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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Nov 01. 2024

3부 22화)분신자살

거짓말도 백번 하면 진실이 된다는 말이 있지만 다미에게는 그렇게 많은 횟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규호가 고해성사를 처음 한 번 이후로 세 번 받는 동안 다미는 또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규호가 아내에게 정확한 사정을 말하지 않고 집을 나간 틈에 규호의 아내 서윤숙에게 접근한 것이다. 그리고 규호가 영은과 간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남편에게만 의지하고 의심이 많은 성격에 월요일에 몰래 핸드폰 통화를 한 것까지 떠올라 윤숙은 그 말을 너무 쉽게 믿어버렸다. 화요일에는 의심만 심어주고 수요일에는 확신을 심어준 뒤 목요일에는 살인을 부추긴 다미였다. 다미는 물증 없이 자신의 증언만으로도 윤숙이 그녀를 믿게 만들었고 금방 자신의 노예로 만들었다.


‘여자는 항상 손해예요.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말이죠. 이렇게 마음 아파하는 것을 남자는 몰라요. 이 아름답지만 속이 갈아 없어져 나오는 눈물을 귀찮아할 뿐이죠.’ 


다미는 이렇게 말하며 윤숙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손에 칼을 쥐어주고 다시 말했다. 

‘이 칼로 찌르는 거예요. 그리고 해방된 삶을 사는 거예요. 제가 도와줄게요.’

윤숙은 이 말을 듣고 홀린 듯 칼을 보다가 잠시 경직되어 망설이는 순간을 가졌지만, 남들은 알 수도 없는 그 틈을 다미는 놓치지 않았다. 

‘전에도 해봤잖아요. 시체인 줄 알았지만 산 채로 왔을 때에.’ 

이 말을 들을 때에 윤숙의 마음속 깊숙한 곳에 공포가 새겨졌다. 막연한 추상적 공포가 아니라 다미라는 구체적 공포에.     

그리고 다음 날 남편을 죽였다. 윤숙은 평소에 하던 대로 뒤처리를 시작했다. 뚱뚱한 그녀의 몸을 쭈그려 앉은 두 다리로 버티며 땀이 얼굴을 뒤덮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다미는 일거리를 주는 조직은 자신이 처리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그녀를 믿는 수밖에 없었다. 보증을 서듯이 다미는 딸에게 주기적으로 나눠서 주라고 1억이 든 현금까지 주었다. 잘게 자르고 있을 때에 다미가 들어왔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윤숙은 이제 다미가 반가웠다. 그 소녀 없이 자신은 존재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잘 마무리하고 있어요?”

“응. 이걸 이렇게 배양토에 다 감아서 그 상태로 랩을 싸는 거야. 그리고 이걸 구운 다음 다시 랩을 벗겨서 이 구워진 채로 땅에다 묻는 거지.” 윤숙은 다미에게 손짓까지 해가며 설명했다. 여기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한몫하고 있었다.

“칼은요?”

“깨끗이 소독했지.”

“딸한테는 뭐라고 할 거예요?”

윤숙은 행동이 멈춰졌다. 본인이 멈춘 것이 아니라 본인이 본인에게 멈춰졌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우리 다정이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생각 안 해봤어요?”

“내... 내가?”

“그럼 아줌마가 생각하지. 내가 생각해요?” 다미는 웃으며 말했다.

‘그.. 그렇긴 하지. 내 가족 일을 내가.. 하지만 네가 시킨 거잖아...’ 

윤숙은 훌쩍이며 고무장갑을 벗고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미를 노려보았다. 

‘내가 악마에게 놀아난 거야. 다정히 그 착한 아이를 아빠 없는 아이로 만들어버렸으니...’


그리고 본격적으로 눈물을 쥐어짜려는 때에 다미의 총이 뒷주머니에서 나와 윤숙의 관자놀이에 대어졌다.

“1억. 다시 돌려줘요.”

“뭐?” 윤숙은 고개를 홱 돌려 다미를 노려보았다. 여차하면 총을 뺏어서 다미를 쏴버릴 생각도 했다. 

‘쪼그만 게 감히 누구한테 까불어. 내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이 몇 명..’

다미는 총손잡이로 그녀의 관자놀이를 정확히 내려쳤다. 그녀는 고통스러워하며 나자빠졌다. 다미는 총을 장전한 다음 쭈그려 앉은 다음 신음하는 그녀의 입에 집어넣고 그녀를 쳐다봤다. 윤숙은 다미가 이러한 짓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사실 한두 번인 게 맞다.-



“엄마가 아빠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 딸은 기분이 어떨까요? 그리고 자신에게 보내지는 돈이 이런 돈인 것까지 알면?” 

다미는 윤숙의 뺨을 쓰다듬으며 안쓰럽다는 듯이 웃었다. 

“아저씨는 바람피운 적 없어요. 내가 지어낸 이야기예요.”



이 말을 듣고 윤숙은 벌어진 입으로 또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분노는 들지 않았다. 비참함과 자신의 어리석음, 그리고 눈앞의 악마에 대한 무력감뿐이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내려왔으면 하는 심정과 절대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을 아는 머리가 그녀를 비극의 막장으로 인도하고 있었다. 고통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드는 것인데 윤숙은 눈물과 함께 그 내면의 고통을 계속 생성하고 있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요. 그럼 저 1억은 따님에게 가고 두 분은 사고로 돌아가신 걸로 해줄게요.”     









‘사랑하는 딸, 나의 모든 것.’ 

여자는 남자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는 법이었다. 왜 그런지 설명하는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설명이 되든 안되든 그 진리는 아름답게 빛났다. 윤숙은 시체를 처리하는 일이 들어왔을 때에 꽤 괜찮은 보수에 만족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하겠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다. 딸은 항상 저녁 9시가 되면 전화를 했다. 9시는 학원이 끝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딸은 귀염성이 좋았고 늘 자신을 잘 따랐다. 애아빠도 겉으로 표현은 못했지만 역시 딸을 사랑했다. 

‘다정아. 미안해. 꼭 네가 되고 싶던 검사가 돼야 해.’ 

윤숙은 딸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이어서 품에 안고 울었다. 저녁 9시마다 통화를 하면 주로 하는 이야기는 오늘은 뭘 외웠는지,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에 뭘 먹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가끔씩 첫 월급을 받으면 무엇을 갖고 싶은지 물었는데, 자꾸 묻는 이유는 항상 대답을 대충 하는 부모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딸은 자신이 검사가 되면 누구를 잡아줄까 묻기도 했다. 이런 대화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통화하는 사람들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역할만 했다. 윤숙은 이대로 즐겁게 산다면 굳이 딸이 사법고시를 합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미의 마음과 딸의 마음은 또 달랐다. 


딸은 정말로 검사가 되고 싶어 했고 어릴 때부터 정의감이 남달랐다. 그 정의감은 주로 범죄자에 대한 복수심의 형태였는데 부모는 그 불타는 감정 또한 사랑했다. 윤숙은 준비를 마친 뒤 물건을 챙겨 성당으로 걸어갔다. 돌이킬 수 없는 지옥문이었지만 이 지옥문이 딸을 위한 최선의 일방통행로였다. 




성당 앞에 가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5시 30분이었다. 곧 끝날 생의 마지막 한이라고 할 것은 딸의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었다. 


‘사랑해. 다정아. 사랑해. 이 못난 애미를 용서하렴. 너에게 편지한 줄 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 엄마의 고통도 알아주렴. 똑똑한 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단다. 내가 네 아빠를 죽였는데 너랑 상의조차 할 수 없는 이 마음이 어떻겠니?’ 

윤숙은 제대 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성상을 바라보았다. 딱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래로 시야가 옮겨져 마리아상을 보았는데 윤숙은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냥 2등급 정도 되는 신으로 보였다. 주변에 모든 것이 악마의 지시 사항으로 여겨졌을 뿐이다. 


‘미안해, 여보. 당신도 못할 짓 많이 했는데. 우리 모두 딸만 보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인생이 끝나네. 저승에서 날 만나도 용서하지 마.’ 


윤숙은 죽음을 눈앞에 두면서도 딸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지 않았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기에 앞서 다미엔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윤숙은 기름을 성당 곳곳에 뿌린 뒤 이어서 자신의 몸에도 뿌렸다. 그리고 눈을 감고 딸을 떠올리며 라이터에 불을 켰다. 그리고 세상과, 딸과 작별할 생각을 했지만 손까지 잔뜩 묻힌 기름 때문에 자신이 생각한 그런 순간은 오지 않았다. 신체가 불타는 이 고통은 그녀가 예상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세상 사람 누가 되었든 지금 자신이 아닌 모든 사람들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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