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언어
지역의 오래된 서점이 자취를 감춘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 위주로 도서 유통이 재편되기도 했지만 독서 인구가 현격하게 줄어든 탓도 있다. 독서를 대치할 만한 무궁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세상이니 책의 설자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책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어떠한 콘텐츠라 할지라도 시작은 모두 텍스트란 점을 상기하면 글의 힘은 인류가 문명을 지속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2014년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자 지역의 작은 서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동네서점의 탄생이다. 이들 신생 동네서점은 기존의 지역 서점과 결이 다르다. 이들 동네서점의 특징은 기존 지역서점처럼 학습 참고서나 수험서를 판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자신들 서점만의 뚜렷한 방향과 컨셉에 맞는 책을 선별하여 판매한다. 북큐레이션이라고도 하는데 예컨대 문학 작품만 다룬다거나 과학책만 판매한다거나 혹은 독립출판물만 다루는 식이다. 또 하나 기존 서점과 차별되는 지점은 ‘얼굴 있는 거래’를 지향하는 점이다. 다시 말해 지역 커뮤니티 밀착형이거나 북살롱 스타일로 취향의 공동체에 의지한다.
또한 책 판매에만 의존하지 않고 독서클럽을 운영하거나 다양한 소규모 문화 행사를 기획하여 수익 창구를 다변화하고 있다. 독자들도 호응했다. 인터넷에서 책을 구입하면 할인 혜택과 적립금을 챙길 수도 있지만 기꺼이 동네서점을 방문하여 지역 경제 순환에 일조하기도 한다. 이처럼 동네서점은 책을 기반으로 하는 동네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눈에 띄는 대목은 서울 같은 대도시뿐 아니라 정말 손님이 없을 것 같은 한산한 지방 어느 골목에도 이러한 동네서점이 생겨난 점이다. 이들 서점은 지리적 한계를 오히려 책을 보면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북스테이’ 개념을 넣어 장점으로 활용한다. 괴산의 ‘숲속 작은책방’을 비롯해 속초의 ‘완벽한 날들’, 통영의 ‘봄날의 책방’ 등이 북스테이가 가능한 서점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도는 또 어떠한가. 제주는 동네서점의 섬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서점 붐이 일었고 제주만의 로컬 콘텐츠와 접목하여 저마다 개성 있는 공간을 꾸려나가고 있다.
쇠락하는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러한 동네서점의 약진은 지역 재생의 앵커 스토어로 서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반면 동네서점으로 골목이, 지역이 활성화되자 골목 상권이 형성되면서 임대료가 높아져 결국 문을 닫거나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일어났다. 물론 이와 같은 문제는 비단 동네서점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다. 그래서 최근의 로컬 재생 움직임은 지역의 건물주와 협의하여 일정 기간 동안 임대료를 인상하지 않는다든가 아니면 지역의 유휴공간을 장기임대하거나 매입하여 안정적으로 공간을 유지하는 쪽으로 진행하기도 한다.
동네서점을 따라 작은 카페와 빵집 그리고 밥집과 술집이 생겨나 거리가 살아나는 마을.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여기에 “아, 이런 동네라면 한번 쯤 살아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갖는 사람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나 공유 오피스 공간까지 더해지면 장기적으로는 정착을 고려하는 사람도 늘어날 것이고 실제로 로컬의 책방은 그러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역시 책의 힘은 위대하다!
* 참고로 전국의 동네서점 정보를 알고 싶다면
‘동네서점 지도(https://www.bookshopmap.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