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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RO Dec 06. 2019

아이유, 피할 수 없는 존재의 무게

아이유는 데뷔부터 쭉 독특한 컨셉과 다양한 장르, 스타일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녹여 특유의 동화적이고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어딘가 날이 선 듯 한 분위기와 음악관을 만들어왔다. 그런 그의 디스코그래피에서 [Love poem]은, 뚜렷한 이미지나 사운드, 컨셉을 내세우지 않은 가장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구성의 앨범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Love poem]은 지금까지 아이유가 발표한 앨범들 중 가장 자전적이고 뚜렷한 테마를 지닌 앨범이다. '사랑'과 '시'라는, 음악계에서 가장 흔하디 흔한 소재를 주제로 삼은 이 앨범을 통해 아이유는 그저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뮤지션을 넘어 그 이상의 영역으로 조용하고 힘차게 발을 내딛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함께하기를 권유한다.

아이유의 대부분의 곡들이 그러했지만, [Love poem]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작사법의 변화와 가사를 전달하는 그의 태도 변화다. 첫 번째 트랙 'unlucky'에서 아이유는 "기를 쓰고 사랑해야 하는 건 아냐 / 하루 정도는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와 같은 구어체에 가까운 재치 있는 가사를 보여주면서도 아이유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누구나 이입할 수 있는 표현과 이야기로 감상을 유도해낸다. 사랑했던 상대의 매력과 회한적인 감정을 덤덤하게 표현하면서도 '그'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사람인지는 드러내지 않는 '그 사람'이나, 추상적이고 공감각적인 표현으로 가득한 ‘시간의 바깥’이나 이별한 연인의 꿈을 들여다보는 듯 위로하는 '자장가', 이타성과 이기심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시적으로 풀어낸 'Love poem'에 이르기까지 이 태도는 일관적으로 유지된다. 타이틀 곡 'Blueming'에서는 "밤샘 작업으로 업데이트 / 흥미로운 이 작품의 지은이 that's me", "조금은 장난스러운 나의 은유에 네 해석이 궁금해"라는 가사로 아이유라는 개인을 좀 더 전면적으로 내세우고는 있다.  그렇지만 곡의 지배적인 인상을 전달하는 첫 번째 벌스에서 보편적 일상을 표현하는 가사를 사용해, 앨범 전체의 방향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며 아이유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각기 다른 테마로 풀어내며 일상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


타이틀 곡에서 호흡과 톤에 밀고 당김을 극대화하며 가사보다 멜로디가 강조된 보컬 디렉팅이 쓰이기도 했지만, 다른 수록곡에서 아이유는 사운드의 극적인 사용이나 기교를 최대한 적게 사용하거나 혹은 가사 하나하나에 힘을 주며 멜로디나 장르의 정서가 아닌 가사의 정서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이 의도된 담백함은 치밀하고 컨셉츄얼했던 보컬리스트로서의 아이유를 기대한 팬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는 면이기도 하다. '사랑 시'라는 테마 아래 놓인 수록곡들은 곡마다 다른 스타일과 질감, 완성도를 오가지만 이 불안정한 균형감은 오히려 곡들이 가진 정서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앨범 전체, 혹은 아이유라는 개인의 존재감을 꾸밈없이 드러낸다. 드라마틱한 감정을 화려하고 치밀하게 전달하기보다는 덤덤하고 때로는 부족한 듯 표현하는 것이 시의 특성이고, 그 특성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화자의 역할이다. 아이유는 [Love poem]에서 그 역할에 최대한 충실하려 노력한다.

아이유는 '스물셋'과 '팔레트', '삐삐' 등의 곡에서 그의 생각과 자전적인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때론 직설적으로 표현하며 줄타기를 하거나, '밤편지'와 같이 서정성을 풍부하게 표현하며 낭만적인 면모를 강조하기도 했다. 일련의 곡들은 방향성은 다르지만 일련의 아이유 본인의 서사와 결합하며 고유의 정서를 담아낸 곡들이었다. 그는 대중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모호하고 시니컬한 그의 텍스트를 영민하게 사용하며 아이유라는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나 흥미를 제공해왔다. 이와 달리 [Love poem]은 사람이 일생에 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사랑을 직관적이고 일상적으로 표현해낸 앨범이고, '사랑'과 '시'만을 강조한 음악은 대중음악 아티스트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하기보다는 그저 하나의 보컬리스트나 상업 가수로서의 모습이 강조되기 쉬운 선택이다. 그렇지만, 보편적인 일상의 연속 안에서 아이유는 그가 차례 보여주려 했던 지은이라는 개인의 존재와 무게를 잃지 않고, 오히려 어느 때보다 무겁게 전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시라는 문학 장르 자체는 화자의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리고 폭넓은 해석을 이끌어내기를 유도한다. 아이유의 지난 행보 역시 그러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렇기에 [Love poem]은 과거의 아이유와 지금의 아이유를 나누는 분기점이기도 하면서, 과거의 아이유와 지금의 아이유를 연결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에고를 화려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독립된 개인으로서의 무거운 존재감을 전달한 아티스트들의 선례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상은이 그랬고, 이소라가 그랬다. 그렇지만 아이유의 경우는 잘 프로듀싱된 아이돌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나간 뮤지션으로, 그리고 여성 아티스트로 성장하는 큰 굴곡이 대중들에게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그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지도, 방어하지도 않으며 그 과정에 있었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란, 그것도 시라는 추상적인 형태로 또다시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주는 리스크를 짊어지는 일은 개인으로서 또 아티스트로서 쉽지 않다. 우리에게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흥미를 원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볼 수도 있고, 이전까지와는 다른 시각과 위치에서 그를 이해하려 노력할 수도 있다. 아이유는 그 모든 선택지를 우리에게 넘겼다. 그렇기에, 아이유 혹은 이지은이라는 실존하는 개인이 편집된 미디어의 세계에서 우리가 인지 가능한 실존의 영역으로 발검음을 내딛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는 [Love poem]를 그 어느 때보다 엄숙하게 대할 수밖에 없다. 확실하게 우리 앞에 존재하는 이를 대할 때, 혹은 시를 읽을 때에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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