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Dear diary.
안녕, 잘 지냈니?
내가 머물고 있는 서울에는 지금 이상한 코로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어. 자가격리를 하고 나니 2주가 훅 갔고, 치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느라 1주가 또 훅 가고, 이제사 친구들을 좀 만나려고 했더니 코로나 확진자 수가 치솟기 시작했지.
문학학교 동호회, 고동학교 동창들, 영화동호회 등 잡아놓았던 모임들은 줄줄이 취소되었어. 그나마 일대일로 만나기로 했던 친구들은 조심조심 만날 수 있었지.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 기대가 무색하게 점점 늘어가는 확진자 수를 보면서 더 이상 새로운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어. 내가 감염될까봐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노령의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으니 더 조심스러웠고, 무엇보다 추운 날씨에 돌아다니다 코로나든 감기든 걸려 열이 오르면 예정된 날짜에 아일랜드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거든. 비행기표 날짜를 바꾸려면 최소한 몇십만원이 깨질 텐데 나에게는 그런 돈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존이 혼자 보내게 둘 수는 없으니까, 가는 날까지 아프면 안된다는 의무감이 드는 거야.
보고 싶은 사람들. 함께 이야기 나눌 시간을 꿈꾸며 1년이나 기다렸는데 한국까지 와서 얼굴도 못 보고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야 하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지. 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때문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 충분히 행복했어. 그리웠던 곳에 와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았으니까. 친구들을 마음껏 못 만나는 대신 엄마와 매일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영화를 보러 가고, 장을 함께 보고, 산책을 하며 텔레비전을 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주말마다 가족모임을 하며 언니, 남동생, 올캐랑 와인을 홀짝이고 이쁜 조카들의 재롱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고. 또 코로나 때문에 부담스러울 텐데도 꼭 만나고 싶다며 흔쾌히 시간을 내어준 친구들이 있어 따뜻했어.
특별히 감사하는 건, 돌아보니 한국에서 조용하게 보낸 이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는 거야. 코로나 블루와 향수병이 뒤범벅되어 예고 없이 들이닥친 우울증 때문에 힘들었던 아일랜드의 가을 끄트머리, 어떤 변화가 절실했던 나에게 한국에 머무는 시간은 마음의 쉼을 주었어. 코로나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는 없어도 그리웠던 장소들을 기웃거리는 모두 시간이 여행을 하고 있는 기분이었거든.
아일랜드보다 맑은 날이 많은 것도 좋았지. 아일랜드의 서늘한 집과 달리 바닥이 따뜻한 온돌방에 앉아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에 젖어 있던 감정들이 다시 바삭바삭해지는 거야. 자가격리가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 햇살 덕분이었을 거야. 단풍이 한창인 북한산을 지천에 두고 밖에 못나가니 답답하긴 했지만, 햇빛이 가득한 방 안에서 나른하게 이완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친구들이 택배로 보내준 책들을 읽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어. 책을 읽다 스스르 잠이 들기도 했는데, 그렇게 온 몸의 긴장을 놓아본 게 얼마나 오랜만이었는지 몰라. 한국에 오기 전 깊은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때,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무언가 해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늘 얼마만큼의 긴장감이 어깨를 누르고 있었거든.
오늘 오후에는 친구 회사로 찾아가 함께 점심을 먹었어. 친구가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듣고 나도 남은 밥에 몇 가지 나물을 담아 도시락을 쌌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오후햇살에 등을 기댄 채 한국의 차고 건조한 겨울공기를 마음껏 음미했어. 돌아가면 그곳과는 다른 맛, 다른 냄새, 다른 감촉의 이곳의 공기가 금새 그리워질 테니까.
이제 아일랜드로 돌아갈 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어. 늘 이 시간이 되면 마음이 두 갈래로 흩어지지. 좀더 한국에 머물고 싶은 마음과 빨리 존을 만나고 싶은 마음. 슬슬 짐을 싸야 할 시간이야. 이번에는 꼭 가져가야 할 것들을 가려내느라 애 좀 먹을 것 같아. 현재 우체국에서 부칠 수 있는 항공편도 배편도 모두 막힌 상태라, 직접 가져갈 수 있는 짐의 무게만큼만 가방에 담아야 하거든. 더블린 공항에는 지금쯤 크리스마스 트리와 크리스마스 장식이 곳곳에 가득하겠지? 늘 공항 이벤트를 준비하는 존은 이번에 산타모자를 쓰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비록 코로나에게 잠식 당한 한해였지만 그래도 소중했던 2020년의 남은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 좀 더 행복해질 2021년을 상상하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