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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학의 사도 Nov 04. 2024

3부 23화)다미의 부모

새벽 6시에 성당으로 오는 아담으로 인해 불타는 모습이 발견되었고 119의 진화작업은 7시가 조금 넘어서 그래도 잘 마무리되었다. 건물이 무너지거나 할 정도는 아니였지만 내부는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으며 모든 것이 불타버렸다.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한 시체가 그 형체를 알 수 없게 눕혀져있었다.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서 이 끔찍한 풍경을 보고 있을 때에 아담은 누가 오지 않았는지를 살폈다. 오늘도 고해를 와야 할 곽규호도 오지 않았고 그 아내도 오지 않았다. 

저 시체는 둘 중 한 명... 누구지...’ 아담은 다미를 쳐다보았다. 다미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표정으로 경찰과 119 요원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담은 119 요원에게 다가가 다시 물었다. 


“성별이라도 알 수 없나요?” 요원은 귀찮았지만 사제복을 입고 있는 아담에게는 왠지 말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이 들었다. 


“여자에요.”

‘그렇다면 규호아저씨네 아줌마... 그럼 규호 그 양반은 지금 어딨는거지? 아내가 죽으려고 몰래 집에서 나온 줄도 모른다..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 아니야. 그런게 아니야. 어디 엉뚱한 곳에 가있거나 아니면... 죽은거야.’

아담은 불타버린 성당을 보며 분노가 차올랐다. 

‘그동안 내가 너무 허약했어. 너무 단순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했던거야.’ 

그는 부르르 떨리는 몸과 얼굴을 최대한 티내지 않으려고 상황이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토요일 저녁 미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말도 없이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죽은 사람의 집으로 향했다. 이미 경찰이 여러가지를 수색 중이었지만 아담은 전혀 개의치 않고 안으로 향했다. 역시 사제복을 입고 있는 것만으로 경찰들은 그를 막지 않았고 아담은 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눈으로 한 번, 경찰을 통해 귀로 한 번, 두 번 확인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 



현석은 괜찮냐고 물었지만 아담은 그 말을 실제로 듣지 못했고 다미가 있는 방으로 갔다. 그리고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다미의 뺨을 때렸다. 다미는 소리없이 나자빠졌고 아담은 그런 그녀를 발로 밟아대더니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들어 다미에게 집어던졌다. 


“아빠, 왜 그러세요. 그만해요.” 


현석이 아담을 뒤에서 안아 끄집어내며 말했다. 하지만 아담은 평소보다 힘이 강해져 있었다. 현석을 뿌리치고 다미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리더니 다시 뺨을 쳐 쓰러뜨렸다. 현석은 다시 한 번 말려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현석은 방에서 쫓겨나다시피 나갔고 한참의 구타는 계속되었다. 


‘다미가 저 아줌마를 조종해서 성당을 불지른거야? 아빠는 뭐에 화가 나신거지? 불타버린 성당? 아줌마의 죽음?’ 

현석은 기적의 날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가 생겨난 이 비극에 무력감을 느꼈다. 정말 다미의 짓이라면 자신과 아버지는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봐야했다.     


방 안이 조용해지나 싶더니 아담이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소파를 끌고와 문 앞을 막아버렸다. 그것도 부족한가 싶어 아담은 부엌에 식탁까지 끌고와 소파도 못움직이게 막았다. 씩씩대는 소리는 현석이 난생 처음 들어보는 소리로 현석은 이 상황이 너무 무섭고 불편했다. 그러는 한편 이렇게 다미를 감금시키면 예정과 슬기와는 만나지 않을테니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도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담과 현석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경찰이 참고인 조사라고 하면서 점심 직전에 들어왔지만 형식적인 이야기 뿐이었다. 경찰 조사라는 것에 긴장한 현석도 그냥저냥 형식적인 대화였다는 것을 눈치챌 정도였다. 다미는 낮잠을 자고 있는데 깨워야겠냐고 현석이 물었고 경찰은 필요없다고 대답하고는 퇴근하는 사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갔다. 아담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둘은 마저 자유로운 식사를 했다. 

“아빠. 다미 점심은... 어떻게 해요? 저렇게 굶겨요?”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차마 아들에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될텐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아담은 현석의 얼굴을 보았고 현석은 괜히 자신이 혼나는 것 같아 제대로 마주보지 못했다. 안그래도 내일 데이트가는 것 때문에 시내 외출 나가는 것 허락받기도 부담스러운 때라 더욱 그랬다.

“현석아.”

“... 네?”

“아무래도...” 

아담은 숟가락으로 밥상을 긁어대다가 마지막에 그 숟가락으로 작게 십자가를 그린 다음 현석을 보며 말했다.

“다미를 죽여야 될 것 같다.”



현석은 그 말을 듣고 밥이 목에 걸려 재채기를 거칠게 해댔다. 

‘다미를 죽인다고? 결국 마지막에 생각하는게 그런거야? 이렇게 끝나는건가... 그래도 딸인데. 아니야. 다미는 죽어야 해.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더 큰 비극이 생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은 잘못됐어.’ 

현석은 다미와 헤어져 평생 서로 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지만 지독한 악마와의 싸움을 끝내야 한다는 사명감도 들었다. 다미가 저지른 악행들을 보면 지금까지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아버지와 자신도 대단한 인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아래에 살아갔지만서도 원래는 가족이 아니었기에 그런 종류의 죄책감은 들지 않았다. 

‘다미를 죽이면 끝나. 모든게 끝나. 아버지 건강도 괜찮아지고... 그리고 나도 내 사랑에 더 집중할 수 있어. 기적의 날... 기적의 날이 뭔지는 모르지만 쪽지가 전해지기 전에 또 다른 비극을 막을 수 있다면...’



“언제요?”

아담은 현석의 담담한 대답에 살짝 놀랐지만 아마 아들에게서도 머리 속에 많은 복잡한 생각이 있었을거라 직감했다.

“빠를수록 좋겠지.”

현석은 더 물어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일건지 궁금하지 않았다. 왜냐면 예비살인자가 될 아버지 머리 속에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것을 겉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기에. 출생신고도 안되어있는 다미였기에 뒷처리 걱정할 것도 없었다. 현석은 이제 자기 인생에서 더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저 그리고... 내일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시내를 좀 나갔다 올게요.”

“저번주에도 나가지 않았니? 외출이 잦구나.”

“제가요? 다른 애들에 비하면 적은 편인데...”

아담은 현석의 말에 피식 웃었고 매우 쉽게 허락이 떨어졌다. 아담은 마음 속으로 환호를 지르며 대체 뭘 떨려했는지 스스로에게 황당해했다. 어리고 여린 소년에게 자신의 사랑이 더 중요했지 핏줄이 안섞인 남매는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토요일 저녁 미사는 취소되었고 일요일 오전의 주일 미사가 아담의 집 거실에서 열릴 것이라 공지되었다. 미사에 올 사람이라고 해봐야 예정 부부 밖에 없었다. 강예정은 슬기를 데리고 가겠다고 전화 통화로 전했는데 그래봐야 다미를 빼고 5명이었다. 거실에 그럴 듯 하게 제단과 성전을 차려놓고 미사를 집전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밤 10시가 되자 아담은 동네길을 산책했다.

 밤시간의 산책은 그가 이 마을에 살면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항상 다미에게 구마의식을 치르고 있거나 다미가 가출하고 없는 경우에 혼자 방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담은 적당히 싸늘하게 자신을 감싸는 밤공기와 밤하늘의 별과 달이 이토록 사람을 새롭게 해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마약은 마약일 뿐이었다. 아담은 솔직한 자신의 마음을 어두운 밤길에서 자신에게 보였고 슬픈 눈물을 흘렸다. 아담은 다미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죽일 수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잘못된다 하더라도, 악마의 싸움에 굴복한 죄로 하느님의 분노를 산다 하더라도, 다미를 죽인다는 것은 말도 안되었다. 




아담은 잘 기억나지 않는 유리의 얼굴을 떠올렸다. 죽은 사람이 아닌 그녀가 어딘가에 살아있겠지만 어딘지도 모르고, 이제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 감촉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한 때 그녀를 정말 사랑했다는 것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아담은 이게 정말 자기 탓인가 생각하며 우울해졌지만 이내 또 하느님에게 주신 악과 싸워야 한다는 사명, 그리고 파면당한 사제에게 주어질 수 없는 기회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졌다.



‘유리야. 우리가 사랑하는 딸을 끝까지 지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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