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최 사랑하기가 힘든 주인공들
<첫사랑의 악마>는 <콰르텟>을 보고 사카모토 유지 작품을 찾아보다가 발견한 드라마. 중도 하차 위기가 몇 번 있었음. 개인적으로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 중 가장 매력도가 떨어진다.
방송 기간: 2022년 7월 16일 ~ 2022년 9월 24일 / 10부작
각본: 사카모토 유지
감독: 미즈타 노부오, 스즈키 유마, 츠카모토 렌페이
출연: 하야시 켄토, 나카노 타이가, 마츠오카 마유, 에모토 타스쿠 등
스트리밍: 왓챠 (2024 2월 기준)
네 인물이 얽히고설키는, 약간 서스펜스와 스릴러, 살짝 핀트가 나간 로맨스 등 작가의 인장 같은 요소들이 담겨있지만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다소 흥미가 떨어진다고 느껴졌다. 일단 주요 인물 네 명의 배우가 다 모르는 배우들이기도 했고, 보고 나서도 별로 흥미가 생기는 배우가 없...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보고 나면 반드시 배우도 정주행 하게 되는데 그런 흐름이 전혀 없었음.
배우도 배우지만 네 인물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지 않았다. 중간 지점까지도 하차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던 것은, 인물 그 누구에게도 좀처럼 공감이나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아, 이만 하차할까 싶을 때 즈음 스토리에 속도가 붙고 궁금증도 점점 생겨나 결국 끝까지 완주했다. (이미 5화 정도까지 볼 수 있게 되신다면 완주를 권합니다) 비교적 후반부의 완성도 좋기는 하지만 아주 만족한 작품은 아니다. 드라마를 보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래도 볼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No ;;
사카모토 유지 각본이라는 점과
이미 시작했다는 아까움
두 가지 이유로 완주가 가능했던 것 같다.
초중반 주인공으로 보이던 마부치 캐릭터에 좀처럼 공감이 안 돼서 힘들었다. 츠미키상과는 언제 감정이 생긴 건지도 도통 알 수가 없는 것. 4화에서 마부치가 갑자기 목소리 깔고 막 너무 애절한데 내 표정은 진심 이 상태...
아니 둘이 그럴만한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묻고 싶었다. ('내 심장이 왜 이리 차갑지' 자책도 함)
나중에 시카하마 이야기로 넘어가서야 앞단의 이야기들이 다소 납득이 되긴 했지만, 캐릭터 관계의 빌드업이 약한 건 너무나 아쉬운 부분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살짝 거슬렸는데,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캐릭터 자체에 대한 설정과 연출의 탓이 아닐까 싶었다.
마부치... 이게 뭐지 싶은 캐릭터. 후반에 뭔가 설명이 되겠지 했지만 그는 그렇게 비호감으로 마무리되었다. 츠미키를 그리워하며 울 때도, 형에게 미안해하면 울 때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를 연발할 때도(이게 착한 건가??) 전혀 동요되지 않는 내 심장과 표정.
츠미키의 인격2가 본격 활동을 할 때 마부치의 슬픔에 공감도 될만한 스토리 전개인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이토록 나를 냉정한 사람으로 만들다니;;) 오히려 인격1로 돌아간 이후, 시카하마의 슬픔에만 격한 공감이 되었다. 그간의 과정을 다 알고 있는 마부치와 츠미키가 태연하게 그의 앞에서 꽁냥 거리는 것도 당최 이해가 안 된다. 그들의 인성이 그 정도라서? 아니면 모두 기억을 상실한 건가? 앞에서 보여준 두 사람의 행태를 보았을 때 당연히 안타까워하고 감정을 숨길 만도 한데, 이게 뭔가 싶은 행동의 연속이었다. 시카하마의 슬픔을 위로하기는커녕 그의 집에 얹혀살며 연애 중이라니. (미쳤나?? )
유일하게 초반에 가장 호감이 가고 눈여겨본 인물. 초식남 느낌 폴폴 나는 그가 뜨거운 사랑을 품는 것이나 그녀를 위해 숫자 퀴즈를 밤새 푸는 등 너무나 매력적인 요소가 가득했다. 이 이야기 자체가 이 짝사랑 때문에 시작되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줄 알았는데, 그는 그렇게 그 기능에만 충실한 채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 사카모토 유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네 인물 중 꼭 한 사람은 그저 기능적 역할에 머무르는 경우가 있는 듯. (콰르텟의 이에모리 상)
아무튼 주인공이길 바랐던 이 아까운 캐릭터를 그냥 소비해 버리더니 후반부에는 거의 존재감이 없어짐.
모든 순간에 뚱한 표정으로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어슬렁 걷는 것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데, 인물을 분석한 배우의 과한 설정 같아서 몰입에 방해가 되었다. 단 한순간도 손을 내놓지 않겠다는 일념이라도 있는 듯이 잠깐 손을 사용하다가도 서둘러 주머니에 찔러 넣기를 반복하는 것이 어색하고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이런 것에 집착하는 나도 이상해...) 게다가 만사에 심드렁한 얼굴을 일관하던 이 사람이 갑분 마부치랑 연애 감정이 언제 생긴 거냐고... 그런데 후반 또 다른 인격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해 내는 것을 보며 그 차이를 위해 앞단에 설정을 좀 과하게 했구나 싶었다. 인격2의 연기는 놀라울 만큼 멋졌다. 개인적으로 인격2의 츠미키가 훠~~~~얼씬 매력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라서 사라지는 것이 아쉬웠다 ㅠㅠ.
초반에 약간 인내심이 필요했던 캐릭터 ;;
후반부의 주인공이었던 시카하마 또한 극 초반에는 과도한 캐릭터 설정과 연기가 좀 불편하게 느껴졌는데 점차 몰입감을 높여주는 탄탄한 캐릭터로 완성되어 가는 나름의 반전이 있다. 덕분에 마지막에는 가장 (유일하게) 애정을 느끼는 캐릭터가 되었다. 심지어 멋있어 보이기까지 ㅋㅋㅋ (그에 비해 마부치는 끝까지 호감이 안 갔다고!)
가와이~~~한 장면 ㅋㅋㅋ 여기선 사실 소개하는 코토리 상이 너무 웃김 ㅋㅋㅋ 은근히 착한 캐릭터, 너무 아쉽다 비중...
츠미키2가 시카하마에게 작별인사를 하러 온 장면. 대사와 연출, 배우의 연기 삼박자가 완벽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역시 이러한 결론을. feat. 배우들은 잘못이 없다.
허술한 캐릭터 설정과
다소 과한 컨셉의 연기는
연출의 문제임이 확실하다.
주인공 4인이 아닌 뜻밖의 인물이 이 드라마를 구원하는데 ㅎㅎ 바로 리사를 연기한 미츠시마 히카리!!
와 박수!!!!!!!
사전 정보 없이 본 탓에 갑작스러운 미츠시마 히카리의 등장은 너무 강렬했다. (츠미키의 인격 2의 회상에 등장하는 리사라는 인물과 얽힌 스토리가 이 드라마 전체 이야기 중 가장 공감되고 멋진 이야기였다.) 특별출연 수준의 아주 적은 비중이지만 이 드라마의 메인 정서라고 생각하는 특유의 서늘한 슬픔, 아릿함, 그리고 연대감 이 모든 것을 함축하는 미츠시마 히카리의 강력한 한 방! 그냥 그녀의 눈빛 하나만으로 그들의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고 설득된다. 전 세계 통틀어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 탑3 안에 드는 배우가 아닐까 싶다 ㅋㅋ 정말 해가 갈수록 더 깊어지는 배우라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드라마의 결말은 마부치 형의 사건 해결과 시카하마의 인간적 성장 두 가지 트랙에서 마무리되는데 전자의 경우 보통의 일드처럼 교훈적인데 그 부분이 사카모토 유지의 전작들과는 좀 다른 인상을 준 것 같다. 츠미키와 리사의 사연을 제외하면 여러모로 사카모토 유지 각본의 매력이 가장 덜 느껴진 드라마. 걸작이라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중도 하차를 참아낼 만큼의 힘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