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율룰루 Aug 18. 2020

할머니의 기도 소리가 생각나는 날

다른 형태의 사랑

무언가 읊조리는 소리에 슬며시 눈을 뜬다. 내려앉은 눈꺼풀에 흐릿흐릿하게 할머니가 보인다. 할머니는 낡은 성경책을 꺼내놓고 고개를 푹 숙이고 기도한다. 비릿한 새벽 냄새가 난다. 풀벌레 소리와 할머니의 기도소리를 듣다가 다시 눈꺼풀이 감긴다.

할머니는 매일매일 그렇게 기도한다.

영종도라는 섬에 살았다.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하면 버스가 다니지 않아 두 시간 정도를 걸어 들어가야 만하는 송산리라는 작은 마을에 살았다. 엄마는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나를 돌볼 수 없었고 나는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할머니는 무척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무서워 악몽을 꾸곤 했다. 할머니가 작은 과도를 들고 눈을 부릅뜨고 나를 따라오는 꿈을 시리즈로 꾼 적도 있다.

할머니의 화의 원인은 보통 밥과 엄마였다.
어떤 날 할머니가 불고기를 했다. 불고기가 든 냄비 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불고기에 반짝거리는 똥파리가 들어있었다. 내 표정을 본 할머니는 고기 속에서 허우적대는 똥파리를 걷어 휴지에 싸서 짓이겼다. 내가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거리자 할머니는 화를 내며 윽박질렀다. “지 애미 닮아서 더럽게 깨끗한 척하네”  난 이유도 모르고 엄마와 나를 연결시키는 욕을 자주 먹었다.

그렇게 분노한 날 할머니의 기도 소리는 유독 컸다.

나는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의 기도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하나님께 항상 이렇게 질문하며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우리 유리 아시죠? 우리 유리 보고 계시죠?” 대답 없는 질문을 하며 기도를 이어갔다.
“하나님 우리 유리 불꽃같은 눈동자로 늘 지켜주세요...”

그리고 그 기도는 엄마에 대한 기도로 이어졌다.
“하나님 우리 막내딸 아시죠? 불쌍한 우리 막내 하나님이 곁에서 꼭 지켜주세요.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하는 일마다 꼭 함께해 주세요.”

기도소리를 듣기 시작한 후부터 다른 시선으로 할머니를 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다른 형태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했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너무나도 사랑한다는 말인 것을 어린 나는 알게 되었다.

미움이 섞인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 큰 사랑이라는 것을 어른이 되어가며 나는 많이, 아주 많이 느낀다. 그리고 종종 ‘나는 그 사람을 애증 해’라고 말한다. 그것은 나에게  큰 마음을 표현하는 말이 되곤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성경책을 펴놓고 간절히 기도하던 우리 할머니가 생각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