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북디자이너의 독립, 그 뒤에는 동료들이 있었다.
나는 퇴사했다.
직장인이라면 응당 가슴에 품고 사는 사표를 진짜로 내던지는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상상만 하던 그 순간이 찾아온다면 이유가 무엇일지 항상 궁금했는데, 그건 바로 더 이상 회사라는 공간에서의 나를 견딜 수 없을 때였다. 이 건물, 이 의자, 이 컴퓨터 앞.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그 어떤 것도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왔을 때. 연인과의 이별에서도 그랬던가. 그가 부르는 내 이름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던 순간. 그 어떤 바람도 기대할 수 없고 날카롭게 뻗쳐오는 상처로부터 나를 방어하고 싶은 그 순간이 찾아왔다.
나는 그랬다. 매 순간 진심이었던 나를 보호하고 싶었다. 상처를 더 받았다가는 영영 책을 만들 수 없게 될 것만 같았다. 자리를 정리하면서 울었다. 만들었던 350권의 데이터를 정리하면서 울었고 책장에 꽂힌 500권의 책을 정리하면서 울었다. 어떤 시절이 지는 것 같았다.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슬픔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퇴사 날짜가 정해진 뒤 한 달 동안 10년을 함께한 동료들과 점심시간을 보내며 울고, 웃고, 아쉬워하고 다음을 약속하면서 많은 위로와 위안을 얻었다.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결국 사람으로 치유받게 되었다. 나의 10년은 만들었던 350권의 책이 아니라 동료들이 남은 거구나. 책보다 사람이 먼저인 것을 잊고 살았구나. 나를 채우고 끌었던 건 매일 웃으며 같은 길을 걸었던 당신이었구나.
함께 손발을 맞춰 일한다는 것, 그 가치를 나는 안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눈빛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서로의 실수를 먼저 알아차리고 조용히 수습해 주는 완벽한 한 팀이 된다는 것. 시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이 쌓여야만 그런 사이가 될 수 있었다. 때로는 밉고 때로는 서로를 견디며 꾹 삼킨 순간들을 쌓는 것은 낱장의 종이가 쌓여 책이 되듯 그렇게 우리라는 한 권의 책이 되는 거였구나. 나는 책이 있기 전에 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안다. 사람이 만드는 책은 사람 다음 책이라는 것을. 책과 지식에 매몰되어 사람을 보지 못하는 불행은 절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