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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Apr 17. 2024

사실 나에게는 사랑 할 힘이 없습니다.

30년 결혼생활을 한 선배가 들려준 이야기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여자가 없으면 죽어버리겠노라고 말하며 함께 살아달라고 말했다. 그 남자의 엄마는 여자에게 와서 내 아들이 죽게생겼으니 제발 살아다오라고 부탁했다.

여자는 죽기까지 각오한 남자의 사랑에 내 평생을 함께해도 괜찮겠구나 하며 결혼을 했다.  


 그러나 결혼생활은 마치 죽음을 넘나들듯이 괴로우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남자는 매일같이 여자를 혼자 두고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다. 다른 여자들을 안고 놀다가 걸리기도 했다. 그런 남자를 여자는 원망했고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남자는 화가 난 여자의 분노를 억압하려는 듯 여자를 때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자와 사는 게 괴롭다며 없으면 죽을 거 같다더니 이제는 같이 살면 죽을 거 같다고 말했다.


 여자는 아프기 시작했다. 매일 늦게 오는 남편을 기다리느라 속이 타들어갔고 들어온 남편에게 곱지 않는 말이 나가면 남자는 무언가를 때려 부수거나 여자를 인정사정없이 때리고는 술에 취해 잠드는 날이 쌓여갔다. 벌어오는 돈도 없이 가난한 형편에 먹는 것 마저 편하지 않은 하루하루였다.

 

 여자는 어느 날부터 혈변을 누기 시작했다. 명치 어딘가가 아팠고 식도는 타들어가는 듯했다. 눈이 잘 보이지 않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알고 찾아간 병원에서는 몸의 이곳저곳을 검사하더니 여자에게 위암이라고 말했다. 타들어가는 마음이 몸 어딘가에서 병으로 자리 잡아버렸다. 어린 딸들과 가난한 살림에 여자는 수술할 돈조차도 없었다.  하소연을 할 부모조차 없어 고아처럼 혼자 남겨진 현실이 슬퍼 여자는 울기 시작했다.  하루는 땅바닥을 손으로 긁어대며 살고 싶다고 울었지만 손톱에서 피만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렇게 수술을 하고 수술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나지막한 의식 속에서 흘러내려오는 눈물을 보게 되었다.  의사는 여자의 주먹만 한 암 덩어리를 남편의 손에 들려주며 보여주었다. 여자의 몸에서 나온 암을 제거했으며 위도 함께 절제했노라고... 남자는 그제야 그녀를 아프게 한 게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독한 항암치료를 받으며 여자는 30대의 나이에 머리가 백발이 되어버렸다. 몸은 마르고 먹으면 토하던지 바로 배출이 되느라 늘 몸에 기운이 없었다. . 힘겹게 아픈 몸으로 어린 딸들을 키워내고 살던 나날 중에 고진감래인지 가난한 형편에 남자의 사업이 조금씩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여자가 조금씩 몸이 좋아지자 남자는 다시 술을 찾고 친구를 만나러 다녔다. 여자는 다시 남자를 원망하고 늦은 밤 잠들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날 이제는 타들어가 버릴 속도 없는 몸으로 남자에게 전화를 하고 또 하지만 받지 않아 화가 나던 순간


한 음성이 들렸다.


 나와 대화하듯이 기도하자. 오지 않는 남자를 기다리지 말고 너의 속상한 마음을 나에게 털어놓으렴


 여자는 울면서 기도했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냐고 평생 바뀌지 않는 이 남자를 왜 만나게 하셨냐고 그렇게 울며 기도하자 여자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남자가 늦게 올 때마다 여자는 마음을 위로할 찬양을 부르고 말씀을 찾아 읽으며 제발 남자가 집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빌었다. 어느 은 위로가 되기도 했지만 어느 은 들어지지 않을 소원을 비는 거 같아 막막하고 처량했다. 마음 한편에서 불안과 원망 미움은 가시지 않은 채 자신을 달래는 의식을 하는 거 같아 조금 나아진 듯한 마음이 다시 슬프면서 더 괴로웠다.


 그때 술에 취해 돌아온 남편에게 여자는 다시  차곡히  쌓여버린 뜨거운 화를 풀어냈다. 악을 써가며 언제쯤 변할 거냐며 미움이 담긴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풀리지 않았다.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가며 제발 내 말을 들어달라고 강하게 호소하면 남자가 들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말들은 늘 다시 여자에게 되돌아와 마음에 앙금처럼 쌓여버렸다.


더 무거웠고 더 외로웠다.


미움의 시간이 길어지던 어느 날 매일 반복되던  그날 밤 여자는 남자가 미웠다. 망가진 몸처럼 마음은 이미 너덜거렸다. 그때


다시 한 음성이 들려왔다.


불쌍한 너의 남편.. 사랑을 해줄 수 없겠니? 네가 사랑해주었으면 해서 너와 만나게 했는데 내가 사랑하는 그 아들 너도 사랑해 줄 수 없겠니? 네가 사랑해 준다면 나는 참 고마울 거 같구나. 내가 세상 어느 것보다도 귀하게 사랑하는 그 아들 너의 남편.. 내 딸아 사랑해 다오.. 너에게 내가 사랑을 부탁한단다.


여자는 멈출 수 없는 눈물이 났다... 남자를 사랑했던 기억보다 원망하고 소리 지르며 할퀴는 말과 다툼으로 마주하던 시간들이 스쳐갔다. 그때마다 내 아들 사랑해 다오라고 마음을 전하던 그 애절한 눈빛이 지나온 시간 위에 내려보는 시선으로 느껴졌다. 누구보다도 마음 아파하며 괴로워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해다오라던 그 시선과 들려오는 음성이 마주쳤다...


죄송해요...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했던 그 시간을 용서해 주세요.. 사랑하겠습니다. 나에게는 사랑할 힘이 없지만 당신이 사랑해 다오라고 부탁하시니 그 마음으로 사랑하겠습니다. 그 마음으로 사랑하도록 나에게 당신이 가진 특별한 힘을 주세요..라고 말하며 그날 이후로 남자를 사랑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남자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여자의 마음은 변했다. 사랑할 힘이 없던 마음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힘이 들어왔다. 그리고 사랑해 주었다. 당신을 사랑하는 분이 당신을 사랑하라고 나에게 부탁하셨다고 말하며 여자는 사랑을 전했다.  그러자 남자는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뭐라고 당신이 사랑해 주는지 모르겠다며... 당신을 만나서 내가 사람답게 사는 거라며.... 당신이 있어서 고맙다라며... 그동안 미안했다고 말하며... 남자는 그 사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나에게 진짜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울림이 왔다..


상대가 보낸 아픔과 상처의 자리마다 나는 늘 미움이 뭉쳐진 딱지를 만들었다. 나을만하면 딱지를 건들며 흘러내리는 피와 쓰라리움에 봐 난 널 미워할 수밖에 없어라고 이유를 댔다. 나의 시선과 내가 가진 마음의 테두리는 늘 정해져 있었고 미움의 타당함에 당당했다. 그러나 그분의 시선으로는 누구나 소중하며 사랑받아야 하는 귀한 아들이며 딸임을 느끼게 되었다.


마음의 시선을 내가 아닌 그분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에게 없는 사랑의 힘이 그 시선을 타고 들어오는게 느껴진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사랑해야한다는 것을...


오늘  마음을 괴롭게 하던 사람을 만나기 전 그 마음을 가지고 마주하였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을 내가 사랑하기 바란다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머릿속에 맴돌던 미움의 소리들이 힘없이 작아지기 시작했다.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껄끄러움이 어딘가로 흘러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오늘 나는 내 안에 없는 사랑의 힘을 받아 사랑을 할 수 있는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려고 노력해 보았다.  


결국 그 마음으로 행복해진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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