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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윤성 Oct 22. 2022

오늘부터 도시락 들고 출근합니다

오늘부터 도시락 들고 출근합니다

축하합니다! 청약에 당첨되셨습니다!

몇 달 전. 내 집 마련의 꿈을 꾸고 있던 차에 관심 지역의 청약 공고가 올라와서 무작정 신청했다. 하지만 웬걸, 이렇게 청약이 한 번에 당첨되는 거라니 내가 뉴스에서 본 몇 백대 일의 경쟁률은 아니었어도 너무도 쉽게 청약이 당첨됐다. 물론 당첨 후의 상황에 대해 대비해두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조용히 혼란스러웠다.


우선 가지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고 청약 통장을 깨서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리고는 다시 가만히 머리를 굴려봐도 아무래도 돈이 부족했다. 그것도 아주 많이. 2025년에 입주 예정인 아파트니까 남은 30개월과 현재 받고 있는 월급으로 연산해본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 아무래도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청약이 당첨되면 이렇게 덤덤한 문자가 온다


예전엔 소위 로또 청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변 시세에 비해 저렴하게 주택이 공급되었지만 요즘은 시장이 나빠져서인지, 시세와 엇비슷하게 주택이 공급되고 있다. 그래도 실거주가 주목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집에 살기로 했고, 또 살아야 한다.


또한 생애 최초로 집을 취득할 경우 취득세 감면,  LTV 증가 등 추가적인 혜택이 많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려있다. 사실 이제부터 준비할 것은 지속 가능하며 발전 가능한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말이 어렵고 복잡하지만 사실 Just do it. 그냥 하는 거다.


사실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레버리지는 조커와 같은 히든카드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작용하는 이 카드는 아껴둬야 하기에 지금 당장은 배제하고 순수하게 내가 번 돈과 벌 돈을 따져서 구매 가능성을 따져본다.


오늘부터 도시락 들고 출근합니다

'사회 초년생에겐 투자보다 지출을 줄이는 것이 수익률이 높다' 이 말은 투자에 무지한 사회초년생을 꼬집는 말이기도 하지만, 지출 관리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말이기도 하다. 옛날 프로그램이지만 '김생민의 영수증'이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다.


이 프로그램은 사연자의 영수증을 통해 어디에 어떻게 소비하는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으로, 하나하나 기록된 목록을 지적하면서 바른 소비습관을 알려주었다. 특히 자잘한 소비라도 그게 쌓이면 무서운 결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이 크게 보였고 가능한 사치 부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하지만 이번 도전은 꽤나 험난한 길이 될 것 같다. 짝꿍과 합쳐 매달 300만 원 이상을 모아야 하니, 좋은 신발이나 자동차, 멋진 콘서트와 고급 레스토랑은 당분간 꿈꾸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진 충분히 해볼 만한 생각이 든다.


우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도시락을 챙겨 출근하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 직장이 있는 탓에 밖에서 사 먹으려면 최소 8~9000원이 나온다. 이렇게 워킹 데이인 20일로 따지면 약 20만 원 정도의 '점심' 식대가 필요하고 저녁과 주말에 쓰는 것까지 합치면 최소 40~50만 원 정도를 먹는 것에 써야 한다.


제일 좋은 건 식사를 제공하는 회사로 옮기는 것이지만 아직 직장을 옮기는 것은 녹록지 않기 때문에 도시락을 준비해본다. 그러니까 하루에 만 원만 쓰자. 열심히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해보자.


도시락 메뉴 고민

도시락을 싸기로 했지만 3년이나 자취를 하면서 직접 해먹은 적이 많지 않기 때문에 처음엔 빵 같은 걸로 시작했다. 식빵에 잼이나 계란, 햄 등을 올려 먹는 건데  맛도 괜찮고 만들기도 간단하지만 양이 적고 빵이 은근히 비싸기도 하기에 간간히 먹게 된다.


다음은 반찬을 직접 요리하는 방식이다. 집에서는 편하게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는 대로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반찬으로 밥을 먹을 수 있었지만, 혼자 살면 그런 것은 언감생심이다. 뭐든지 매니저처럼 직접 경영하고 관리해야 한다. 우선 제육볶음 하나를 만들기 위해 돼지고기, 고추장, 마늘, 식용유, 설탕, 뒤집개, 젓가락, 쓰레기봉투 등등을 샀다. 이런. 만들어 먹는 게 더 비싼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재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다. 땅에서 나온다. 땅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값어치가 있기에 결국 이것도 돈이다. 쉽게 말해 초기 투자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꽤 괜찮은 요리 솜씨도 필요하다. 유튜브에 소개하는 멋지고 팬시한 요리들이 많지만 만드는 것은 나이기에 어느 정도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반찬을 사거나, 도시락을 정기 구매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만든 무언가가 세상에 있고, 이걸 입으로 넣을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만드는 것은 즐거운 활동이기 때문에 신나게 무엇인가 만들어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절약을 떠나서 해봄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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