 기쁘면서도 그가 애처로웠다.
“근데 현석아, 물어보고 싶은게 뭐야? 너가 혼자 우리집에 온 것도 참 신기하다. 그치?”
예정이 준비해온 과일과 함께 식탁에 앉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도 “그러네.”하면서 현석을 빤히 쳐다봤다. 현석은 권자중이 같이 있는게 도움이 될까 안될까를 고민하다가 답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운명이라고 믿고 이야기를 꺼냈다.
“슬기누나 위해서 다미랑 같이 만나서 기도한다면서요?”
“응. 그런데?”
전혀 놀라지도 않고 왜 묻느냐는 반응도 없고 완벽하게 그냥 대답이었다. 현석은 그것도 좀 께름칙했다.
“다미가 혹시 무슨 이야기안하던가요?”
“이야기? 별다른 이야기 안했는데?”
다미의 지시를 받고 거짓말 한다고 하기에도 너무나 일상적인 표정과 흔한 목소리 톤이였다.
‘슬기누나한테만 따로 이야기한건가?’ 한 번 묻고 더 이상 대화가 진행되지 못하자 자신의 순발력을 한탄했다.
“아니에요. 오늘 저 만난거 다미한테 말하지 말아주세요.”
“알았어. 다미에게 무슨 일 있는거야?”
이번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무엇이든 도와줄테니 말해보라라는 느낌을 풍기는 얼굴에 현석은 도취되어버렸다.
‘하긴, 이분은 성모마리아를 만난 분이잖아. 다미에게 타락할 사람이 아니야.’
현석은 다미가 악령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다가 순간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빠라면 분명 말하지 않았을거야.’
현석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면 수상해보일까봐 다음에 말해줄테니 다미에게 말하지 말라고 한 뒤 과일을 더 집어먹고 집으로 나왔다. 완전히 밤이 되어 달이 가장 밝은 빛을 보이고 있었다. 가려고 하는 현석에게 자중이 뒤따라왔다.
“아저씨, 궁금한게 있어요.”
제단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아담에게 다미가 물었다. 천장을 보고 있어 아담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제단 쪽으로 향해 있어 뒤통수만 보였을 것이다.- 다미는 개의치 않았다.
“영은아줌마는 무슨 돈으로 생활하고 있어요?”
아담은 질문을 똑똑히 들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안한 것은 아니고 기도 중이라 할 수도 없었다.
“혹시 아저씨가 주시는 건가요?”
기도를 마친 뒤 아담은 성수Ⅰ병의 물을 다미에게 뿌렸다.
“인 노미네 파트리스, 엣 필리, 엣 스피리투스 상티, 아멘.”
아담은 성수병을 제단 탁자 제자리에 다시 열을 맞혀 올려놓고 다미 옆으로 가 다미를 내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다미가 소리를 질러댔다. 여자가 원래 음이 높다지만 다미가 이렇게 음이 높은 줄은 몰랐다. 돌고래같은 소리를 질러대는데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성수에 의해 악마가 자극받은 것인가 싶더니 갑자기 소리가 멈춰졌다.
“아까 질문에 대답해주지 않으면 또 소리 지를거에요.”
다미는 유치원생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아담을 쳐다봤다. 아담은 최근에 맞추어 낀 안경을 만지며 한숨을 지었다. 몇 번 다미의 입을 막고 구마를 했었는데 아담은 그때마다 후회하고 다시는 입을 막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입을 막아버리면 다미의 말을 들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면 악마와의 대화도 단절되어 다미 속 악마를 끄집어내 쫓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담은 다시는 입을 막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다미는 마치 그 마음을 눈치챈듯이 아주 동물적인, 원초적 공격을 해오고 있는 것이었다.
“맞아. 내가 주고있어.”
“얼마씩이요?”
“백만원씩.”
“그 돈을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매달 기부한다면 훨씬 더 유의미하게 쓰일걸요. 혼자 집에 틀어박혀서 사회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그런 사람에게 쓰는 것보다.”
아담은 십자고상을 집어들고 다미의 심장에 올려놓고 다미를 향해 성호를 그은 뒤 오른손은 십자고상에, 왼손은 자신의 가슴에 얹고 라틴어 구마기도를 시작했다.
“아저씨도 그 정도 판단은 할거 아니에요. 하지만 친구간의 우정이라는 감정때문에 해야할 일을 망각한거죠. 덕분에 많은 환자들이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고요.”
“씨꿑 인 챌로 엩 인 떼라.”
“아참, 어머. 우정이 아니지. 사랑이였죠?”
이 말을 하고 다미는 웃었다. 아담은 저번처럼 화가 났고 악마가 발현된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담은 왼손목에 묶어 걸쳐놓은 묵주를 풀어 십자가 부분을 다미의 이마에 대고 다미를 노려보았다.
‘화내면 안돼. 화내면 안돼. 침착해야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런데 대체 아저씨는 어디서 그 많은 돈을 받아요? 게다가 얼마나 받길래 영은아줌마한테 백만원씩이나 주고도 생활에 지장이 없죠?”
아담은 무시하고 성서를 꺼내고 의자에 앉았다. 창세기를 읽을 계획이었다. 뱀이 비록 아담과 하와를 타락시켰지만 그 뱀이 하느님에게 벌을 받고 그리고 하와의 자손에 의해서 멸망당할 것이라는 것을, 악마는 결국 하느님께 굴복할 것이라는 것, 사실 이미 굴복당했다는 것을 악마가 깨우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였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내신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원장이 주는거죠?”
아담은 그 찰나 자신의 모든 것이 정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심장의 떨림, 입과 코의 호흡, 성서에 써있는 글들을 향한 눈동자, 성서에 올려져있는 손까지 움직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미를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몸은 굳어 있지 않았다. 언제든 자유롭게 움질일 수 있었다. 그러나 몸을 지배해야 할 정신이 그러지를 못했다.
“참고로 현석이도 궁금해해요. 이 큰 집을 지은 돈, 생활비, 성당 운영비 등이 어디에서 오는지. 게다가 아저씨가 현석이 기안죽일려고 돈을 참 많이 썼잖아요?”
‘원장을 기억하고 있다고? 현석이는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데? 그렇다면 그 때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말도 안돼. 악마의 말이야... 악마...’
“달마다 얼마씩 입금되는지만 말해주세요. 안그러면 현석이에게 말할거에요. 현석이는 서울대교구에서 열악한 곳에 있는 신부님에게 돈이라도 넉넉히 준다고 믿고 있거든요. 그런 현석이 아빠가 사실은 진짜 사제가 아니라는걸 알게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대체 이 아이는... 아니 이 악마는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인거야...’
아담은 그 순간 다미를 죽여야되나 생각했다. 하지만 도무지 그럴 수 없었다. 아담은 다미를 정말로 사랑했다. 어쩔 수 없이 아담은 다미에게 한도없는 카드를 받아 쓰고 있고 현금은 오백만원씩 입금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