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노마드

로컬의 언어

by 소보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열풍이 몰아치던 시기가 있었다. 특히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IT 산업과 문화산업을 신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인터넷 벤처기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창업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용구조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이기도 했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기업들이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적극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먼저 변화가 시작된 곳은 고용구조였다. 이른바 명퇴(명예퇴직)라 불리는 구조조정. 이러한 고용구조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한국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한다.


변화의 파도를 거스를 수 없다면 파도를 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파도를 넘어야 할까? 예민하게 반응한 그룹은 당시의 청년 세대였다.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삶았다. 인터넷 문화를 적극 수용하는 한편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현하기 위해 삶의 태도를 전환했다. 이러한 청년 그룹은 미국의 여피족과 보보스족의 라이프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기도 했는데 보다 진취적인 그룹은 ‘노마드족’이 되기도 했다. 노마드는 유목민을 뜻하는 말이지만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에 의해 물리적, 공간적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통칭하기 시작했다.


집도 절도 없지만 전세계를 여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비롯해 전세계 인터넷 카페(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고 와이파이가 없던 시절에 인터넷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카페. 여행자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장소가 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훗날 PC방으로 변화한다.)를 떠도는 사람 등이 원조 노마드족이랄까. 그 후 IT 기술의 진보로 무선으로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는 각종 디지털 디바이스가 나오면서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직종의 사람들이 노마드족에 합류했다. 이와 같이 디지털 세상의 노마드를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지만 기존의 노마드와 작동 체계가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디지털 노마드는 스마트폰으로 더욱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공유경제에 민감하고 서로 환대하는 커뮤티니 문화에 익숙하다.


또 하나 디지털 노마드가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코로나19 펜데믹을 마주하면서 원격근무나 재택근무의 재발견에 있다. 반드시 한 공간에서 함께 일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업무가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경험한 것이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로컬의 재발견에 있다. 도시가 아니라도 디지털 인프라만 갖춰진 곳이라면 얼마든지 삶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도시의 비싼 주거비와 생활비를 아껴 자신의 삶에 조금 더 투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디지털 노마드를 위한 공유 오피스 공간이 로컬을 혁신하는 데 중요한 장소가 된 배경이기도 하다.


노마드의 철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Nomad, 즉 NO MAD다. 노마드는 세상이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그렇다고 노마드가 아닌 사람이 미쳤다는 말은 아니다.) 로컬이 변화하려면 로컬크리에이터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노마드에게 매력적인 장소로 거듭나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 노마드는 여행자 그룹보다 앞서서 로컬을 경험하는 자들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사랑하는 지역이라면 여행자는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따라서 소멸하는 지역의 인구를 늘리는 방법은 출생률을 높이는 쪽보다 유동인구수를 늘이는 쪽이 더욱 현실적 방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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