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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리영 Feb 07. 2024

어머님, 이번 명절 며느리는 휴직서 냅니다.

며느리는 명절이 아닌 연휴를 원한다.

 명절이 오기 일주일 전부터 피곤하다.  그날을 피하고 싶지만 딱히 피할만한 이유도 없다.


 어색한 공간, 불편한 남의 집 살림 속에서 나는 어깨가 움츠린 채로 누군가의 일꾼처럼 부려먹음 당했던 시간들의 기억에 명절이 다가오는 시간이 즐겁지가 않다. 나를 고생하며 키워준 것도 아니고 자라는 동안 입히고 먹여준 것도 아닌데 너무나 당당하게 나에게 요구한다.


거 일루 와 봐라~
거 이거 얼른얼른 해라~
거 이거 치워라~
거 뭐 하냐~
거 얼른 밥 차려라~


 편하게 앉지도 먹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왜 이렇게 불편한 명절을 보내야 하는 거야?라는 마음의 소리도 내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면 남은 감정이 외친다.


 억울하다.


  온전히 쉬고 싶은 연휴다.  어차피 온 식구가 집에서 바글거려 내 손길이 여기저기 가야 하는 쉼 없는 연휴이긴 하겠지만,  그렇게 반갑지도 반기지도 않는 시댁에 가는 일은  마치 일없이 지내던 한 여자를 작정하고 부려먹어야겠다는 남의 집 심보에 타당하지 못한 정서적 육체적 구박 비슷한 학대를 받고 오는 기분이다.


 남의 편은 어찌나 입이 쉬지도 않고 먹어대는지 밥 먹어놓고 식혜 타령이다. 밥알 가득 담아 따뜻이 끓여주란다. 명절 내내 움직이지도 않아서 소화도 안된 거 같은 위장에 삼시 세끼를 열심히 밀어 넣고 있다. 만들고 차리고 치우고 손 많이 가는 일을 해대지만 즐겁지가 않다. 세상 편해져서 AI시대라는데 여전히 조선시대의 풍습을 따라가는 명절이 참 못마땅하다.


몇 년 전 남편은 명절이 다가오자 설렌다고 했다. 여전히 나의 감정에 대한 공감은 저 멀리 두고 자신의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도대체 뭐가 설렌다는 건지 명절에 대한 동상이몽에 잠들지 못한 명절 전야였다.


여기서 잠깐!

설레지 않고 나처럼 미리 피곤함이 찾아온 전국의 며느리들에게 명절 증후군 자가테스트를 권해본다.

 명절 연휴가 다가올수록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

 친척들과 만남이 반갑지 않고 꺼려진다.

 연휴 동안 일정과 가사노동이 걱정이 된다.

 불면증 소화불량 두통 등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명절 전 후 무기력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목이나 명치끝에 뭔가 꽉 차 있거나 걸려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두 가지 이상 해당이 되면  명절증후군으로 의심을 해볼 수가 있다. 나는 무려 5개가 해당된다. 심각한 중증상태인 것이다.  


 명절이라는 긴 연휴 동안 나를 위한 시간은 없다. 누군가에게 맞춰야 하는 노동의 시간과  대가 없는 당연함의 시간을 버텨야 함이 13년 째이다.  앞으로도 10년은 넘게 해야 할 일인가 싶어서 고개가 절로 흔들어진다. 아 정말 싫어라는 말과 함께 마치 대단한 집에 아쉬운 며느리가 들어와 아쉬움을 메꿔야 하듯이 나의 수고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며 그들에게는 나의 노동이 아주 당당하게 요구로 남아있다.


휴~~~


 안 그래도 매일 숨 고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기혼 여성들에게  쉼이 필요한 시기이다. 딱 쉬고 싶다고 말하고 싶을 때쯤, 고된 행군 일정처럼 명절이 다가온다. 평소 남편에게 고마움이 가득하다면  시댁의 일에 피곤함이 덜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안 그래도 덜 커서 온 거 같은 남편을 키워내고 챙기느라 버거운 결혼 생활이다.  며느리는 시댁이라는 남편의 자기 공간에서 갈등이 싫어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해야 하며 진실되지 못한 감정으로 일해야 하는 시간이 절로 아이고가 나온다.


 그러니까 남편이 별로일수록 명절은 더 괴로우며 불편한 것이다. 설레는 남편만 본가에 보내고 싶다.  나의 빈자리를 마음껏 메꾸며 실컷 설레다 오소서라고 우선권을 주고 싶다.  남 일 인 듯이 비켜 앉아있는 것도 아닌 편하게 누워서 쿨쿨 낮에도 속 편하게 잠만 자는 남편에게 기꺼이 이번 설날  나의 자리를 넘겨주고 싶다.  


누구 집 며느리,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의 시간을 갖고 싶다. 명절이 아닌 행복한 연휴를 즐기고 싶다.  연거푸 나오는 싶다는 넋두리로 끝내지 않으려 한다. 13년 차 며느리로 이제는 못 할 이유도 없다. 그동안 지내온 수많은 명절이라는 시간 동안 쌓여왔어야 할 상대로 부터 오는  따뜻한  공감  안에 부족하기에 당당하게 말해본다.


어머니 이번 명절 며느리는 쉽니다.


 

13년만에 끝내는 며느라기



#사진출처는 애정하는 며느라기 웹툰,네이버,더 좋은 옥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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