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현석은 거실과 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엑소시즘 중이구나 생각하고 샤워를 했다. 집에 돌아가려던 자신을 막고 한 자중의 말은 이런 내용이었다.
다미가 슬기를 위해 기도하는 문제로 시비를 걸어서 사이가 안 좋아지는 듯했지만 다시 좋아졌는데 예정이 다미를 지나치게 좋아하게 되었다. 이상해서 예정이 쓰는 다이어리를 살펴봤더니 매일매일 하느님에게 감사드리는 내용이 언제부턴가 다미를 찬양하는, 다미를 그리워하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10월 달력란에 보니 둘째 주 토요일에 기적의 날이라고 쓰여있었다.
‘10월 둘째 주 토요일까지 15일... 대체 뭘 하려는 걸까. 분명 다미의 계획이야.’
신부님도 알고 있냐고 자중이 물었을 때에도 아니라고는 못하고 나중에 말하겠다고 집에 돌아온 현석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보니 구마가 끝나고 돌아오는 아버지가 보였고 진이 다 빠진 모습이었다. 현석은 자신이 봤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몸을 돌려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아버지에겐 말 못 해. 내가 막아야 해.’
현석은 전등을 끄고 커튼을 쳐 어둠이 방을 감싸도록 한 다음 하나의 빛을 만들었다. 핸드폰 전등으로 나온 빛은 현석의 방에 있는 십자고상을 비추고 있었다. 그냥 침대에 누워 두 손을 뒤통수에 대고 생각하려 했지만 자꾸 사랑에 빠지게 된 여자와 다른 생각 때문에 집중이 되지 않아 모양새를 바꾼 것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집중도 잘되고 마음이 한 데로 모아졌다. 대체 개신교신자들은 성상에 왜 이렇게 시비 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슬기누나도 예정아줌마도 둘 다 다미에게 조종당한 거야. 왜 하필이면 예정아줌마까지.’
현석은 예전에 예정이 성모마리아 꿈을 꾼 것과 그 이후의 사건들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기적이라고 믿었다. 현석도 기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합리적이라고 다가왔다. 여기서 기적이 아니라고 신은 없다고 우기는 사람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하고. 강예정은 신의 기적을 받은 사람인데 왜 악마에 의해 타락당하도록 버려진 것인지가 문제였다.
‘이 암울한 상황 안에도 하느님의 기적이 있는 것일까. 사실은 나와 아버지가 아니라 예정아줌마가 이 스토리의 주인공이었던 거야. 다미 속 악마를 쫓아내고 다미를 구원해 주는...’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자중의 말이 계속 신경 쓰였다. 기적의 날이 과연 선의 입장에서 기적인지 악의 입장에서 기적인지가 관건이었다.
‘신의 계시를 받은 예정 아줌마가 악마에 씐 다미를 이긴다... 다미가 진다고? 그런 것이 가능할까? 세상의 모든 능력을 접수한 듯한 그 애가?’
현석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눈앞에 예수님을 두고 불경하게 생각되었다.
‘다미랑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야겠어.’
다음날 토요일이 되고 현석은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눈이 떠지자마자 허공 속에 그녀가 보였다.
‘문자를 보내볼까? 아침이 되자마자 하면 날 너무 쉽게 보지 않을까? 그 누나는 어디 살까? 그 누나도 내 생각
을 할까?’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가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오기를 몇 번, 현석은 오후가 되면 문자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시계를 보니 6시도 안 되어 있었다. 더 잠이 올 것 같지도 않아 핸드폰을 열어 그녀의 톡을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프로필사진에는 손가락 브이 속에 보이는 분홍색으로 칠해진 손톱뿐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눈앞에서, 현실 속에서 보면 얼마나 행복할지 혼자 또 취해져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리고 6시 반 즈음에 계획을 생각했다. 자중을 만나서 집에 스마트폰이나 도청기를 몰래 숨겨놓아 다미가 왔을 때 녹음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 여분의 기계가 없다고 하면... 아빠한테 상황을 말하고 핸드폰을 달라고 할까. 아,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현석은 똑똑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
사람들은 긴장이 몸을 병들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긴장이 안도로 바뀌었을 때의 기쁨은 그 긴장을 했다는 것조차 잊게 만든다. 권자중은 핸드폰 공기계가 있으니 걱정 말라고 현석을 안심시켰다.
“네가 학교가 있는 시간에 다미가 와. 그때 미리 준비해 놓을게.”
권자중이 혼자 비닐하우스에 있는 것을 멀리서 보고 통화로 부탁을 한 것에 대해 똑똑한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빛나는 해가 마을을 비추어 쭉쭉 길게 뻗은 인도와 마을을 감음과 동시에 마을을 벗어나려는 차도가 여러 개의 파장처럼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이 찬란한 세계와 그 위에 행복한 자신. 그 모든 것의 완성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중 가장 아름다운 것, 그녀 덕에 있었다. 현석은 자신의 참을성에 격려하고 핸드폰을 열어 톡을 보냈다.
“책 읽어봤어?”
천천히 걷는 현석이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성당 앞에 도착하자 답장이 왔다. 확인해 보니 자신이 톡을 보내고 50분이 지난 뒤였다.
“아직. ㅎㅎ”
‘어떡하지. 나도 50분 있다가 보낼까? 근데 이렇게 짧은 말은 대화를 바로바로할 때 하는 거 아니야? 내가 바로 답장할 거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보냈을 텐데, 내가 너무 늦게 하면 기분 상하지 않을까? 근데 밀당 같은 것도 해야 된다 그랬는데... 게다가 내가 먼저 톡을 보냈는데. 내가 먼저 신호를 보냈으니까 내 마음은 확실한 거잖아. 그럼 밀당해도 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여자들은 눈치가 빠르다던데... 어쭙잖게 밀당 같은 거 하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면... 차라리 확실한 내 마음을 바로바로 남자답게...’
“뭐 하니?”
현석은 육성으로 아이깜짝이야를 크게 내고는 혹시 자신의 핸드폰을 봤을까 주머니에 넣었다. 슬기의 집 앞에서 마주친 이후로 처음 본 영은이었다.
“아니에요. 안녕하세요.”
“혼자 궁시렁궁시렁하던데?”
“제가요?” 분명 마음속으로만 말했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민망해하며 다시 아니라고 했다.
“성당 가시는 거예요? 어쩐 일로...”
“신부님이랑 이야기 좀 하려고.”
“네. 안에 계실 거예요.”
영은은 미소 짓고는 가디건을 몸 쪽으로 잡아당기며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영은아줌마도 다미의 피해자인데...’ 영은이 아직 무사한 것인지 다미의 표적이 아닌 것인지 신경이 쓰여 영은이 들어간 성당문을 계속 쳐다봤다.
아담은 영은에게 왜 아직도 세례를 안 받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고해성사의 내용이 비밀이라는 원칙 때문에 물을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아담은 핫초코를 타서 영은에게 주었다. 초코의 당성분이 영은의 기분을 낫게 해주지 않을까 싶은 배려였다.
“아담아.”
“응?”
“나한테 주는 돈 어디서 나오는 거야?”
“교구에서 나오는 지원비야.”
“말도 안 돼. 나 한 명한테 백만 원씩 준다고? 사지멀쩡한 주제에 일도 안 하고 혼자 집에 박혀있는 인간이 뭐가 불쌍하다고..”
다미가 한 말을 영은이 똑같이 하는 것을 들으면서 아담은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내 재량으로 주는 거야. 괜찮아.”
“아담아.”
“응?” 사무실에 들어와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 세 번째라 아담은 매우 불안했다.
“너희 가족 무슨 사이라 그랬지? 네가 입양한 아이들이라 그랬지?”
“어... 응. 맞아.”
“둘은 원래 남매였어?”
“아니...”
“아, 성이 달랐지. 왜 다미는 너 성을 안 따라?”
“출생신고가 안되어있어서 공식적으로 변경할 기회도 없었고... 자기는 끝까지 그 이름을 쓰겠다고 해서.”
“몇 살 때 입양했는데?”
“다미가 9살 때.”
“왜 다미를 입양한 거야?”
“왜 입양했냐니? 갑자기 무슨 말이야?” 아담은 영은에게 되묻긴 했지만 영은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는 없었다. 영은이 왜 묻는지조차 가늠할 수가 없었다. 영은은 멈추지 않았다. 아담을 몰아붙이기 위해 온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사이코패스 살인마를 입양하려고 한 신부님도 있다고 그러고... 예전에 그 아이가 내 남편 데려온 그 사건에...” 여기까지 말하고 영은은 잠깐 울컥하나 했는데 다시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말하는 영은보다 듣고 있는 아담이 더 눈썹을 모으며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경찰차가 폭발한 것도 정환이 어머님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도, 슬기 아빠가 사라진 것도 모두 그 아이 짓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영은아.”
아담이 몸을 안절부절못하며 영은을 불렀다. 하지만 앞에 앉아있는 사람을 부른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말할 내용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영은은 아담의 말을 잠시 기다리다가 아무 말이 없자 자신이 하고 싶은 질문을 마저 했다.
“너 다미를 이 마을에 데려온 이유가 뭐야? 세상과 격리시킨다거나 뭐 그런 거야?”
아담은 한숨을 쉬고 영은 쪽으로 기울어진 몸에 힘을 빼며 허리를 완전히 의자에 기댔다. 손가락으로 탁자를 일정한 간격으로 치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했다.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할지 생각하기보다 뭐라고 할지 떠오르기를 기도하는 꼴이었다.
“생각하지 마. 있는 사실을 말해줘.”
“영은아.”
영은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응답은 할 말을 바로 하라는 것이었고 아담은 그것을 이해했다.
“이 마을을 떠나.”
“왜?”
“너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다미는 대체 어떤 아이니? 사이코패스 환자야?”
아담은 눈을 감고 하느님께 기도했다.
‘하느님, 저의 죄를 용서해 주소서. 천사들을 보내주어 저희를 지켜주소서.’
다시 눈을 뜨고 영은을 바라보았다. 원인과 결과라는 것은 과학의 영역에서는 분명할지 모르나 삶의 영역에서는 너무 복잡해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영혼의 부분에서는 어떨까. 그것은 미지의 영역이라 규명할 수 없다. 복잡한지 단순한지조차 불분명하다. 아담은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든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지만 꽉 막혀 썩어가는 자신도 살아야 했다.
“다미는 악마에 씌었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있을 때 악마에 씌었고 고아원 수녀님들을 모두 죽였어. 그 해에 내가 다미를 입양한 거야. 너에게 주는 생활비는 그 고아원의 원장이 대주고 있어.”
“아... 악마?”
영은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아담을 빤히 쳐다봤다. 아담으로서는 영은이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한 터라 이 반응이 뜻밖이었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정말 악마에 씐 거야? 그래... 그 아이의 눈빛과 표정... 사람의 것이 아니었어. 기억나. 나에게 와서 날 위로해 주면서 그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 부드럽게 다가온 그 속삭임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녹아버렸어. 그때 대답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아담은 그만 말하라고 외치고는 영은에게 성호를 그어주고 묵주를 손에 쥐어주었다. 그 덕인지 영은은 차분해졌다. 핫초코를 한 모금하고는 놀란 가슴부터 달래기 시작했다.
“내가 매일 밤마다 악마를 쫓는 기도를 하고 있어. 쉽지 않고 나도 많이 지쳐가지만... 끝까지 해봐야지.”
“아까 말한 그 원장은 지금 어디에 있어?”
“바티칸에 있어.”
“아... 바티칸.. 대.. 대단한 사람인가 보네.”
“영은아. 마을 떠나. 네가 자리 잡을 때까지 생활비 계속 보내줄게. 필요하면 더 보내줄 수도 있어.”
용기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고 상황이 받쳐줘야 빛을 발하는 법이라는 것을 아담은 영은에게 설명했다. 영은은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