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야기한다는 것
브런치에 어떤 글을 올릴까 고민했다.
블로그에 꾸준히 글을 썼지만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들이라 꺼내놓기 부끄러운 글들이다.
이곳은 블로그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공간이라 사적인 이야기들을 공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브런치의 작가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라고 왔을 때부터 어떤 글을 쓰면 사람들과 조금 더 나눌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 끝에 내린 답은 '사람'이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요? 또는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 영화를 전공한 나에게 사람들이 많이 묻는 물음이다.
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지는 너무도 있을 법한 일들이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나에게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주기도 하고 또는 내가 가지고 있는 현실의 어려움에 답을 주기도 한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들은 기쁘기도 하지만 우울의 원인이 되는 일도 많다. 관계 안에서 지쳐있을 때 고레에다 감독이 준 처방은 각자 그럴만한 이유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은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 사건에 다 각자 그럴만한 이유들을 갖고 극을 전개해 나간다. 그게 선하게 나타나는 인물도 있고 못되게 나타나는 인물도 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한다.
원래부터 못된 사람이 있을까?
다 각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밝은 세상 놀이> 졸업영화를 준비할 때 시나리오를 들고 강미자 교수님을 찾아갔다. 많은 영화에 편집 감독으로 일하셔서 내 영화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내 시나리오엔 아이에게 돈만 던져주고 집을 비우는 엄마가 나온다. 그때 교수님이 한 이야기가 기억난다.
"엄마가 너무 못돼 게 나와요.
엄마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어떤 사연도 말해주지 않고 엄마의 단면만 보여주는 나에게 좋은 질문이었다. 좋은 영화는 다 각자의 사연이 있는 것을 말해주는 영화라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삶이라는 영화를 조금은 좋은 영화로 만들려면 내 영화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사연을 조금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따뜻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성악설인지, 성선설인지에 대한 이야기에 한 작가님이 성'약弱'설을 이야기하던 게 기억난다. 사람은 사람이기에 약한 부분이 있다.
약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상처를 주고 아프게 한다. 누군가가 자신을 아프게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약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져 봤으면 한다.
그게 어느 정도 나 자신에게도 위로가 될 테니.
주저리주저리 앞으로 올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시간이 똑딱 흘렀다!
아무튼 나는 내가 만난 사람들의 그럴 만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사람을 통해 배운 것들, 느낀 것들을 쓰고자 한다. 내가 쓰는 글을 통해 내 곁을 둘러싼 한 사람 한 사람이 궁금해졌으면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조금 더 가까워졌으면 하고 나를 아프게 한 누군가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라는 말이 본인에게 조금 쿨한 위로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