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에 자중에게 공기계 핸드폰을 받은 현석은 집에 와서 다미가 구마를 받는 동안 자신의 방문이 잘 보이는 방향의 구석에서 작은 소리로 녹음된 대화를 재생시켰다. 아침부터 녹음시킨거라 다미가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의 내용은 삭제하고 바로 시작된 것이라고 자중이 말해줬다.
‘무슨 분위기로 말하는지까지 잘 파악해야해. 두 명이 다미에게 얼마나 홀려있는지까지 생각해서...’
현석은 정말 하기 싫은 집중을 핸드폰을 귀에 갖다대며 높이기 시작했다. 현석은 온집중을 다하며 단 한마디라도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있을지 추리하려고 했다. 기적의 날에 대한 내용이 아니더라도 처음 인사부터 시작해서 누가 먼저 지시형으로 말하는지, 누가 묻고 대답은 누가 하는지, 어떤 어휘를 선택하는지. 하지만 현석은 빨리 지쳐버렸다. 능력 부족인지 아니면 발견할 거리가 없는 것인지 현석은 아무런 단서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멍청한건가? 프로파일러들은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거야?’
그렇게 현석은 스스로에게 실망하며 한참 대화를 듣다가 드디어 기도의 순간이 다가왔다. 기도는 주기도문부터 시작해서 누구나 똑같이 하는 기도를 외우고 슬기의 장애가 낫기를 바라는 내용의 기도가 이어졌다. 현석은 그들이 직접 생각해서 말하는 기도를 집중해 들었지만 딱히 악마를 느낄 수 있는 요소는 없었다. 현석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지쳤지만 그의 정신을 바짝 깨워주는 단어가 등장했다.
‘기적의 날까지 12일 남았네요.’
‘다미야.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정해진거야?’
‘네. 기적의 날 하루 전에 해야 될 일을 쪽지로 적어서 전달해드릴게요.’
‘하루 전에? 미리 알면 안될까?’
‘미리 알면 재미없잖아요. 그 날까지는 궁금한 재미로 지내시고, 알고나면 설레는 재미로 지내시고.’
‘난 지금 이렇게 너와 같이 있는걸로도 행복한걸.’
‘어머, 너는 무슨. 나도 그래.’
세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고 그 이후로는 평범한 대화에 이어서 헤어지는 대화였다.
‘하루 전이면 금요일. 그 날 뭘 할지 알려준다고? 그럼 그 때까지 뭘 할 수가 없잖아. 다미에게 직접 물어봐서 정면돌파할까? 아니면 하루전에 쪽지를 어떻게든 구해서...’
현석은 뭘 해야할지 갈팡질팡 생각하고 있었고 그 때 핸드폰 문자 소리에 얼른 두근거리는 심장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집에 오자마자 잠들어서 문자 이제봤어 ㅠㅠ 자고 있어?'
현석은 홀로 있는 방에서 피운 웃음꽃과 함께 핸드폰 너머 그녀와 대화하며 잠들었다. 잠들때까지 그를 지배하는 고민은 공식적인 연애의 시작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하는 것이였다.
아담은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고해실에 앉아 있었다. 고해를 하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들이 오면 틀에 박힌 이야기만 하고 실제 죄를 고백하지 않음을 아담은 알 수 있었다. 기도가 부족했다, 마음 속으로 친구 욕을 했다, 미사시간에 다른 생각을 했다 등의 고백만 들어야했다. 한때는 그래도 하루에 한 명 정도는 돌아가면서 들렀는데 –형식적인 것처럼- 정환이 죽은 뒤로는 모든 발길이 뚝 끊겼다. 영은이 와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던 일종의 소동이 한 번 예기치 못하게 있었고 그 뒤로는 늘 아담의 예상대로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아담은 그곳이 편했다. 공식적으로 사제 역할을 할 때부터 고해실은 누군가의 죄를 사해준다는 자신에 대해 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비록 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오히려 절대 아무도 안온다는 것이 확신된 뒤로는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원기 충전의 시간이 되었고 기이하게도 같은 시기부터 그곳에서만큼은 다미에 대해서도 딱히 별 걱정이 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다미에 대한 관념이 머리 속에서 집중되지 않았다. 다만 고요한 공기와 시간의 미세한 흐름만이 느껴지고 있었다. 천국이 이런 곳이라면 지루하다고 하더라도 영겁의 세월을 보내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죄 고백하러 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소리에 아담은 당황했다. 게다가 모르는 남자 목소리였다. 중년의 남자 목소리였다.
‘차마 말 못할 문제가 있어서 이런 시골의 성당까지 온 것일까? 하지만 여기는 지도에 안나올텐데.’
“신부님?”
“아 예. 죄송합니다. 벽에 붙어있는 글을 보고 천천히 죄를 고백하십시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규호가 눈을 부라리며 벽에 붙어있는 글을 보고 적혀있는대로 읽었다.
“고해한지... 어.. 아.. 고해처음입니다.”
“세례 받으셨습니까?”
“그게 뭡니까?”
이제야 아담은 목소리의 주인을 알아챘다. 마을에서 만나는 일이 거의 없는, 항상 집에만 박혀있던 아저씨였다. 이름도 모른다. 고시공부를 하는 딸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것만 기억이 났다.
‘왜 이 사람이 뜬금없이 왔지? 설마...’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 아직 세례를 안받으신 것 같은데 세례를 받아야 고해성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아, 세례는 다음에 꼭 받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저의 죄가 용서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자비가 베풀어지도록 돌봐주십시오.”
고해성사를 안봐주겠다고 했을 때 뭐라고 할지 응답할 문구를 다미가 보내준 메시지를 읽고 대답을 기다렸다. 곧 규호에게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역시 시키는대로 하는게 편해.’ 규호는 이제 자신이 직접 죄를 고백할 것이 부담스러웠다. 그 이유는 실제 있는 일을 전달할 그 말들을 직접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제가요. 사실은 저희 집사람이랑 무슨 일을 하냐면요. 많으면 일주일에 10개, 적을 때는 1개만 올 때도 있습니다만은, 그... 사람 시체를 처리합니다. 잘게 잘라서 흙에 말아서 열에 쪄가지고 굳힌 다음 땅에다 묻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죽이지는 않습니다. 이미 죽어서 온 사람들을 처리하는 겁니다. 저도 집사람도 무식해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어쩌다보니 제가 예전에 알던 사장님 통해서 일을 하게 됐는데요. 그 돈 벌어서 저희 팔자 고칠려고 하는건 아닙니다. 그동안 부모 노릇도 제대로 못해준 우리 딸 공부할 돈, 방 월세하고 생활비 받쳐줄려고 한 것입니다. 이제는 안하겠습니다. 제가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하느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죄를 용서해주세요, 신부님.”
마지막 말은 발음이 또박또박했다. 마지막에 말하라고 다미가 써준 메시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다미가 써준 걸 읽은건가? 다미는 어떻게 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지?’
아담은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고 그가 해야할 것들을 알려주었다.
“우선 하고있는 일은 그만두세요.”
“그만두겠습니다.” 말을 끊는 규호의 무례함에 불쾌했지만 아담은 참고 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에게 고백해주세요.”
“뭘 말입니까?”
“이 죄를 고백하게 된 계기를요.”
“신부님이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거의 매일같이 사람 시체를 보고 있는 것이 어떤 기분이겠습니까? 도저히 사람 할 짓이 못됩니다. 죽은 시체 눈을 보고 있으면 꼭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요. 제가 죽인 것도 아닌데. 이러거나저러거나 신부님 말대로 이 일은 그만두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형제님. 매일 이 시간에 올 수 있겠습니까? 죄가 큰만큼 용서받기 위한 노력도 커야 하는 법입니다.”
“예? 어... 예, 하겠습니다. 좋아요.”
아담은 규호의 승낙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화들짝 놀래는 소리에 거절할까 잠깐이나마 노심초사했던 것이 한번에 쓸어내려갔다.
아담은 규호를 이용해 다미가 하고 있는 짓을 알아볼 뿐 아니라 또한 악마가 규호의 영혼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야하기도 했다.
그러나 규호가 매일 오라는 아담의 말에 놀란 것은 오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였다. 다미의 예측이 정확했기 때문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