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gonna be me"
저번 주 와이프 비자 신청할 때 필요한 서류를 프린트하기 위해서 회사에 다녀왔다. 때마침 매니저 역시 출근하는 날이었고, 그는 단체 채팅방에 "혹시 다른 사람 출근하니? 오면 끝나고 맥주 한잔 하자"라며 사람들을 만나기 희망했다. 재택근무가 적응된 다른 동료들은 읽씹을 했었는데 내가 오후 3시즘 회사에 갈 것 같다며 연락하니 그는 어서 오라고 했다.
매니저와 반년만에 만나는 것이다. 지난 2월 "결혼하고 올게"라고 인사한 후 긴 시간 동안 만날 수 없었다. 매주 화상채팅으로 업무 상황만 공유했는데 실제로 만난다는 게 신기했다. 현재 아마존 오피스는 직원이 원한다면 언제든 출근할 수 있게 조치가 된 상황이다. 입구부터 수많은 검사 카메라와 손세정제들이 비치되어 있고, 회사 바닥에는 다양한 스티커들이 부착되어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다. 사무실은 예상한 것과 같이 텅텅 비어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매니저와 주먹으로 하이파이브를 하고 서로에 대한 근황을 물었다. 생각해보니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필자는 결혼을 했고 매니저는 둘째 딸을 낳았다. 최근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필자를 포함한 2명에서 거의 50명 이상을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워낙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 크게 놀랍지는 않았지만 한편으로 예전처럼 자주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게 꽤나 아쉽다.
사무실에서 만난 매니저와 정말 별에 별 이야기를 했다. 집을 알아봐야 하는데 은행 대출이 얼마더라부터 해서 3월 매니저가 응급실에 다녀온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퇴근하는데 매니저는 계속해서 맥주를 마시러 가자고 했다. 예전부터 외국 상사는 술 마시러 가자고 강요 안 한다고 했는데 어쩌면 수정이 필요한 것 같다. 필자는 코로나 이후 한 번도 집 밖에서 마스크를 벗지 않았기에 "조건이 있어"라며 매니저에게 "펍과 같은 곳은 안돼. 차라리 술을 사서 오피스나 아니면 공터 같은 데서 마시자"라고 네고를 했다. 결국 기존 멤버인 다른 동료까지 포함하여 우리 3명은 회사 앞 슈퍼에서 산 캔맥주를 들고 근처 공터에 자리 잡았다. 오후 6시 공터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우리의 모습이 한편으론 웃겼지만 또 한편으론 얼마 만에 경험하는 일상의 모습인가 라는 생각에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우린 그 자리에 앉아 참 많은 대화를 나눴다. 특히 "진실성 (Authenticity)"에 대한 주제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최근 디렉터가 총괄하던 주간보고가 매니저 총괄로 변경됐다. 그는 보고를 하던 입장에서 보고를 받는 입장으로 바뀌게 되었는데, 지난 몇 개월 동안 주간보고 중 몇 팀들은 "왜 이렇게 준비를 부실하게 했지"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내가 아는 매니저의 성격이라면 불같이 화를 낼만도 할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것들을 보면서 그의 의도가 궁금했다.
주간보고 하면서 "와 진짜 너무하네"라는 생각한 적 없어?
라고 물어봤고 매니저 역시 "왜 없었겠어"라며 솔직하게 말해줬다. 그러나 무작정 화를 내거나 꼬치꼬치 캐묻는 것보다 조금 더 적은 인원이 있는 리더십 회의에서 따로 언급을 할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주간보고는 모든 직원들이 있다 보니 동기부여를 떨어뜨릴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실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회사에서 우리는 얼마나 "나" 다워야 할까?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상사와 후배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때론 본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어린 신입사원의 경우 무엇이든 배우기 위하여 싫은 것도 마다하지 않고, 직급이 오르면 화가 나더라도 타 부서와의 관계를 유지하게 위해서 참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본인다움은 어디까지 표출을 해도 되는 것일까? 매니저는 그와 관련하여 예전 리더십 교육 중 한 임원의 말이 참 인상 깊었다고 했다. 뉴욕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이탈리안 출생의 그는 집에서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덕분에 그는 아직도 큰 목소리로 직설적인 대화를 하는데, 그 역시 처음엔 누군가의 미움을 받을까 많은 걱정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멘토인 사장님에게 "본인다움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을 들은 그는 본인다움이 무엇인지 집중했으며 그중 장점들을 찾아 발전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런데 우린 단점에 너무 많이 시간을 투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잘못된 점이 있다면 고쳐야 하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때론 단점보단 본인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강점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때론 사람들은 당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때 당신의 단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마케팅 팀에서 필요한 제품 개선 대신 새로운 고객 유치를 위한 신제품을 우선순위로 정해 론칭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당신은 마케팅 팀으로부터 단점이 많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겠지만 회사 전체적인 측면에서는 옳은 선택을 한 효율적인 사람일 수 있다. 물론 누군가가 당신의 발전을 위한 진솔한 단점을 알려준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당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알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매니저는 예전 비슷한 딜레마를 갖은 적 있다고 했다. 글 쓰는 것에 있어서 우리 매니저는 정말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 지난 3년간 그와 적은 글들을 읽은 임원들은 (한번 빼고) "정말 좋은 글이야"라는 말과 함께 회의를 시작했다. 덕분에 다른 부서에서 적은 글들을 읽다 보면 이게 최선인가 라고 생각되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매니저는 "그는 글 쓰는 시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꼭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라는 불만 사항들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좋은 글이 완성될 때까지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성격 때문에 부하직원들은 힘들어했었고 때론 이 점이 그의 단점으로 적혀 있었다. 그는 당시 그의 매니저에게 고민을 털어놨는데, 그의 매니저는 바로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건 좋은 거야. 무시하고 지금의 기준을 절대 내려놓지 마"라는 피드백을 줬다.
필자의 팀에 N이라는 친구가 새로 들어왔다. 사내 로테이션을 통해서 들어온 그녀는 좋은 매니저를 찾다 보니 현재 매니저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최근 우리 제품에 대한 분기보고 글을 그녀에게 써보라고 맡겼다. 그녀는 빨간펜 선생님으로 돌변한 우리 매니저를 처음 보게 되었고, 매니저는 예전 우리에게 그랬던 것과 같이 빨간 줄을 그으며 거의 모든 부분을 새로 적어야 할 것 같다며 코멘트를 달았다. N은 이 상황에 매우 당황해하며 같은 글을 몇 번이나 고쳐가며 확인을 받고 있다. 한 번은 술을 마시러 펍에 갔다가 매니저가 같이 일했던 동료를 소개받은 적 있다. 그는 팀을 변경한 뒤 글 쓰는 게 달라졌다고 했다. 이동한 팀에는 글의 퀄리티를 따지는 사람이 없어 쉽게 글을 쓸 수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좋은 글을 쓰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매니저의 가장 본인다운 모습은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누가 보기엔 단점일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그는 이를 본인의 장점이라 믿고 꾸준히 발전했기 때문에 지금 가장 누구보다 본인답게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