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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s Kim Aug 30. 2020

16. 부모가 될 준비가 되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이는 언제 낳냐는 주변의 호기심 어린 질문은 언제나 대답하기 어렵다. 2세 계획이 없는 딩크족이라면 확실히 선이라도 긋겠지만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시기를 알 길 없는 나는 난감한 웃음을 짓다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되면 이라고 애매한 대답을 내놓고 만다.


  연애기간이 길긴 했지만, 나와 남편은 결혼 후 얼마간은 시간이 흐르고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면 2세를 계획하고자 했다. 원래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회사 일에 시달리면서 야근이 일상이던 내가 임신을 유지할 몸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과 임신을 병행할 수 없을 것이라는 슬픈 현실 앞에서 임신으로 여태 어렵게 지켜온 커리어를 내려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계획과는 다르게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갑자기 아이가 찾아왔다. 계획에 없던 임신이라 처음에는 나와 남편 모두 당혹스럽기만 했다. 우리는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이를 품고 조심스레 지낸 며칠간 미세하게 느껴지는 몸의 변화를 통해 나는 언제 당혹스러웠냐는 듯 아이를 빨리 만나 보고 싶어 졌다.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아이가 찾아왔을 때 변화는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해서 아무렇지 않아 질 감정이 절대 아니었다.

  

  임신 기간에는 새로운 생명 때문에 한편으로는 설렜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한창 바쁜 시즌이었던 회사 때문에 임신 사실을 바로 회사에 알리지는 못했고 나는 야근과 예정된 행사를 정신없이 소화해야 했다. 행사가 모두 끝나면 회사에 임신 사실을 이야기하고 직무 순환이 가능하다면 업무량을 조정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생각에 아기는 동의하지 않았는지, 예고 없이 찾아왔던 아기는 행사 진행 도중에 또다시 예고 없이 떠나버렸다. 어쩌면 내 몸 상태가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함께한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떠나버린 아이가 남긴 상처는 꽤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아프게 했다. 모든 결과가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아이를 맞이한 내 잘못 같아서 자책감을 떨쳐내는데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첫 아이가 떠나고 2년 여가 흐른 지금, 이제는 어느 때 보다도 아이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마음먹은 대로, 계획한 대로 아이가 찾아오지는 않고 있지만 노력 중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를 만나고 싶어 하는 지금, 가끔은 나와 남편이 부모가 될 준비가 다 된 걸까 궁금할 때가 있다. 사실 부모가 될 준비라는 게 영양제를 먹고 운동하면서 몸을 만드는 것 외에 뭘 해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부모가 될 준비는 아기가 찾아오는 순간 제대로 시작되는 것 같다. 아무리 미리 준비한다고 해도 막상 내 몸 안에 두 개의 심장이 뛸 때는 세상 모든 게 백지처럼 텅 비어있는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질 테니까. 애초에 완벽한 준비라는 건 없는 것 같다. 부모도 아이를 품고 있을 때, 아이가 세상에 나와 하루하루 커갈 때 함께 커가고 끊임없이 성장해 나갈테니 말이다.


  나와 남편도 이제는 부모가 되어보고 싶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세상 가장 두렵고 힘들면서 경이롭고 벅차오르는 순간을 경험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와 함께 부모로서 성장해나가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많은 걸 포기할 수도 있지만, 아기를 만나는 일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일 테니까. 나와 남편은 이제 부모가 될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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