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앞으로 여행책을 읽으며 상념을 불어넣어주었던 문장을 통해 글쓰기 연습을 할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캐나다 횡단 열차를 탄 여행기이다. 안타깝게도 인터넷에서 그 책을 찾을 수 없다.
읽으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여행의 어느 날의 기억을 부르는 문구를 발견했다.
젊은이들과 어울려 식사를 해 보니 이곳 생활에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여행작가가 나이가 있으신 분이다 보니 작가가 이 문장을 작성할 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성인들이 모여있는 사회에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에는 또래의 친구를 만난다. 이런 반복된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나와 다른 나이대(젊은 사람들)의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일상생활에서 마주치지 못하는 것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여행이고 이러한 신선함은 곧 여행이 주는 활력이 되어 생활을 계속 이어가게 해주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젊었었다.
하지만 그 나이대에 맞는 책임감을 다하다 보니 젊음을 잃어버리고 가끔 티브이에서 재조명되는 우리가 젊었었던 그때 그 시절을 다룰 때만 '아 그랬었지' 하고 추억한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은 미스터 선샤인과 응답하라 1988이다. 내가 30대이기 때문에 엄마는 당연히 미스터 선샤인의 세대를 체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엄마가 가장 젊었던 그 시절, 1988년은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그 시절이었을 것이다. 드라마를 같이 보며 티브이 속 세트장의 소품 하나하나를 발견하며 웃고, 회상하던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1988년 즈음해서 아빠를 만나 연애를 하고 그리고 엄마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의 이름을 잃어버린 1990년대는 엄마는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는 육아에 바빠 시간 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흘려보낸 것이고 이제 뒤돌아보니 엄마라고 불린 시절보다 엄마 본인 이름 석자로 불린 시절이 더 생각이 나는 것이다.
엄마는 충실하게 그 시대가 엄마에게 요구했던 의무를 수행했다. 적당한 나이에 혼인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기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니 어느덧 자식은 성장해서 더 이상 엄마가 이룬 울타리에 남아있지 않으니 부쩍 공허해하시는 요즘이다.
나는 유난히 나이가 주는 의무감이 강하다. 20대에는 무엇을 해야 했고, 30대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지. 그리고 40대, 50대는 이때 이뤄놓은 것들로 삶을 꾸려야 하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하며 노후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나는 의무감만 강하지 내 나이대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았다. 20대 중반 처음 사회를 맛보고 잠시 후퇴해 28살에 시베리아 대륙을 건너 핀란드에서 고요한 행복을 본 후 캐나다로 도피, 그 후 돌아와 1년 반 정도 다시 회사생활을 하며 일상을 영위 중이다. 친구들이 청첩장 돌리던 때, 나는 캐나다에 있었고 이제는 그 친구들이 아이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결혼을 안 했다. 아니 못했다.
캐나다에서 배운건 내가 그 들보다 늦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런 삶도 있고 나 같은 삶도 있는 것이다. 9시부터 6시까지 충실하게 내 일 하고 이후에는 취미인 글쓰기를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누워서 드라마를 보거나 그렇게 5일의 일상을 보내고 2일의 휴식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10월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40살도 되어있을 것이다.
뉴욕을 두 번 다녀왔었다. 처음 방문 시에도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었다. 처음 뉴욕은 첫 사회의 맛을 잠깐 본 이십 대 중반에 다녀왔고 두 번 째는 서른 살이 되기 바로 직전이었다. 겨우 4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방문했을 뿐이었는데 두 번째 뉴욕 여행에서는 이전과 달라진 나를 발견하였다. 몸소 깨달은 건 체력의 한계점이 낮아진 것이다. 물론 처음 여행에서도 아침 8시에 나가 밤 12시에 돌아오면 다음 날 아침에 조금 피곤함을 느낀다던지, 그렇게 3일 정도 달리면 하루 정도는 아침 10시까지 늦잠을 자서 체력을 보충한다던지 하는 한계점은 있었다.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지하 1층 계단에 잠시 앉아 졸기도 했다. 그 이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텍스타일 전시관만 두 번을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두 번째 뉴욕은 그 어느 일정을 하든 8시에 일어나기는커녕 9시에 눈을 뜨는 것이 기적이었고 심지어 중간에 힘들어서 카페를 들어가던지 공원에 앉아있던지 반드시 쉬어주어야 저녁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이제야 사람들이 말하는 '나이를 먹었다' 중 하나, 체력 저하를 배웠다.
그리고 느낀 것은 젊었을 때 최대한 많이 도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첫 번째 뉴욕에서 못했던 것들처럼 실수를 다시 복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29살의 두 번째 뉴욕이 처음이었다면 나는 첫 번째 뉴욕처럼 여기를 못 갔네 하며 다음 뉴욕 여행 계획을 세우며 40살 이전에 가보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대에 내가 지금과 같은 여행이 가능할지 싶다. 체력 문제도 있지만 40살 이전에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휴가를 낼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가로막는다.
하지만 나는 아마 가을의 뉴욕을 어떨까 하면서 또 계획을 세울지 모른다. 40살이 된 내가 지금의 나를 볼 때는 또 얼마나 젊어서 기회의 창이 많아 보일 것이다. 그리고 젊음은 상대적이니까 0세부터 99세까지는 젊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