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스타일

로컬의 언어

by 소보로

사람은 누구나 남들과 다른 성정을 지녔으며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사회는 한국전쟁 후 산업화 사회로 가기위해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동안 개인이 설 자리를 잃었다. 경제성장이란 공동의 목표에 개인의 개성은 억압되었고 획일적 경쟁에 내몰렸다. 다시 말해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은 거기서 거기일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한 가지 가치를 향해 달려갈 때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건 바로 공동체로부터의 소외나 다름없는 일이었으니까. 마치 농경사회 시대에 마을 떠나 방황하는 것처럼.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한국사회는 변화의 폭풍을 맞았다. 먼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혁명이었다. 1980년대는 고도성장기에 가해진 압력이 임계점을 넘어 폭발하는 시기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며 문민정권이 탄생했고, 자유의 가치를 경험한 시민들을 환영한 곳은 기업이었다. 시민은 어느덧 소비자가 되었고 어떠한 소비를 하는지에 따라 라이프스타일이 정해졌다. 재래시장과 마트의 선택 사이에서,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사이에서 바야흐로 소비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 X세대는 이러한 사회 배경에서 탄생했다. 비교적 풍요로운 성장기를 경험하며 특히 대중문화 상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했던 세대다. 또한 X세대는 기존의 획일적 가치관에 의문을 품은 것을 너머 행동으로 보여줬다. 고등학교를 때려 치고 이젠 그만 됐어! 라고 외치는 서태지는 그야말로 X세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IMF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이 다시 한번 크게 변하는 계기였다. 여기에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은 한국의 사회문화 환경을 바꿔놓았다. 아울러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인 기업은 고용 시스템부터 손을 댔다. 이른바 구조조정. 기업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혁신이란 이름으로 일자리를 줄이는 일이다. 이로써 평생직장이란 말은 사어가 되어버렸고 계약직과 파트타임 등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치했다. 일본은 버블 붕괴 후 프리타라 불리는 고용 형태가 일반화했는데 프리타는 말 그대로 프리+아르바이트, 즉 자유롭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말이야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지만 종신고용이 사라지고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진 일본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반영된 새로운 고용 형태일 뿐이다.


지금 한국이 처한 고용 시장 환경이 이와 비슷하다. 대기업의 공채가 점점 사라지고 중소기업도 일자리가 줄어들자 청년들은 일자리 안정을 찾아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거나 이도 저도 아니면 생존을 위해 여러 개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숨차게 살고 있다. 어쩌면 밀레니얼 세대의 민낯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생존을 위해 하고픈 일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 이때 누군가가 과거 서태지처럼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외친 그룹이 있다. 이들은 청년을 옥죄는 사회 시스템으로부터 자발적으로 벗어나 뭔가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며 워라밸을 강조하고 소확행 추구하며 삶의 주인공 자리를 되찾고자 한다.


이러한 변화는 밀레니얼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나타난다. 《골목길 자본론》의 저자 모종린 교수는 근작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에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질문은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고 말한다. 또한 이들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정체성 형성에 기여하는 뭔가를 물질 외적인 데서 찾는다고 한다. 탈물질주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모종린 교수는 라이프스타일의 본질을 나와 물질의 관계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즉 물질의 가치를 나의 삶 어디에 두는지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소비를 하느냐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사회에서 벗어나 참된 나만의 삶을 찾아가겠다는 얘기다.


도시는 분명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등급이 매겨지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이러한 리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삶의 방식으로서 로컬을 찾는 라이프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다. 누군가는 한달살이라는 방식으로 로컬을 체험하고 누군가는 아예 정착하기도 한다. 과거에는 지역에 내려가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때 농사 말고는 딱히 선택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로 얼마든지 원격 근무가 가능하기에 1인 기업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고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연대를 통해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다. 종신고용은 사라졌지만 그 공백을 경쟁이 아닌 창의력으로 메꿀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라이프스타일 독립은 어쩌면 기업이 미디어를 통해 은연중에 만들어 온 허상의 ‘소비’ 라이프스타일에서 벗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있고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비단 청년 세대뿐 아닌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고, 또 용인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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