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운명을 거부했던 베이시스트

폴 체임버스 Paul Chambers

by 이락 이강휘

한창 록 밴드 음악에 심취했을 때, 만약 밴드에서 연주한다면 베이스를 맡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베이스는 현이 네 개밖에 없으므로 여섯 줄인 기타보다 연주하기 수월할 것이라는 나름의 치밀한 수학적 계산으로 내린 결론이었다. 거기다 어차피 소리도 잘 들리지 않으니 실수 좀 한다고 해도 티도 잘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베이스는 들리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편견도 좀 있었다.

직장인 밴드를 하는 친구에게 베이스를 해보고 싶다고 하니까, 베이스는 리듬감이 있어야 한단다. 게다가 베이스가 틀리면 합주가 불가능한데, 리듬이 밴드 연주에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 했다. 그 대답으로 천부적인 대충주의자인 내가 함부로 손을 데서는 안 되는 악기임을 깨달았다.(나를 잘 아는 이 친구도 하지 말라는 얘기를 예의 바르게 돌려 말한 것일 테다.)


프레디 머큐리가 베이시스트 존 디콘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가장 짠한 장면이다.)


이처럼 베이스란 악기는 그 역할에 비해 좀처럼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 힘들다. 훌륭한 베이시스트는 캄포 내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베이스란 귀를 쫑긋 세우고 듣지 않으면 소리를 놓치기 일쑤인 악기이므로 대중들로서는 그 실력을 눈치 채기가 쉽지 않다. 침묵 속에서 묵묵하게 자기 역할을 해내는 베이스를 알아봐주는 것은 오로지 감상자의 안목에 달려 있는 것이다. 베이시스트의 고충이 여기에 있다. 눈에 띄지 않으면서 캄포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부담을 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베이스의 본 역할은 리듬을 통해 캄포를 ‘리드’하는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리드악기’로서 베이스 연주를 듣기는 쉽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나같은 대충주의자에게도, 돋보이기는 즐기는 성향의 사람에게도 베이스는 적합한 악기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그런 베이스의 미덕을 거부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있었으니 그 대표자로 폴 채임버스를 꼽을 수 있겠다.

폴 체임버스의 대표 리더작. 베이스 솔로 비중이 많다.

폴 체임버스 Paul Chambers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아르코 주법(활을 사용하여 연주하는 기법)이다. 아르코 주법 위주인 클래식과 달리 재즈베이스는 손으로 현을 뜯는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리듬섹션의 역할을 맡는 재즈베이스의 특성상 운궁의 웅장한 소리는 재즈 사운드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재즈베이스에서 아르코 주법이 등장하면 대개 시선을 끌기 마련이다.


폴 체임버스가 아르코 주법을 활발하게 활용한 것은 실력 있는 베이시스트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의 자부심이 앨범명에 고스란히 묻어난 <Bass On Top>은 그가 세션으로 활동할 때에 비해 전반적으로 아르코 주법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특히 앨범의 첫 곡인 ‘Yesterday’에서 처음 등장하는 운궁연주는 곡 속에 웅장한 분위기를 불어넣는 매력이 있지만 솔로연주로 넘어가면 그게 지나쳐서 다소 지치게 된다. 다른 곡들도 전반적으로 베이스의 솔로가 많은 편인데 그런 구성에 익숙하지 않은 입장에서 이 앨범을 처음 들으면 ‘역시 베이스는 리드악기로는 좀...’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도 폴 채임버스의 운궁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다. 콘트라베이스의 거대한 울림통을 타고 들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전체적인 곡의 흐름을 끊는 것 같은 느낌을 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ass On Top>은 뛰어난 베이시스트가 맞딱뜨린 모순적인 운명을 직면할 수 있다는 흥미로운 매력이 있기에 가끔 찾아 듣게 되는 앨범이다.


‘You’d Be So Nice to Come Home To’는 운궁이 없이 피치카토로 구성된 화려한 솔로로 시작한다. 그 솔로가 끝나면 케니 버렐 Kenny Burrell의 기타가 굉장히 맑은 기타소리로 들린다. 둔탁한 베이스 연주와 대비되어 기타의 음색으로 드러낼 수 있는 상쾌함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Chasin’ the Bird'의 경우에는 베이스 솔로가 끝난 후에는 행크 존스 Hank Jones의 피아노가 슬며시 앞으로 나오는데, 역시 베이스의 무거운 음색과 대비되어 그 경쾌함이 도드라져 들린다. ‘The Theme’에서는 운궁과 아트 테일러 Art Taylor 격렬한 드럼이 만나 아주 매력적인 하모니를 만들어내는데, 드럼의 강렬함을 돋보이게 하는 데에 폴 채임버스의 아르코 주법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폴은 자신의 연주 실력을 마음껏 뽐내면서도 다른 악기를 받쳐주는 베이스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완벽한 개인기 이후에 들려주는 정확한 피치를 통한 리드미컬한 백킹을 듣노라면 왜 당시 수많은 연주자들이 폴 채임버스를 그토록 선호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랜 기간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에서 활동했던 폴 체임버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본다면, 폴 채임버스가 강렬한 개인기를 발휘하면 할수록 오히려 다른 악기들의 매력이 더 도드라지게 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가 제 아무리 뛰어난 베이스연주를 보여주어도 결국 다른 연주자를 돋보이게 해주는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는 베이스주자의 근원적인 한계와 모순을 보여준다고 할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베이시스트로서 최고의 연주를 한껏 담아 놓은 <Bass on Top>, ‘정상에 서 있는 베이스’라는 앨범의 이름이 유독 씁쓸해 보이는 이유이다.


누군가의 뒤를 받쳐줘야 한다는 베이시스트의 경우, 자신의 기량을 돋보이고 싶은 높은 자존감과 베이시스트로서의 운명이 상충되는 경우가 분명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주인공 뒤에 숨어 숨을 죽이고 있는 베이스의 숨소리를 찾아 들어줄 감상자는 그다지 많지 않고 그렇기에 예나 지금이나 베이시스트는 그 기량에 비해 대중으로부터 존재감을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물론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안타깝게도 그 운명에 거역하고자 했던 내로라하는 연주자는 대개 요절이라는 운명을 맞게 된다. 베이스의 전설 자코 파스토리우스 Jaco Pastorius가 그랬고, 폴 채임버스 역시 그랬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에 등을 돌리게 했던 헤로인 중독의 이유가 어쩌면 자존감이 유독 강했던 폴 체임버스의 성향과 자신이 선택했던 악기가 가진 태생적인 한계와의 갈등 때문일 거라는 생각은 나 혼자만 하는 추측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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