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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RO Nov 28. 2019

마마무의 앞에 놓인 두 갈래의 길

마마무는 데뷔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사운드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레트로부터 20대 메이저 감성, 고혹적인 디바의 모습까지를 편집하고 가공했다. 다른 아이돌 팝 앨범처럼 최근의 트렌드를 세련되거나 날카롭게 가공하지는 않았으나, 김도훈 작곡가의 '적당히 가요스러운' 센스는 마마무를 멤버 개개인의 총합 그 이상의 힘과 존재감을 가진 팀이 되도록 만들었다. 자유분방하고 펑키한 음악과 이미지로 커리어를 쌓았지만, 그 어떤 팀보다도 테크니컬한 편집을 거친 이들이 바로 마마무이다. [reality in BLACK] 역시 그러한 기조를 지키고 있는 앨범이다. 팝 레퍼런스에 2000년대 가요를 오려 붙여내며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사운드와 마마무 멤버들의 출중한 실력과 친근한 캐릭터성으로 거칠고 키치한 질감을 다듬어냈다. 그렇지만, 이 앨범에서는 분명 최근 몇 년 동안 멤버들의 총합 이상의 아우라와 이미지를 담고 있던 마마무라는 팀의 경계선을 멤버들이 조금씩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것은 멤버들 각자의 성장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기존의 프로듀싱 방식이 더 이상 마마무라는 팀의 역량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reality in BLACK]과 마마무는 변화의 문턱에서 축배를 좀 더 오래 터뜨릴지, 한 발 더 나아갈지를 결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마마무가 발표해왔던 어떤 곡들보다도 잘게 쪼갠 비트와 플랫한 라인은 독특하지만, 김도훈과 박우상의 손길이 닿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코러스에는 경쾌한 피아노 연주와 브라스 사운드가 숨 가쁘게 튀어나온다. 자칫 긴장감의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에도 멤버들의 여유로운 호흡과 딕션을 꽉 채우며 곡 전체에 강약을 조절해냈다. 특히 이전이었다면 가창력을 폭발시켰을 파트에서도 느긋하고 시니컬한 음색을 내며 '힙한' 캐릭터성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뮤직비디오와 무대에서 역시 더욱 복잡해진 안무를 추는 동시에 여유로운 제스처와 연기를 소화해낸다. 확실히 멤버들의 실력이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물이 올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팝적인 구성과 멜로디 라인 안에서 선동적이고 드라마틱한 파워와 메세지를 터뜨리는 '4x4ever'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에서도, 가창력이나 마마무 특유의 에너제틱한 화음을 적극적으로 쓸 수 있을 만한 포인트에서 멤버들 각자의 음색과 캐릭터성을 강조하며 리드미컬하게 곡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수록곡 하나하나는 마마무의 앨범이 늘 그래 왔듯 일관된 방향성이나 컨셉 없이 다양한 스타일을 나열한 듯 한 트랙 구성이지만 역량이 뛰어난 멤버들인 만큼 어색함이나 부족함 없이 곡 자체가 가진 매력 이상의 것을 끌어내고 그 결과물은 효과적이다. 앨범 자체가 담고 있는 테마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은 보통 단점으로 작용하지만, 실력면에 있어 증명해야 할 것이 없는 마마무이기에 가능한 구성이다.


이전 발표곡들이 그랬던 것처럼 'HIP'에서도 Melanie Martinez의 'Play date'의 흔적이 보인다. 팝과 가요를 과감하게 편집해 독특한 정서를 만들어내는 것이 김도훈, 박우상 작곡가의 장점이자 트레이드 마크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마마무 멤버들의 역량이 이미 '재생산' 이상의 것들을 충분히 해낼 수 있게 되었음에도 그들이 고수하고 있는 표절과 참고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작업 방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몹시 아쉬운 점이다. 그리고 이 서서히 고착화되고 있는 프로듀싱은, 지금 마마무 멤버들이 향해야 하는 -혹은 향해가고 있는- 방향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에 현재 마마무와 그 스태프들은 두 갈래로 나뉘는 길의 직전에 서 있는 셈이다. 

최근 종영한 <퀸덤>에서 마마무는 기존 프로듀싱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펑키하고 유머러스한 '데칼코마니'를 각 잡힌 안무와 세션으로 파워풀하게 재해석하는가 하면 파이널 경연곡 '우린 결국 다시 만날 운명이었지'에서는 웅장한 행진곡과 같은 편곡으로 이전과는 다른 힘을 과시했다. 비록 기존의 스태프들이 함께한 프로그램이기는 했으나, 지금의 프로듀서와 디렉터들이 마마무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치지 못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도 했다. 물론 이 앨범은 'HIP'을 통해 마마무의 공항 패션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을 꼬집듯 "삐삐삐 논란이 돼 my fashion", "코 묻은 티, 삐져나온 팬티떡진 머리, 내가 하면 HIP"이라며 어느 정도 방어적인 스웨그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이 스웨그는 한참 하이커리어를 찍고 있는 그들이기에 그 자체로서 유효하다.) 그렇지만 기존의 작업 방식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표절 논란과, 중견 팀으로서의 연차를 찍고 있는 마마무의 현재를 고려한다면 변화에 대한 당위성은 부족하지 않다.


물론 김도훈 작곡가와 RBW는 마마무만의 음악과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구축했고, 레트로 팝과 훵크, 라틴 팝, 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와 소스들을 '마마무화'시켰다. 그리고 성공적인 활동을 연속해서 거두고 있는 마마무에게 [reality in BLACK]는 모두가 납득하고 이끌릴 만한 자축이자 성과다. 대형 기획사 출신이 아닌 여성 그룹이 이렇게까지 고유의 힘과 정체성을 가지고 보편적인 리액션을 이끌어낸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자축의 순간이 좀 더 길어진다 하더라도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기존의 마마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는 멤버들을 위해서라도 서서히 깨지고 있는 껍질을 과감하게 깨야 할 때일지도 모른다. 마마무와 함께하고 있는 스태프들과 멤버들 스스로도 마마무의 가능성을 더 그 어느 때보다 더 활짝 열어둘 때가 왔다. 그리고 물살을 잘 타고 있는 지금, 전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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