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엉뚱이 Jan 26. 2022

나 배운 사람이야~ <라떼 교수 리더>

존경받는 리더의 흔한 실수 <3화>

  J 상무의 부친은 비록 초등학교만 졸업하였지만 타고난 성실함과 사교성을 바탕으로 토종 중견 기업인 현재의 회사를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반면, J 상무는 외국에서 고교, 대학교를 나와 소위 글로벌 시야를 갖춘 국제 맨이다. 


 그는 대단한 학구파로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친 것도 모자라, 최근에는 각종 세미나, 외부 교육을 다니며 열공 중이다. 그는 이처럼 늘 학습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었지만, 학습한 내용에 대해 주위에 지나치게 공유하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최근 J 상무는 고민에 빠졌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S급 인재를 채용하려는데 연봉이 지나치게 높다는 이유로 부친이 반대를 하였기 때문이었다. 부친의 논리는 회사 형편에 맞는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J 상무는 일정 부분 동의를 하였으나, 최근 HR 관련 세미나를 다녀온 뒤로 다음과 같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탁월한 성과를 내려면 탁월한 인재를 데려와야 하고, 그만큼의 처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하지만, J 상무의 부친은 기존의 입장을 초지일관 굽히지 않았다. 실망한 J 상무는 자신의 팀원들과 주간 회의를 하는 도중, “지난번 HR 세미나에서 배웠는데…”라며 자신의 학습 내용을 하나씩 소환해가면서 최근 글로벌 인재 채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펼치기 시작하였다. 


 4시간 만에 회의를 마친 팀원들은 지겨워하며, 조롱 어린 한숨을 내쉬었다. 왜냐하면 J 상무의 과잉 공유 버릇이 또 나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팀원들 사이에서는 J 상무의 의견보다 부친인 CEO의 생각에 동조하는 의견이 다수였기 때문에 더욱 불편한 자리가 되었다. 




 학습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일은 리더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그 생각을 적절한 타이밍에 응용을 해야지, J 상무처럼 학습 후에 바로 팀원들에게 강제 공유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팀원들 중에는 이미 그 내용에 대하여 더 잘 아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팀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상사가 새로운 것을 깨우쳐서 신나게 공유하는 것을 말릴 수는 없고 예의상 앉아 듣자니 지겹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리더는 회의를 주재하면서 다수의 의견을 조율하여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포지션이다. 이때 리더는 문제나 이슈의 핵심, 즉 본질을 봐야 하는데 여기서 종종 심리적 방해꾼 하나가 나타나 훼방을 놓곤 한다. 방해꾼은 다름 아닌 최근에 인상 깊었던 정보들이나 학습된 지식들이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배움과 학습은 무조건 좋은 것 아닌가? 그런데 잘 생각해보자. 숙성된 장아찌나 잘 익은 김치가 맛도 좋고 몸에도 이로운 이유는 적절한 발효 타이밍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적시에 정확하게 응용되는 정보, 지식들은 매우 유용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섣부른 지식의 응용은 설익은 겉절이로 배앓이를 하듯이 예기치 못한 리스크와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떤 딜레마 상황에 빠지거나 이슈를 해결하는 상황에서 이렇게 최근의 지식이나 정보의 영향을 받는 것을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보유한 지식, 정보에 대해 균일하게 평가를 하기보다는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잘 떠오르는 것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내린다. 이러한 현상은 반복적으로 노출된 정보나 지식에 대하여 다른 것보다 친숙하게 느끼게 되고, 이러한 느낌에 대해 두뇌는 그 정보나 지식 자체에 장점이 많은 것이라고 잘못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Tversky & Kahneman, 1973)은 이러한 현상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1분 동안 4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보여주고 아래의 질문을 했다.


1번 질문 소설에서 7개의 철자로 된 단어 중에 –ing로 끝나는 단어는 몇 개인가?

2번 질문 : 소설에서 7개의 철자로 된 단어 중에 여섯 번째 철자가 n인 단어는 몇 개인가?


 실험 결과 피실험자들은 1번 질문에 평균적으로 13.4개라고 답하였고, 2번 질문에는 4.7개라고 응답하였다. 그런데 사실 참가자들의 이러한 답변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 철자가 7개인 단어 중 ing로 끝나는 단어는 여섯 번째 문자가 반드시 n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판단한다면 1번 질문의 답은 2번 질문의 답 안에 포함되기 때문에, 1번 질문의 답은 2번 질문의 답과 같거나 더 적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ing로 끝나는 단어는 떠올리기가 쉽고, 여섯 번째가 n인 단어는 잘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전자가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기억에 잘 떠오르는, 즉 가용성이 높은 정보를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종종 판단의 오류를 범한다. 


상황문으로 돌아가 보자. J 상무는 깊이 있고 농밀한 사고를 추구하기보다는, 최근 학습한 내용을 바탕으로(가용성 휴리스틱) 자신의 의견을 고집함으로써 위아랫 사람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좀 더 신중한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다.  




 비즈니스는 학교가 아니다. 학교는 다양한 의사결정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고, 틀려도 다시 성찰하고 학습을 하면 되지만, 비즈니스는 잘못된 의사결정 하나에 조직 전체의 파멸을 초래할 수도 있다. 


 리더는 자신의 가용성 휴리스틱 같은 직관적 판단에 늘 부하직원들에게 의문을 제시해달라고 이야기해야 하고, 직원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정보에 근거하여 리더의 판단을 보완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판단 형태가 고도로 발달하면 ‘집단 결정형’ 의사결정 판단 시스템이 될 수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G. Yukl 등), 요구되는 의사결정의 질(Quality)이 높은 것일수록, 리더가 충분한 정보를 보유할수록, 또한 의사결정에 대한 부하들의 수용이 필요할수록 이러한 집단 결정형 의사결정 시스템이 조직에 유용하다고 한다. 



[그림 1. 규범적 의사결정 모형 (by G. Yukl)]



이러한 집단 결정형 의사결정 시스템이 되려면, 수많은 책에서 강조하듯이 리더의 열린 마음과 경청 자세, 그리고 부하직원들의 주도적 의견 개진(Assertive talking)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독단적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되기 때문에 중요한 의사결정에 큰 리스크가 나타날 수 있다.


조직 내 라떼교수 리더들이여,  그대들의 학구열은 칭찬받을만하다.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함부로 내뱉지 말라. 그대들의 지식은 우주의 먼지 한 톨과 같은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숙고하여 익혀라. 그리고 그것이 부하직원들의 것과 함께 섞일 때 의미 있는 결정태가 완성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2화. 이 길이 맞다니까 <우기기 리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