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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Oct 22. 2024

3부 18화)데이트

일요일이 되고 현석은 자신 삶의 목표를 만나러 서울시내로 나갔다. 다미가 어디 가냐고 물었을 때 혹시 따라가겠다고 할까봐 학교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둘러댔다. 주일 미사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그녀를 향해 갈 때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조금 나아져가고 있는지 몇 번이고 거울과 핸드폰 카메라를 통해 확인했다. 아무래도 핸드폰을 통해 비춰지는 모습이 좀 더 나았고 이게 실제 모습이기를 바랬다. 만약 좀 더 못난 외모가 나의 외모라 그녀가 별볼일 없이 생각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하고 그 걱정을 그녀가 자신에게 보냈던 친절한 말, 단아한 미소, 다른 남자에게는 안했을 것같은 그녀의 말들로 애써 짓눌렀다. 

‘이건 정신승리가 아니야. 분명 날 좋아해.’     


우체국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사이비로 보이는 기독교 전도꾼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를 보니 다미가 떠올랐다. 

‘내일 학교에 가있는 동안 다미가 슬기누나, 예정아줌마가 한 대화가 녹음될거고 그걸 들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 있을거야. 기적의 날이 뭔지 알아야 하는데.. 또 누군가 죽거나 그런 일을 계획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그 때 얇은 청바지에 스트립 무늬의 상의를 입고 웃으며 다가오는 그녀가 보였다. 

‘녹음은 내일이니까 내일 생각하자.’ 세상이 바뀌자 생각도 바뀌었다. 다미는 아무래도 좋았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녀였다. 왠지 자신이 입었으면 촌스럽거나 잘해봐야 그저그랬을 패션을 그녀는 빛나는 선녀처럼 두루고 있었다. 사랑의 눈으로 봐서 그렇다고 하기에 정말로 눈이 부심을 느낀 현석이였다. 마약을 한 사발 들이켜도 이보다 큰 즐거움을 줄 수는 없을 것을 다시 느끼며 현석은 수줍게 그녀를 맞았다. 




“잘 있었어?” 

그녀는 묻는 말에 대한 대답 없이 다가와 현석의 팔을 손으로 한 번 쓰다듬고는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늦었다고 해봐야 5분이었는데 그 사과는 현석으로 하여금 그녀가 인성까지도 완벽한 여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둘은 시내길을 걷기 시작했고 현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에 다시금 불안한 염려가 머리에서 새어나왔다. 


‘이렇게 예쁘고 착한 여자가 왜 날 좋아하지? 더 잘생기고 멋진 남자가 많을텐데.’ 

그녀는 살 것이 있다며 문구점으로 가자고 했다. 그녀는 문구점에서 볼펜, 노트, 키링, 편지지, 편지봉투, 스티커를 샀다. 현석은 다양한 디자인의 문구들을 보면서도 그것들이 모두 그녀를 보게 만드는 장신구정도로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충분히 밝은 조명은 그녀의 아우라를 그에게 더 확대시켜주고 있었다.


“너는 뭐 살 것 없어? 내가 사줄게.”

“어? 아니.. 난 괜찮아.”

“그래도 아무거나 하나 골라봐.”

‘보통은 남자가 사는거 아닌가.. 여기서 하나 얻게 되면 폼이 좀 떨어질 것 같은데..’ 현석은 눈치를 보다가 이따가 더 비싼 걸 사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충 볼펜을 하나 골랐다.

“이상한 디자인이네.”


그녀의 말이 가슴을 찢어 놓았지만 어쩔 수 없었고 둘은 카페로 갔다. 현석은 음료도 그녀와 같은 것을 시켰다. 같은 카페모카를 시킨 것은 단순히 공감대 형성만이 아니라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음료를 주문했다가 어린애 취급받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음료와 함께 마주 앉은 어린 남녀는 주로 여자의 주도로 대화가 이루어졌고 여자의 웃음으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남자가 하는 일은 그저 목줄에 끌려다니는 개 정도의 역할 뿐이었다. 현석은 물어보고 싶은걸 물어볼까말까 떨리는 심장과 고민하다가 멋있고 침착하게 물어보면 문제될게 없다는 영화에서나 보던 그림을 상상하며 그녀를 향해 물었다.


“남자들이 대시하거나 그러지 않아? 왠지.. 많았을 것 같은데.”

“집학교집학교라서 그런 일은 없었어. 학교는 여고니까.”

“아...” 현석은 마음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쉼과 동시에 왜 다음 멘트를 미리 계획하지 않았는지 후회했다. 

“너는? 여자친구 사귀어봤어?”

“아니. 나도 집학교라서.”

“그럼 우린 운명인건가?”


현석은 그 말에 심장이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그녀도 뭔가 말하고 나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사귀자고 해야되나? 좋아한다고 말하고. 그 다음엔? 남자가 고백해야 하는 법인데.’ 현석은 답답해하며 고통스러워했다. 다미의 성격이 괜스레 부러워졌다. 


“근데 편지 쓰려고?” 

현석은 화제전환 능력에 스스로 만점을 주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녀의 대답이 처음으로 바로 나오지 않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응.. 할머니한테 쓰려고.”

“할머니? 어디 계시는데?”

“돌아가셨어.” 이 말과 함께 그녀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을 못보는 것이 슬펐지만 동시에 그녀를 달래줄, 달래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 생김에 힘이 생긴 현석이 적극적으로, 동시에 조심스레 물었다.

“아.. 그런데 편지를 쓰는 거야?”

“응. 어렸을 때 날 키워주신 고마운 분이시거든.”

“부모님은?”

“이혼하시고 각자 재혼하셨어. 처음엔 둘 다 싫어서 할머니랑 살다가 할머니 돌아가시고나서 아빠가 날 데려가셨어.”

“아... 힘들었겠다.”

“괜찮아. 아빠도 새엄마도 잘해주시고. 그런데 한 번씩 할머니가 너무 그리워서 그게 제일 힘들어.” 

이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다. 현석은 그녀가 알고보니 상처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또 한편으로 안도감도 생겼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대도 형성하고, 남자로서 여자를 위로해주고 보살펴줄 수 있는 상황이 생긴 것이다. 현석은 티슈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옆으로 다가가 품에 안기게하여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심장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고 결국 엉덩이만 몇 번 들썩이다가 끝나버렸다.


둘은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뒤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고 영화관에 가서 보지도 않을 영화 목록들을 보고 시답잖은 이야기로 깔깔 웃다가 –웃는건 대부분 그녀의 몫이었다.- 어느덧 헤어질 시간을 맞이했다. 




지하철역에서 그녀는 현석에게 이제 가고 집에 가서 문자하라고 했다. 그 말에 현석은 이제 더 이상의 불안과 염려는 없어도 되는 것인가 스스로 물었다. 그렇다면 관계를 확실히 매듭짓는 고백이 자신의 몫이라고 다짐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늘 말고 다음에 하자. 더 멋있게.’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진정이 되어 그녀에게 침착하게 말을 할 수 있었다.

“응. 조심히 들어가고.”

“고마워.”

그녀는 말을 마치고 기도할 것처럼 손을 모아 꼼지락거렸다. 무슨 할 말이 있어보이는 눈치였다. 

‘설마 고백하려고? 그럼 고맙지만 미안한데...’ 현석은 내심 그녀의 수줍어하는 듯한 표정에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긋이 아랫입술을 깨물기만 하고 아무 말이 없었다.

“할 말 있어?” 현석은 못참고 물었다. 

“아니야. 잘 가.” 실망스러운 대답이였지만 현석은 다음 기회의 의지를 다지며 돌아서려고 했다. 그 순간 그녀가 현석에게 안겼다. 그녀의 두 팔은 현석의 허리를 감싸고 꽉 쥐었다.

“고마워. 너랑 있으면 마음이 편해. 너 아니였으면 죽어버렸을지도 몰라.”

현석은 그 찰나에 다짐했다. 그녀를 위해 살고 그녀만을 위해 죽겠다고.     







아담은 바흐의 성가를 재생시키고 십자가 모양으로 누워있는 다미의 머리 위에 서서 다미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물에 적신 밀가루빵을 다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아저씨, 안색이 많이 안좋아보여요. 건강에 문제가 생긴건 아닌지 걱정되요.”

“걱정되면 함께 기도해주렴.”

“무엇을 위해서요?”

“너 안에 악마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말야.”

계속 문지른 밀가루빵은 어느덧 그 모양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아담은 의자에 앉아 묵주를 쥔 두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느님, 부디 이 사악한 영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지켜주소서.”

“제가 함께 기도하면 효과가 있을까요?” 조롱섞인 목소리가 아담의 귀에 들려왔다. 

“물론이지. 부마자도 노력을 해야해.”

“아저씨는 저에게 하는 구마기도를 위해 또 누구에게 기도를 청하셨죠? 성모마리아와 미카엘대천사. 뭐 그 외 천사들... 또 있나요?”

“너무 많아서 기억도 안나는구나.”

“그 많은 존재들이 한번에 덤벼도 악마 하나에게 안되는거군요.”

아담은 말문이 막혔지만 억지로라도 아무 말이나 해야함을 알고있었다. 그리고 아담은 다행히도 꽤나 똑똑했다. 

“너 안에 악마가 하나가 아닌 것 같구나.”

“몇 명일 것 같아요?”

“모르지.”

“천사는 몇 명이죠?”

“악마보단 많지. 천사 중 일부가 타락해서 악마가 된 것이니.”

“주님의 무한성을 생각한다면 천사도 무한히 많지 않겠어요? 그럼 그 일부라고 하더라도 무한일테고, 그럼 결국 같은 무한이니 천사와 악마의 수가 같네요.”

“그런 궤변 들을 시간 없단다.” 

아담은 다미의 말이 신경쓰였지만 기죽지말자고 되새김하며 그녀 옆으로 가 그녀에게 십자성호를 긋고 성서를 꺼냈다.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죄인들에게 넘어가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예수님의 부활부분이군요. 아저씨 정말 많이 지쳤나봐요. 이제는 제 안에 악마를 쫓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는 구절들을 읽으시네요.”

아담은 그 말을 듣고 현기증이 나는 것을 참기 위해 눈을 감고 몸에 힘을 주었다. ‘부디 천사가 나타나 내 몸을 지탱해주기를.’ 

“포기하지 그래요. 6년 동안 아무 효과도 없는 짓을 왜 계속 하는거에요?”

아담은 십자고상 앞으로 가 성수Ⅱ병의 물을 엄지손에 묻히고 자신의 입에 십자를 그리며 입술에 묻은 물을 작게 흡입했다.

“이 방에는 하느님도 예수님도 성령도 없어요. 마리아에게 기도해달라고 빌어도 소용없어요. 왠줄알아요?”

“왜?” 악마와 대화하면 안된다는 금기사항, 하지만 동시에 이기기 위해서 해야하는 의무사항,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대화를 아담은 언젠가 다미와 활발히 하고 있었다.

“아저씨같은 위선자의 기도를 들어줄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죠.”

“뭐?” 아담은 분노와 초조함이 섞인채 뒤돌아 다미를 내려보았다.

“본분을 잃고 창녀와 놀아난 사람에게 뭘 기대하겠어요? 아저씨같으면 현석이와 저 중 누구한테 전도를 맡기겠어요?”

아담은 바닥의 한기에서부터 시작되어 머리끝으로 전해지는 슬픔에 몸을 덜덜 떨었다.

“하느님 입장도 생각해야죠. 6년 동안 괜히 모른척했겠어요?” 

아담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장승처럼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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