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언어
국토부의 지난 ‘2019년 주거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주택유형 중 아파트 비율이 역대 처음으로 50%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둘 중 한명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셈이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히 주거 형태를 넘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자산이 된 지 오래다. 이러한 현상은 도시는 물론 전국 지방 소도시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파트 공화국이란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다. 어쩌다 한국인은 아파트를 선호하게 됐을까?
아파트는 아파트먼트를 줄여서 부르는 말인데 ‘분리된(apart)’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 아파트의 출발은 산업시대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를 위한 집합주거였다. 특히 프랑스에서 아파트는 중산층 주거 지역으로부터 분리한 저소득층 또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집합주거 형태라는 인식이 강하다.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1993년 서울을 방문해 수많은 아파트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후 발레리 줄레조는 한국만의 독특한 아파트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이다.
『아파트 공화국』은 한국에서 아파트가 대량으로 공급된 배경을 추적하면서 유럽과 달리 저소득계층이 아닌 중산층 계급의 대표적 거주 형태가 됐는지를 분석하면서 과연 아파트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묻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획일화한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도시 미학적으로 용인이 되는 점도 주목했는데 중요한 지적은 한국의 아파트는 국가와 재벌 그리고 중산층의 이익연합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주택 보급이라는 명분 아래 건설자본이 활개를 칠 수 있도록 길을 터줬고 중산층은 모듈화한 아파트 평면을 재벌의 상품 예컨대 티브이를 비롯해 냉장고와 각종 가구 등을 획일적으로 소비하여 다시 재벌을 돕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덧붙이자면 이러한 이익 연합 구조는 압축 성장을 해야 하는 시기에는 어느 정도 효용성도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아파트는 더욱 단지화 하여 그들만의 성채가 되어버렸으며 그럴수록 욕망의 브랜드가 됐다는 점이다. 사람이 모여 사는 집적된 공동 주택 단지임에도 동네 커뮤니티는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아파트 가격에만 연대하는 이익 욕망 공동체가 된 것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건 도시의 지가 상승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고층의 아파트를 지어 무주택자들도 집을 살 수 있도록 시작한 아파트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키는 주범이 됐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밟을 수도 없는 가상의 레이어로 된 가짜 땅이 아파트 공화국에서는 최고의 자산인 것이다.
한편 양동신의 『아파트가 어때서』란 책을 보면 아파트에 친숙한 세대가 바라보는 아파트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아파트가 뭐 어때? 라고 도발하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마치 『아파트 공화국』에 대한 아파트 키드의 반론처럼 느껴진다. 맞다. 한국의 아파트는 그동안 나름대로 진화를 거듭해왔다. 나날이 변화하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하여 아파트는 보다 쾌적하고 아늑한 공간으로 변모했다. 지상에는 녹지 공간을 조성해 입주자들이 산책할 수 있게 했고 주차장은 전부 지하화 하여 차량 동선과 보행 동선이 겹치지 않게 만들었다. 또한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에너지 효율면에서 아파트는 친환경 주거 구조를 구현해냈다. 뿐만 아니라 학교나 문화시설을 비롯해 교통, 쇼핑에 이르기까지 도시 인프라는 아파트 단지와 단지를 연결하고 있다. 이 얼마나 편한 세상인가!
그런데 여전히 우리가 아파트 문화에 대해 고민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전 국토가 아파트 단지화 하고 두 명 중 한 명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과거로 회귀하는 건 어차피 불가능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아파트를 투자 자산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파트 공급과 청약 등의 정책 문제는 차치하고 우선, 아파트 평면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아파트 평면은 조금이라도 많은 방과 넓은 면적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뿐만 아니라 과거 가부장 문화를 담은 안방과 거실 그리고 부엌 구조가 고스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러한 평면은 한옥의 평면이 그대로 이어 약간 개선한 수준일 뿐이다. 그렇다보니 현대인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공간이 받아주질 못한다. 아울러 소형 평수를 현재의 두 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또 하나는 마을 커뮤니티 회복이다. 한국 아파트의 특징은 이익으로 공고해진 ‘단지 문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파트 단지 입주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동네의 ‘마을 주민’이라는 정체성은 없고 아파트 단지 브랜드로 마을과 구별짓기를 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는 구조적으로 이주자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주자로서 원주민 커뮤니티를 존중하고 원주민 커뮤니티는 또 새로운 이주자 집단을 환대하면서 함께 동네를 만들어 가야 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는데 동네에 관심을 갖으라고? 맞다. 동네가 살아야 아파트도 살고 단지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