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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미 Aug 22. 2019

서점 위치에 대한 아쉬움 혹은 딜레마

어느덧 서점의 문을 연지 9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초보서점사장으로서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많았지만, 무엇보다 서점 위치에 대한 아쉬움이 점점 크게 남는다.


우리 서점을 대중교통으로 찾아오기란.. 동네나 근처 사시는 분 아니라면 좀 쉽지 않다. 역세권도 아닐뿐더러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 서점을 지나가는 버스 노선도 딱 2개뿐이기 때문이다. 

운전을 하고 오시는 분도 마찬가지로 동네 초입부터 구불구불 꽤 먼길을 올라와야 한다. '도대체 여기 어디에 서점이 있다는 거야?' 할 때쯤 우리 서점이 보인다.

상가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닌 주택가이다 보니 주차도 서점 전용공간이 없고, 입주민들의 주차공간을 임시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위치적으로는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렇게 어렵게 우리 서점을 찾아오신 분들이 서점 내부로 들어서면 꽤 만족하고 가신다는 것이다. 그림책 자체가 인테리어 효과가 크기도 하고, 책장이나 조명이 꽤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를 조성해줘서 나름 예쁜 책방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행사나 모임을 진행할 때 모객이 잘 안된다거나, 유난히 손님이 없는 날이면 위치에 대한 아쉬움은 더 커진다.

'우리 서점이 역세권이었다면..' '조금 더 찾아오기 쉬운 곳이었다면..'이란 생각이 자꾸만 떠오른다.

애초에 이렇게 위치적으로 좀 열악한 곳이기 때문에 동네서점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그 또한 너무 낭만적인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현실은 어쨌든 동네서점도 돈을 벌어야 하는 자영업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접근성이 좋은 서점은 마냥 좋기만 할까?

역설적이게도 우리 서점은 접근성이 안 좋기 때문에 소위 '진상'이라는 손님이 거의 없다.

그냥 오다가다 들리거나, 지나가다 봤다거나 하는 비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우리 서점에는 '그림책방'이라는 목적성을 갖고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거의 매너가 좋은 손님들이 오신다. 여기서 말하는 매너란.. 서점이라는 공간을 인지하여 책을 소중히 여겨 주시고, 동네책방의 가치를 인정해주시는 분들을 말한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한 서점에는 책값을 깎아달라는 손님부터, 책을 훼손하고도 나 몰라라 하는 손님, 그냥 뒤적뒤적 정리해놓은 책만 다 꺼내놓고 그냥 가는 손님, 책도 안 사면서 이것저것 인터뷰하듯 물어보기만 하는 손님 등등 별별 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여자 혼자 운영하는 서점에는 간혹 남자 손님의 성희롱까지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물론 서점에 오는 진상은 그래도 양반이라는 얘기도 있다..)


스트레스 중에 가장 최고가 아마도 사람 스트레스 일 것이다. 고객상담이나 판매원 등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대면 서비스를 하는 직종을 감정노동자라고 일컫는 시대 아닌가. 나는 감정노동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손님들께 친절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손님께 무조건 친절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서점의 일상이 매일 같이 불쾌한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었다면, 벌써 서점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또 접근성이 안 좋은 지금의 위치가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우리 서점에도 가끔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손님이 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조용하다는 이유로 일부러 찾아와서 이혼하자며 부부싸움을 한다던가.. 단체로 생일 케이크를 들고 와서 시장통처럼 떠들다가 음식물쓰레기를 버려달라고 한다던가.. 등등




혹시 다음에 서점을 이전하게 된다면 어디가 좋을까 고민을 해봤다.


서점학교에서 어떤 서점주 선배님이 하신 말씀처럼, '지하철역에서 걸어서 15분 이내'를 우선적으로 알아볼 것 같다. 처음엔 무조건 1층만 고집했지만.. 오히려 그런 역세권의 2,3층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접근성은 좋지만 1층이 아니기에 아무나 들어오지는 않는, 그리고 월세도 비교적 저렴한..)


그리고 얼마 전 '구해줘 홈즈'라는 프로그램에서 본 것처럼, 주거와 상업공간이 결합된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층은 서점으로 하고, 2층은 주거공간으로 사용하고. 이 경우는 무엇보다 월세가 별도로 나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는 버는 족족 다 월세로 낸다. 나의 인건비 따위는 없다. 월세는 무조건 지금보다 더 싼 곳으로 갈 것이다.




동네서점에 오면서 찾아오기 힘들다고, 주차가 불편하다고 말하면 서점주는 미안하면서도 답답한 마음을 갖는다. 누군들 그런 위치에 서점을 차리고 싶지 않았겠는가. 서점이 자꾸만 찾아오기 힘든 자리에 생겨나는 건, 책을 팔아서 감당할 수 있는 월세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돌 틈을 비집고 피어나는 민들레처럼, 쉽게 찾아오기 힘든 그 어딘가를 비집고 동네서점들이 생겨난다.

조금 찾아오기 불편하더라도 꽃처럼 예쁘게 봐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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