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언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쟁 사회에서 승자는 소수일 수밖에 없다. 세상을 경쟁으로 바라보면 경쟁에서 밀리는 순간 인생은 불행해진다. 경쟁에서 살아남더라도 삶이 치이는 건 마찬가지. 이렇게 경쟁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과거 고도성장 시기에는 경쟁이 약이 되기도 했다. 보다 많은 기업 일꾼이 양성되어야 했으니까. 하지만 더 이상 고도성장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이는 선진국의 문턱을 넘는 모든 나라의 숙명이다.
저성장 시대의 특징은 고용불안이다. 고용불안은 소비의 위축을 가져오고 소비 위축은 자영업자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소비 경제 침체는 기업의 생산 동력을 무력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이 장기화하면 기업은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자원을 서울 중심으로 재편한다. 그러면 다시 사람들은 일자리 경쟁을 뚫기 위해 서울로 모여들게 되고 집값은 올라간다. 밀레니얼 세대가 ‘소확행’이나 ‘워라밸’을 중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쟁하는 데 자신의 능력과 자원을 다 쏟아붓다보니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쟁 시스템을 벗어나 탈도시를 선언한 사람들이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 사회는 큰 변화를 겪는데 특히 젊은 세대 중심으로 한 탈도시 현상이 두드러졌다. 쓰나미로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건 원전뿐이 아니다. 경쟁 중심의 성장 신화가 몰락한 것이다. 이때 도쿄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을 U턴족이라고 불렀다. 도시가 고향인 사람이 지역으로 이주하는 경우는 I턴. J턴족도 생겼다. J턴은 도시에서 고향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턴족이 많아지면서 생기를 잃었던 일본의 로컬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로컬이 바뀌자 일본 정부도 발 벗고 나서기 시작했고 기업들도 로컬의 가치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최근 10년 간 한국도 이러한 변화 과정을 겪고 있다. 지방 소멸 시대에 돌입한 정부도 지역 활성화를 위해 도시재생을 비롯한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 자원을 투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에 밀레니얼이 반응했다. 턴족의 탄생 순간이다. 턴족은 때로는 로컬벤처일수도 있고 지역활동가 이거나 로컬 크리에이터의 모습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지역으로 이주한 기업을 따라 지역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실로 다양한 사람들이 선택했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로컬의 속도를 받아들였다는 데 있다. 인생의 속도 대신에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스피드는 낮추고 방향을 재설정한다는 건 삶의 전환을 이루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경쟁 시스템이라는 OS를 버리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나가는 일. 그래서 턴족은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