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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Jun 28. 2020

14. 게으른 게 아니라 부지런히 재충전 중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근 10년째 별다른 약속이 없을 때의 나는 금요일 밤부터 주말 내내 침대나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식사하거나 씻을 때를 제외하고 나는 주로 누운 채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은 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침잠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때로는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읽고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글을 쓰는 데 시간을 쓰기도 한다.


  평일에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회사에서 스스로를 소진하고 주말에는 기력 없이 누워만 있는 내 모습에 주변에서는 늘 걱정이 많다. 모두의 눈에 누워만 있는 주말 내 모습은 스트레스에 정복당한 무기력한 직장인일 뿐인 듯하다. 몇몇은 스트레스도 풀고 몸과 마음을 건강히 가꾸기 위해서 최소한 주말만이라도 자기 계발을 위해 무언가를 배워보라고 강권하고는 한다. 이미 나를 게으르고 한심하게 보는 가정이 깔린 그런 오해 섞인 충고는 사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다.  

 

   많은 직장인들처럼 나도 내 나름대로는 힘들게 평일을 버텨내고 있다. 6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 한 겨울에는 깜깜할 때 집을 나서는 나는 일주일에 두어 번은 밤 10시가 넘어서야 다시 깜깜한 어둠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다. 회사에서는 사소한 일까지 모든 게 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하루 종일 내 안의 모든 기력을 쏟아내고 돌아온 집에서는 다음날 쓸 에너지를 비축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다.

  

  똑같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바치며 살던 학생 때가 사무치게 그리울 정도로, 사회생활은 정말 녹록지 않다. 공부가 시간을 바쳐 내 내면을 채우는 뿌듯한 작업이었다면 사회생활은 반대로 시간을 들여 내 내면을 파내고 그 대가를 받는 일이다 보니 공부했던 시절이 그리울 수밖에.

 

  이렇게 지친 한 주를 보내고 난 뒤에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내게 자기 계발이며 배움은 너무 뜬구름 잡는 충고일 뿐이다. 물론 나도 한동안은 일에만 목매는 거 외에 발전 없는 내가 바닥만 남은 것 같아 두려웠다. 진화는커녕 퇴화해간다는 느낌이 너무 끔찍해서 공부한답시고 몇 권의 책을 사두기도 했었다.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성취를 좋아하던 나 같은 사람조차도 사놓은 책을 그대로 쌓아두는 바보 같은 짓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처음에는 이런 내 모습이 못나 보여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굳이 무언가를 새로 배우고 채워 넣어야 한다는 자기 계발의 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로 했다. 나는 회사 생활로 소진시켜 바닥난 내 내면을 쉬면서 생기는 에너지로 다시 채워 넣기로 했다. 복잡했던 머릿속을 비우고 난 뒤에 스스로에 대해 침잠하며 느끼는 감정과 글을 쓰며 얻는 영감으로 내면을 다시 풍요롭게 만드는 시간이 나는 너무 좋다.   

 

  물론 주말에도 바쁘게 지내면서 새로운 걸 배우면서 내면을 다시 채우는 사람도 있겠지만 지친 마음을 달래고 회복시키는 방법은 다 제각각이니 나 같은 사람에게도 게으르다는 비난이나 섣부른 충고는 사양하고 싶다. 나는 게으른 게 아니라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나를 비우고 다시 채우는 재충전의 시간을 갖는 중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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