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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강 Sep 12. 2023

02. 어느 날 갑자기 승진했다는 연락이 왔다.

"갑자기?"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올해 목표 중 하나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글을 올리자라고 했었는데, 두 번째 편을 2월에 올리고 업무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여유가 없었습니다. 짧게라도 글을 꾸준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근황: 저는 매년 커리어적으로 어떤 성장을 할 것인지에 대한 테마를 선택합니다. 아마존의 첫 해에는 회사에서 살아남는 게 목표였고, 다음 해에는 나만의 제품을 론칭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이렇게 쌓인 목표는 제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올해의 목표는 보고를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흔히 Upper management를 잘 한다라고도 일컫는데, 아무래도 직급이 높아지고 담당하는 프로젝트가 많다 보니 중간관리자로서 꼭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거대한 프로젝트를 두 개나 맡게 되어서 임원들 중에서도 고위 임원들과 지난 7개월 동안 매주 만나 회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중에는 쉬는 시간 없이 늦은 밤까지 일하는 날들이 많았는데요. 끝없는 터널을 달리는 느낌이라 체력적으로 힘든 날들도 많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보고에 대해서 자신감을 얻기도 했고 윗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요즘 같은 시기에도 사람을 추가적으로 채용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과정과 경험들은 추후에 천천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승진에 대한 이야기다. 직장인은 월급과 승진을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다. MBA를 졸업하고 같이 아마존에 입사했던 친구들은 입사 첫 주부터 본인들이 어떻게 승진을 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짜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줬던 기억이 있다. 한 친구는 승진에 대해서 본인의 매니저와 벌써 상의 중이라고 했고 다른 친구는 카더라를 통해서 들었던 방법을 조심스럽게 공유했었다. 아무래도 MBA 출신들이라 그런지 다들 자리욕심이 있었는데, 당시 나는 회사에 적응하기 바빴기 때문에 승진에 대해서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하루는 같은 팀에서 근무하는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신적이 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입사하고 나이도 많았던 친구였는데, 일을 잘해서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였다. 그날 그는 나에게 언제 승진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물어봤다.


나는 아직 준비가 된 것 같지 않아. 준비가 되면 이야기해 봐야겠지?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아마존에서 승진을 하고 싶다면 매니저에게 본인의 의사를 먼저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매니저는 내가 회사에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고만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조금 더 내가 준비가 되면 이야기를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고 그 친구는 나보다 먼저 승진을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나는 프로덕트 매니저로서 아마존 내에서 꽤나 좋은 입지를 얻었고 열심히 일한 덕분에 상위 고과를 놓치지 않고 연속으로 받았다. 특히 매년 받는 상대평가에서는 "그는 충분히 다음 레벨의 업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직 승진을 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피드백을 여러 번 받기도 했다. 당시 매니저와 해당 피드백을 읽으면서 웃어 넘기기만 했지 따로 승진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적어보니 마치 내가 자신감이 없어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보다 내가 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입사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승진을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르기도 했고 (당시 내 직급에서 다음 직급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정말 빠르면 3년 그리고 늦으면 8년에서 10년까지 걸리는 사람들도 봤다) 보다 더 어려운 프로덕트를 매니징 하는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렇게 또 다른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당시 내 매니저는 임원 승진 프로세스를 거치면서 나와 그 사이에 추가로 매니저를 두기로 결정을 내렸다. 새로운 매니저는 경험이 많은 스페인 출신의 상사였는데, 내가 아마존에서 만난 두 번째 상사였다. 그녀를 쉽게 설명하자면 따듯한 리더였다. 코로나 기간 중에 입사를 하게 된 그녀는 아마존 B2B 마켓플레이스에서 관리하는 수많은 제품들을 전부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제품들이 존재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나마 경험이 많았던 나에게 Invoicing products 들을 관리해 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했다. 해당 Invoicing products 들은 아마존 B2B 분야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분야였고, 내가 입사 후 계속 관리하던 제품들이라 크게 어렵지 않게 담당할 수 있었다. 해당 제품들은 유럽 세법들을 활용하여 서비스를 제공했기에 외부 사람이 바로 이해하기는 어려움이 있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매니저를 거치지 않고 제품을 담당하는 Single threaded leader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대일 미팅을 하던 중 그녀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물었다.


나는 네가 내 팀원이 아닌 동료가 되었으면 좋겠어. 네 생각은 어떠니?

굉장히 신박한 제안이었다. 상사가 승진을 시켜준다는 것이 아닌 승진 후 본인과 같은 동료가 되는 게 어떻냐는 질문에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제안은 진실됐고 나 역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긍정적인 답변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의 스킵 매니저 (첫 번째 매니저)는 나에게 나만의 팀을 꾸려보라는 연락을 줬고 나는 두 명의 프로덕트 매니저를 관리하게 되었다. 아마존의 승진 과정 중 흥미로운 점은 직원들을 무작정 승진을 시켜주지 않는다. 다음 레벨로 올라갈만한 업무/기회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해당 업무를 맡긴다. 그 후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면 승진 심사를 본다. 이 프로세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직원이 승진을 하면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고 이 업무를 잘 해내지 못해서 실패하는 케이스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나는 새로 주어진 업무를 잘 해낸다면 약 1년이 지난 후 승진심사를 보게 될 것이라는 피드백을 받았다.

 


팀을 이끄는 새로운 업무는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되어 내가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게 해 줬다. 내게 주어진 업무만 잘 해내면 되는 Individual contributor와는 다르게 내 팀원들을 가르쳐주고 업무를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그들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해당 제품군에 대해서는 아마존 내에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있었고 새로운 제품들을 빠르게 론칭하며 고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며 제품군을 확장할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날씨가 무척이나 따듯했던 금요일 오후였다. 아마존에서 주문한 제품을 반송하기 위해서 집 옆에 있는 우체국에 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킵 매니저에게서 메신저가 왔다. 급한 일이 있다며 빨리 전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고 스킵 매니저에게 전화를 하니 그는 "최근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던데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 줘"라는 뚱딴지같은 질문을 했다. 뭐 그래도 차근차근 설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는 나에게 소리쳤다.


짜잔! 축하해! 너 승진했어!

그렇게 나는 승진을 했다. 보통 승진심사에서 사용될 글 혹은 나의 승진을 지원해 줄 임원들을 찾아 연락을 하는 게 보통인데 나는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스킵 매니저에 따르면 감사하게도 주변 임원들이 나를 좋게 봐서 승진심사에 올라가자마자 질문도 없이 만장일치로 통과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더 일찍 승진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더 빨리 승진하지 않았을 것 같다. 다만 나는 내가 원하는 페이스대로 일을 배웠고 기초를 잘 닦아놨기 때문에 더 수월하게 승진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후 나는 Principal product manager에서 테크 분야를 더 적극적으로 담당하는 Principal product manager - Technical로 직무가 변경이 되었고 (내가 요청했다), 팀원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Senior manager, Product management - Technical이라는 직무로 추가 승진이 되었다. 이제는 한 제품군만 담당하는 것이 아닌 아마존 임원들의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제품군들을 더해가며 다양한 경험을 더하고 있는 중이다. 


직장인은 월급과 승진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업의 기초를 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의 주인이 되어 전문성을 키우고, 다른 일들도 도와주기 위해서 기꺼이 손을 뻗다 보면 본인의 영향력은 커지게 된다. 그리고 결국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 더 큰 기회가 찾아오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본 내용은 개인의 의견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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