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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Mar 11. 2024

어린시절 나는 아빠의 직업이 불편했다.

귀천이 없는 직업에 차별과 무시가 스며들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4학년 사회시간.

선생님은 두 사람의 사진을 보면서 말씀하셨다.

"여러분 직업에는 귀천이라는 게 없어요. "

직업은 귀하고 천함이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사진의 한 사람은 하얀색 가운을 고 있었고 한 사람은 땀을 잔뜩 흘린 얼굴에  고단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순간 나의 아빠가 하얀 가운이 아닌 땀이 나서 얼룩이 진 얼굴의 사람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나를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눈빛에는 귀함이 아니라 천함이 담겨 있었다.


 귀천이 없다는 말에서 나는 소중하고 귀하다는 감정을 느낀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너무나 가난했던 아빠는 어린 시절 본인의 큰 누나와 활을 쏘는 고위관리직들의 활쏘기 취미에서 활을 주우러 다니셔야 했다고 했다. 때로는 활에 맞을 뻔해서 무서웠고 너무 추운 겨울에는 눈 위에서 제대로 된 신발도 없이 발을 동동 거리며 누나와 춥고 발이 시려서 울었다고 했다. 그들은 활을 주워오는 도구로 어린 두 아이를 고용했고, 그 누구도 챙겨주거나 안쓰러워하지 않는 그때의 서글픔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하셨다.

 아빠 뒤에 태어난 동생은 가난한데 더 가난한 가정 형편에 태어났다고 했다. 아빠는 배가 고파 부모님의 눈을 피해 동생의 것을 빼앗아 먹었다고 했다. 어느 날 동생이 폐렴에 걸렸고 그렇게 병원에 가려던 중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뼈만 남은 몸으로 죽어버렸다고 했다. 아빠는 자기의 배고픔에 동생의 것을 빼앗아 먹었던 자신의 모습들이 떠올라 한동안 죄책감을 가지고 사셨다고 했다.


 너무나 가난한데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아빠는 겨우 모은 돈으로 토끼 2마리를 사셨고 그때부터 토끼를 키우셨다고 했다. 작고 낡은 자전거에 포대를 싣고 포대마다 먼 시골길의 풀까지 뜯어와 담아와서 토끼들을 먹이며 열심히 키워냈다고 한다.  토끼는 번식력이 강해서 순식간에 몇 십 마리가 되었고 몇 백 마리까지 될 때까지 아빠는 자기 몸의 5배는 되는 포대 속 토끼풀들을 매일 날라 토끼에게 먹이며 토끼농장을 관리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토끼를 팔아서 아빠는 가게 하나를 마련하셨고 그때부터 하루종일 몸으로 하는 일을 하셨다.  누군가는 " 자네 그렇게 일하다가는 무릎이 나이 먹어서 남아나지 않을 거네"라고 말하며 걱정하기도 했다.


 아빠는 젊음이라는 주어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동네에서 가장 큰 부잣집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좋은 집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셨고 '저 부잣집처럼 나도 열심히 살아봐야지'라고 마음먹으셨다고 한다.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부잣집을 쳐다보니 부잣집 주인은 더 일찍 일어나 집 앞마당을 쓸고 계셨다고 한다. 아빠는 부잣집 주인의 부지런함을 보며 자극을 받아 그 집 보다 더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셨다고 했다.  


 그렇게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하루종일 쉬지 않고 일하시고 하루가 지난 새벽에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남들보다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아빠를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불러주었다고 한다.


 힘들고 고된 일을 했지만 늘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았던 아빠는 드디어 큰 집을 사게 되셨다.  아는 게 많지 않고 배운 게 적었지만 아빠는 성실함의 대명사셨다. 토끼풀을 담아내던 포대에 이제는 만 원짜리 천 원짜리가 수북이 담겨서 매일 밤마다 엄마는 돈을 다 세지 못하고 주무셨다고 했다. 차곡차곡 모아진 돈마다 아빠의 고된 하루의 땀이 성실함과 함께 묻어있었고 저녁 9시가 되어서야 잠시 저녁식사를 하러 들리신 집에서 맞이한 아빠의  여기저기에 하루종일 아빠가 짊어진 무게의 얼룩이 남아있었다.  


 아빠의 몸을 사리지 않는 고된 열심과 성실로 나는 좋은 옷을 입고 갖고 싶은 것들을 가지며 다니고 싶은 학원들을 편하게 다닐 수 있었다. 누구보다도 말끔하게 챙겨 입은 옷과 조용한 모습에 선생님들은 차분하고 얌전한 학생으로 봐주셨다.


 그러나 그때 사회 시간 이후 어떤 친구들은 아빠의 직업을 가지고 놀리기도 했고 때로는 이유 없는 무시를 당해야 했다.

 

 속상함이 가득 담긴 어느 날 아빠에게

" 아빠~ 다른 일 하면 안 돼?"라고 울면서 말하게 되었다. 아빠는" 아빠 일이 어때서~!!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성실하게 산 것 밖에 없는데 이게 도둑질한 것도 아니고 남의 것을 함부로 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 밖에 없는데 왜 그러냐 네가 그러니 참 서운하다"라고 말씀하시며 나의 원망에 서운해하셨다.  


 아빠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고 최선을 다하고 사니 그런 아빠를 딸인 네가 늘 응원해 주길 바란다고 아빠는 부탁하셨다. 그러나 철이 없던 나는 "그냥 싫어, 나는 그냥 싫어"라고 말하며 방에 들어가 버렸다.


 우리가 사는 일상에서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도 누군가가 하루라도 안 하면  주변 환경은 쓰레기장이 것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안에는 각자의 맡은 하루의 일 가운데 눈에 보이는 판단과 처해진 환경에 대한 차별과 무시는 남아있다.  월급이 80만 원의 근로자와 월급이 10억이 넘는 근로자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누구를 무시하게 되는가? 우리는 누구에게나 직업과 상관없이 상냥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힘들고 어렵고 지저분하고 위험한 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사회가 돌아간다. 하지만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돈이 급한 사람이 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처한 자리에서의 성실함과 고된 일에 대한 수고를 우리는 무시하거나 차별해서는 안된다.  감사하고 존중해야 한다.


 결국 그날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은 직업의  귀하고 천함의 차이가 아니라 모두의 일이 소중함을 그리고 직업을 가짐에 대한 감사함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싶었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 힘든 일 가운데서도 하루라는 시간을 다해 애쓰시는 분들이 있음에 우리가 사는 사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13년 경단녀는 가정에서 벗어나 취업을 하게 되었다. 고정적인 수입을 위해 갖는 서글픔이라는 감정에게  내가 하는 일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스스로 다독여보고 싶다.  아빠가 보여주신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마음에 가지고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일해보려 한다.


그렇게 취업 10일 만에 생긴 월요병을 달래기 위해 오늘 글을 발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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