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RO Dec 12. 2019

AOA, 가장 극적인 리부트

AOA가 <퀸덤>을 통해 보여준 '너나 해'의 무대는 2019년 아이돌 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AOA가 쌓아온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가사와 안무, 연출은 AOA의, 혹은 걸그룹 산업의 오랜 팬이었다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것들이었고, 이는 AOA의 다음 챕터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서곡이기도 했다. 활동 중반에 접어든 걸그룹이 기존의 이미지에서 급선회를 하기란 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AOA는 이 앨범을 통해 그들의 지난 장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아쉬운 점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꽃이 아닌 나무가 되기를 선포한 이들에게 "날 보러 와요"라는, 수동적이고 고혹적인 느낌이 나는 테마의 가사이다. 이는 수록곡인 '주문을 외워봐 (Magic Spell)'에서도 마찬가지다. "오늘은 나 발칙하게", "나만의 백마 탄 왕자"와 같은 표현들은, AOA가 기존에 고혹적인 가사의 곡들을 발표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맥락을 지닐지는 몰라도 '너나 해'를 경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는 아쉬움을 유발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날 보러 와요 (Come See Me)'를 포함해 앨범의 수록곡들은 지금까지 AOA가 보여준 적 없는 사운드와 목소리를 담고 있다. 라틴 팝을 연상시키는 일렉트로닉 기타 사운드와 날카로운 신스음, 공간감을 넉넉하게 준 보컬 레이어의 조합은 상당히 차가운 질감을 전달한다. 경쾌하고 에너제틱한 톤으로 대표되던 AOA의 목소리도 호흡을 넉넉히 담으며 무심한 톤으로 변화했다. 브릿지에서 목소리에 텐션을 더하다가도 코러스에서 다시 편안한 흐름으로 돌아와 기존의 태도를 유지한다. 샤프하게 다듬어진 사운드와 보컬은 무대에서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입으며 무심한 에디튜드를 더 구체화시킨다. 곡선을 강조했지만 군더더기 없이 힘을 실은 제스처와 여유로우면서도 거의 미동을 보이지 않은 연기는 어느 정도 고혹성을 띈 곡의 성격을 씻어내고 사운드 자체가 담은 차갑고 날카로운 에너지를 강조한다. 곡과 안무의 사이에서 각 요소들을 조율해 표현해내는 멤버들의 역량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준수해졌다. 


두 번째 트랙이자 가장 묵직한 존재감을 가진 'Sorry'에서는 이 변화한 사운드의 질감이 더욱 깊어진다. 풍부한 신스 베이스와 트랩 비트 위에서 멤버들의 묵직한 낮은 보컬이 얹어져 긴장감을 쌓아가다 코러스에서 불연속적인 신스음과 함께 텐션을 시원시원하게 폭발시키고는 이 해소된 텐션을 다시 두 번째 벌스와 브릿지에서 쌓아간다. 많은 팝 댄스 곡들에서 쓰이는 정석적인 구성이지만, 멤버들은 이 과정에서 보컬에 힘을 잃거나 사운드에 매몰되지 않고 곡을 주도해나간다. 거친 비트와 다양한 소스가 섞인 '주문을 외워봐 (Magic Spell)'이나 베이스 연주와 사운드가 반복되며 레트로적인 디스코 멜로디를 풀어내는 'Ninety Nine', 풍부하고 펑키한 신스와 베이스가 인상적인 'My Way'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각 곡들의 힘의 중심에 놓인 사운드와 그 질감에 의존하지 않고 사운드 레이어를 바탕으로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흔들림 없는 존재감을 보여 준다. 멤버 상당수의 탈퇴로 새로운 목소리를 찾아야 했던 만큼, 여전히 독특한 음색의 랩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는 지민 외에도 각 멤버는 중심을 잃지 않고 곡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사실 [NEW MOON]은 우리가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스타일을 보여주거나, 독창적이고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어나가는 앨범은 아니다. 소녀시대는 '몰랐니(Lil' Touch)'에서 멤버 변동으로 인해 빈 보컬의 공백을, 보컬로서 주목받지 않았던 멤버들을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캐릭터성이 강한 보컬 디렉팅을 오랫동안 지속했던 트와이스는 'Feel Special'에서 본연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경쾌한 판타지를 보여주던 레드벨벳은 '피카부(Peek-A-Boo)'에서 기묘하고 그로테스크한 호러 판타지로 표변했다. K-POP 특유의 '뽕끼'와 댄서블한 멜로디에서 벗어나 팝적인 구성의 곡들을 다수 갖추게 된 트렌드 역시 마찬가지다. AOA의 변화는 최근 수년간 걸 그룹들의 변화에 그 배경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AOA의 변화가 묵직한 이유는, 큰 규모의 멤버 변동이 있던 상황에서 흥행이 보장된 기존 공식을 안정적으로 이어가기 보다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변화의 흐름에 극적으로 합류했기 때문이다. 이번 앨범에 레퍼런스를 제공한,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준 팀들은 많지만, 이렇게 모든 면에 있어 노선을 튼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 변화의 중심에 팀 멤버들이 있던 경우 역시 많지 않고, 그 결과물이 준수하기란 더더욱 많지 않다. [NEW MOON]는 AOA의 새로운 장을 한눈에 보여주지는 않지만, 시의적 변화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AOA가 다음에 보여줄 사운드와 장르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과, 그 결과물이 결코 시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를 제시한다. 음악적으로도, 컨셉적으로도, 그리고 멤버 변동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그리고 AOA는 곡 안에서, 그리고 무대 위와 뮤직 비디오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여유롭고 굳건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유,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