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강 Jun 08. 2020

조직의 언어를 이해하는 사람

"야너두 할 수 있어"

시간이 된다면 내 글을 한번 읽어볼 수 있겠니

최근 동료의 글을 읽어볼 기회가 자주 있었다. 타 부서 사람들에게 글을 공유하기 전 나의 피드백을 받고 싶어 했고 평소와 같이 회의를 잡아 그의 글을 읽고 내 생각을 전했다. 그 글에는 수많은 시간을 투자해 습득한 정보들이 잔뜩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야 좋은 정보지만 제품을 처음 접하는 부서라면 이 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나는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네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라며 솔직하게 말했는데 특히 "이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 줄로 적어보고 목적에 벗어나는 부분이 있다면 지우거나 전부 appendix (부록)으로 옮기자. 또한 글이 너무 어려운 것 같은데 조금 더 쉽게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재택근무를 한 지 3달이 넘었는데 지금이 회사 출근을 하던 때보다 바쁜 것 같다. 매니저가 다른 팀들을 같이 담당하게 되어 예전만큼 필자의 제품 쪽에 신경을 못쓰게 되었고, 덕분에 우리 부서는 예전보다 더 독립적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매니저는 필자에게 조만간 있을 임원보고 글을 적어보라고 했다. 이전까지 매니저가 직접 작성하던 부분으로 필자 제품뿐만 아니라 다른 제품의 진행사항까지 포함해야 한다. 아마존에서 근무하면서 이제 조금이나마 글을 쓰는 것에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한 글을 쓰려다 보니 이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 매니저와의 두 번의 리뷰에서 받은 피드백을 최대한 반영하며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고쳐나갔다. 허나 돌이켜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피드백과 얼마 전 내가 동료에게 했던 피드백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글에서 임원들이 알 필요 없는 내용들이 있지는 생각해봐. 또한 우리가 자주 쓰는 단어이지만 임원들은 모르는 경우가 있으니 그 부분까지 잘 고민해.

매니저는 다음 날 장문의 피드백을 보냈다. 각 문단에 필요하지 않은 부분에 대한 설명, 글 스타일이 아마존 스타일과 같지 않는 부분, 그리고 스토리의 흐름에 대한 솔직한 답변들이었다. 같이 글을 적었던 동료는 그의 코멘트를 읽으며 "정말 주옥같다"라는 말을 했는데 "괜히 임원들이 그를 좋아하는 게 아닌 거 같아. 정말 간결하고 확실해"라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필자의 매니저는 아마존 기준에서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그의 글을 읽는 임원들은 항상 "정말 잘 쓰인 글이야"라고 칭찬을 하며 회의를 시작하는데 그의 글은 읽어보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쓰여있다. 덕분에 그에게 글 쓰는 것을 배우며 나 역시 발전한다는 게 느껴지는데, 또 한편으로는 어떤 글을 쓰더라도 언제든 다시 쓸 준비를 해야 한다. 

 


필자는 공대생 배경에 연구개발 업무를 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논문을 제외하고는 딱히 글 쓸 일이 없었다. 특히 공대 논문의 경우 대부분 수식 혹은 데이터였기 때문에 글을 쓰는 실력에 대한 고민을 해본 적 없는데, 아마존에서 근무하며 글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다. 


모든 회사에는 비슷하지만 다른 "조직의 언어"가 있다. 필자가 경험한 삼성에서의 언어란 간결한 문장을 사용한 주간 보고도 있었지만 연구개발직 특성상 파워포인트를 이용한 발표가 더 많았다. 일을 잘한다고 느꼈던 선배들 중 공통적으로 그들은 발표를 잘했다. 임원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았고 논리적인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도 훌륭했다. 그 후 아마존에서 근무하다 보니 그 "조직의 언어"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손에서 나오는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임원들의 질문에 잘 대답해줄 수 있는 능력은 필요하지만 글 쓰는 능력을 더 중요시한다고 생각한다 (개인 생각). 예를 들어 회사는 진급을 할 때 이 사람이 해당 레벨 (포지션)의 글 쓰는 능력을 갖췄는지도 본다.


많은 사람들이 일로 묶여있는 기업에서 그 조직의 언어를 잘 이해하는 사람은 가장 눈에 뜨인다. 그러므로 본인에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어떻게 개선해 나갈지 고민해볼 것도 중요하다 (특히 신입사원 시절에 이를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말 주변이 없다고 생각이 된다면 스크립트를 써서 논리적인 설명과 예상 질문들을 준비해야 한다. 반대로 글을 써야 하는 경우라면 좋은 글을 찾아 읽고 많이 적어보자. 조직의 언어가 본인이 잘하는 표현 방식과 잘 맞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항상 그럴 수 없다. 

 


삼성에서는 파워포인트, 이메일, 그리고 발표를 통해 많은 내용들을 상사들에게 공유했다. 우선 파워포인트 같은 경우 하루에 5개 이상 만들었다. 덕분에 MBA 시절 컨설팅 출신 친구들보다 더 빨리 만든다는 칭찬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대학 시절 배웠던 것과 회사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런던대학교나 케임브리지 같은 경우에는 이미지나 차트를 몇 개만 띄어놓고 관객을 보며 설명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화면에 글이 잔뜩 있다면 관객들은 글 읽기에 정신없을 테니 꼭 글은 최소화하라고 했다. 그러나 삼성의 파워포인트에는 생각보다 글과 이미지를 포함한 데이터가 많았다. 알고 보니 제품 개발에 대한 설명하기 위해서 차트 하나는 부족했다. 수많은 테스트를 통한 다양한 데이터들이 있는데 이를 전체적으로 잘 보여주는 게 좋은 파워포인트였다. 이를 통해서 조직의 언어가 같더라도 (파워포인트를 사용한다는 점) 조금 더 세부적으로 본다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수도 있다고 배웠다. 그 외 당시의 필자는 한국어로 발표하는 게 조금 어색했기 때문에 시간이 날 때 연습을 했다. 리허설을 하기보다 혼자 있을 때 발표 내용을 생각해보고 혼잣말을 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반대로 아마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얼마나 어려운 문제를 쉽게 적어 내는 것이다. 평소 글을 많이 썼던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을 수 있겠지만 공대생 입장으로 참으로 어렵다. 특히 단순히 글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아마존 방식"으로 글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신기한 것은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를 포함한 C-level 임원들의 글을 읽다가도 이들의 글에 아마존 방식이 잘 묻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이 글은 누구를 위한 글"인지 정할 필요가 있다. 독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 그리고 디테일을 얼마나 공유할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글의 목적을 정해놓고 작성하자. 임원들에게 분기 보고용인지 아니면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제품을 설명하는 글인지 정해놔야 정말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예전에는 어려운 단어를 쓰는 글들이 좋은 글인지 알았다.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어려운 문제를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그런 실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계속 공부해야 할 것이고, 많이 읽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는 것에 있어서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성실해야 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상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해 실천해야 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이보다 먼저 우리가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본인이 소속된 조직의 언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평소 조직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글"인지 아니면 "말"인지, 또한 글과 말속에도 이 조직이 갖고 있는 독특한 특징이 있지는 파악하자. 그런 다음 조직 내 롤모델을 찾고 조금씩 배워나간다면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본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럽은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는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