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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3의 공간

제3의 공간 3 - 통영숙소

기억이 무대가 되고 당신이 장면이 되는 곳

by 제상아

바다 내음이 남아 있는 정지된 시간,

조용한 골목길 따라 걷다 문득 마주한 집 한 채,

통영시 도천2길 8, 그 자리에서 ‘제3의 공간’은 숨을 쉬어.


낡은 나무결, 골목길 사이 조심스레 문을 열면,

책들이 숨결을 내쉬고, 커피잔 위로 바다가 흐르며,

희곡의 문장들이 벽을 타고 조용히 내려앉아

당신의 시선과 마음을 감싸 안아.


창가에는 누군가 남긴 손편지같은 엽서가 놓이고,

낮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대사는

오래된 통영의 풍경을 불러내어

그 풍경은 다시 누군가의 마음을 데려와.


희곡은 책장 속에만 머무르지 않아

바리스타의 섬세한 손끝,

책을 고르다 머뭇거리는 손가락 끝,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나누는 짧은 침묵 속에도

작은 장면들은 끊임없이 쓰이고 연기되고 있어.


여기서는 누군가의 하루가 대사로 남고,

어제의 기억이 오늘의 무대로 올라서며,

1층은 희곡의 시작점,

2층은 객석 없는 무대, 대본 없는 연극.


관객이 없어도 무대는 존재하고,

당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어.


낮에는 대사를 읽고,

밤에는 이야기를 걷는 이곳.

도시는 천천히 무대가 되고,

길 위의 그림자조차 조명이 되.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

다만 그 이야기를 꺼낼 공간이 없을 뿐,

그래서 우리는 이곳 제3의 공간!


삶과 예술 사이,

잊힌 것과 여전히 살아 있는 것 사이,

그 조용한 틈에

우리는 통영의 시간을 희곡으로 옮겨

임진왜란의 바람 속에 남겨진 편지를 단막극으로,

어부와 장인들의 땀과 꿈이 깃든 하루를 대사로,

그리고 바닷가에서 영원을 약속했으나 이별했던 사람들의 사연을 한 장면으로 펼쳐!

희곡을 연기하지 않고, 살아내!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천천히 읊조려!

당신이 이 공간에 머무르는 그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무대가 되게.


사람들은 기억이 사라진다 말하지만,

그건 다른 장면으로 옮겨간 것뿐.

당신의 발걸음이 그 장면 위에 닿을 때,

이야기는 다시 시작될거야.


여기, 오래된 사랑의 대사가

오늘을 사는 당신 숨결과 어우러져

서서히 되살아나는 곳.


지금, 바다를 건너온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그 진동 위에 걸린 한 줄기 목소리가

당신을 향해 조용히 말을 걸거야.


“여기,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골목길 안의 가로등 조명아래 통영시 도천2길 8, 제3의 공간‘에서 당신은 한 편의 연극이 되고 당신을 위한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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