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스러운 자는 고용하지 말고, 고용된 자를 의심하지 말라.
One should not employ those one suspects, nor suspect those one employs. – 프랑스 속담
의심스러운 자는 고용하지 말고, 고용된 자를 의심하지 말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서 인재 전쟁(The war for talent)이 한층 거세졌다. 이러한 인재들은 어떤 동기로 움직일까? 아니, 누구나 탐내는 재능을 가진 최고의 인재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가?
필자의 부서에 특이한 직원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부산의 어느 지방대를 나와 한 중견그룹에서 10여 년을 일했다. 처음에는 이 친구의 역량에 대해서 긴가민가 했다. 사실, 내게 주어진 정보라는 것이 기껏해야 학력, 회사 내 경력, 기본적인 신상정보 밖에 없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일을 맡겨보니 다른 직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대개는 주어진 일에 대해서 납기와 품질만 염두에 두며 일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직원은 마감 시한이 임박할 때까지 일을 착수하지 않았다. 간혹 그의 책상에 가면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일이 어찌 진행되고 있는지 말해달라고 하면 머뭇거리며 그림 한 장을 들고 오는 것이었다.
"이게 뭔가?"
"그림입니다."
"알고 있네... 무슨 의미인가?"
"이 일을 수행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다른 부서의 이해관계자와 충돌 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시기를 조율하면서 들어가는 게 좋겠습니다"
"흠..."
"그리고 제가 그저께 이쪽 에이전시를 직접 만나봤는데, 이렇게 하면 예산의 80%를 절감할 수도 있더라고요"
"오~~"
다른 직원들은 그저 시키는 일을 잘 해내는데 신경을 쓰고 일을 하는데 반해서, 이 친구는 일 자체가 갖는 의미와 전체적인 조망 속에서 다른 Task와 연관성, 일의 당위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보고서 쓰는 시간은 전체 납기 중 10% 정도이고, 나머지 90%는 생각하는데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하여 회사가 어려워져 어쩔 수 없이 이 직원도 이직을 하고 싶어 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갖다 냈지만, 늘 그놈의 학력(요즘 MZ 말로 지잡대?) 때문에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나도 안타까워 평소 알고 지내던 타 기업의 부서장들에게 이력서를 공유해주었는데,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자기들은 한 번 면접을 보고 싶긴 하지만 1차 면접을 통과해도 2차 면접인 경영진들이 떨어뜨릴 것이라 했다.
평소 그의 능력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이러한 '한국적 인재전쟁' 상황이 너무 안타까웠다. 30여 년간 기업에서 HR을 하는 동안 많은 인재들을 채용, 교육시키고 적재적소로 운영해왔는데(이로 인하여 나는 사람들의 탤런트에 대한 패턴적 감각 즉, 오랜 경험으로 인한 직관력이 생겼다), 사실 학력과 역량 간 관계가 세인들의 생각만큼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One should not employ those one suspects, nor suspect those one employs (의심스러운 자는 고용하지 말고, 고용된 자를 의심하지 말라)"는 프랑스 속담을 있는 그대로 심플하게 받지 말고 한국적 HR 상황에서 좀 더 비틀고 확장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보다 열린 마음으로 "면밀한 관찰"을 통해서 고용하고, 고용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리해나가도록 해야 한다... 는 의미로 말이다.
최근에는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SKY 중심의 대기업 입사 문턱은 높기만 하다. 이렇게 학력을 근거로 고용의 벽이 높아지게 되면 소위 피에르 부르디외가 이야기한 학력 자본을 초기에 획득하지 못한 역량 있는 인재들은 또다시 계층 사회의 소외자로 남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적 자원의 낭비 요소가 된다.
진정한 의미에서 'The war for talent'는 '일의 본질을 생각하는 인재들을 확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