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 stand-ups
수직 스크래처 위로 뛰어오른 김호시는 책장 위에 펼쳐진 세계가 궁금했나 보다. 까치발로 딛고 서서 책장 위를 쳐다보지만 이내 실패하고 집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 모습을 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던 집사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지? 새우튀김 같은 저 모습은...?'
위 사진의 제목 <이것은 새우튀김이 아니다>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모티브로 한다. 김호시의 두 발 서기를 상징하는 사진으로 집사가 참 좋아하는 장면이다. 호시의 익살스러운 캐릭터가 잘 드러난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당시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내 마음이 생생히 떠오른다.
어디에서 봤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데, 집사가 외출하면 무료하게 식빵을 굽고 있던 야옹이가 두 발로 서서 이족보행으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웹툰을 본 적이 있다. 김호시와 고탐탐이도 한창 두 발로 일어서거나 걸어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그러한 장면들이 담긴 (연작) Cat stand-ups'를 소개해 볼까 한다.
야옹이들에 관한 글을 쓰며 늘 변주하고 강조하는 부분인데, 내가 야옹이들 사진을 꾸준하게 찍는 건 기록을 통해 기억을 되짚어 보고 '함께하는 삶'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과정이다.
이 무렵은 야옹이들이 묘생에서 가장 왕성한 생체 에너지를 뽐내던 시절이었다. 성체로 접어드는 몸과 왕성한 호기심, 그리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에너지는 '기묘한 수직 자세'를 담은 많은 장면을 남겼다. 물론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두 발로 서 있는 야옹이들을 만날 수 있지만, 이때만큼 강렬한 인상을 받지는 못한다.
경기도 오산에서 대구로 전입신고를 한 첫째 주의 모습이다. 애송이 야옹이 둘은 이불 위에 올라가 창틀을 짚고 창밖 구경을 했다. 섰다기보다는 기댄 것이 맞는 표현이겠다.
벽을 짚고 곧잘 일어서던 김호시는 10+8주 차에 마침내 자신의 뒷다리 힘으로만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호시 특유의 털바지-태가 잘 드러난 장면인지라 야옹이들의 인상 깊은 장면을 고를 때 늘 손에 꼽히는 사진이다. 시작의 순간은 늘 짜릿하다.
탐이는 두 발로 일어서는 호시가 부러웠다. 확실하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 신중한 성격의 탐이는 두 발로 일어서는 일마저 신중했다.
창문에 설치한 해먹과 스크래처를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김호시였다. 호시는 해먹 위에 두 발로 서서 익숙하게 발톱을 갈았고, 탐탐이는 그 장면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호시의 뒷다리 힘은 해먹-스크래처와 함께 점점 강해졌다.
김호시는 마음이 허전한 날이면 발톱을 갈았다. 스크래처에 발톱을 갈면 잡념은 사라지고 오직 뾰족한 발톱만이 남아 허전한 마음을 위로했다. 그러나 이날은 아무리 발톱을 갈아도 도무지 마음이 허전하기만 했는데...
그것은 집사가 빡빡 밀어버린 등 때문이었다. (호무룩...)
수직 스크래처도 일어서서 사용하면서 호시의 하체는 점점 단련됐고, 아름다운 뒤태를 갖게 되었다.
호시: "음... 오늘 발 핏(Fit)이 마음에 든다옹!"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너그럽고 솔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내게 왔다가 돌아서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었음을 얼마나 여러 번 깨달았던가. 돌아선 그의 등이 그의 인색함, 이중성, 비열함을 역력히 말해주고 있었으니! (...중략...) 뒤쪽이 진실이다!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이 정도라면 믿음직한 '뒷모습'이지 않은가?
꾸준한 단련으로 뒷다리 힘을 키운 김호시는 실생활에도 두 발 서기를 이용했다. 프로필 사진을 컨펌할 때도 모니터 앞에 두 발로 섰고, 다양한 각도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멋진 야옹이로 성장했다.
애송이 시절 개킨 이불을 밟고서야 겨우 창밖을 보던 김호시는 어느새 건장한 성묘로 성장했다. 침대 위에 일어선 채 창밖을 볼 수 있는 야옹이가 된 것이다. 특히 이 장면은 시베리아 호랑이 미니어처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까닭에 집사가 무척 좋아하는 사진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캣-바운티 헌터 협회에 소속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호시(오늘도 호시탐탐 #4)는 현상금 수배서를 살펴볼 때도 두 발로 서는 것을 선호한다. 앞발은 누구를 잡으러 갈지 고를 때 사용하기 때문이다.
두 발로 일어선 김호시의 옆모습은 유려한 유선형을 자랑한다. 폭신한 털바지를 입은 듯 보이는 귀여운 모습은 김호시의 입덕 포인트다.
흐트러진 걸 참지 못하는 김호시는 '정리왕'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흐트러진 소품들을 가지런히 정리할 때도 두 발로 서고
김호시는 열린 마음을 가진 야옹이다. 활짝 열린 마음을 감추지 못해서 닫혀 있는 건 모조리 다 열어볼 때도 두 발 서기는 늘 든든하다.
김호시에 비해 비교적 늦게 두 발로 선 고탐탐이는 등을 빡빡 밀어도 호시와는 달리 위화감이 전혀 없다. 마치 퍼(Fur)를 입은 뮤지컬 캣츠의 주인공 같은 자태를 자랑한다.
장모종인 탐탐이는 호시와는 사뭇 다른 자태를 보여준다. 호시가 당당한 느낌이라면 탐탐이는 조금 더 조심스러운 느낌이랄까? 늘 부엌에서 뽀시락 거리는 소리가 나면 문 앞에서 두 발로 서서 오매불망 간식을 기다린다.
틈만 나면 문을 열고 나가는 탐이는 집사의 불호령에도 세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기도 한다.
가끔 탐이는 꼿꼿하게 서서 높은 곳을 쳐다본다. 정말 꼼짝하지 않고 꽤 긴 시간 동안 서 있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처음 왔을 때 집사의 손바닥보다 조금 컸던 고탐탐이는 이제 공기 청정기와 맞짱을 떠도 될 만큼 자랐다. 장모종인 까닭에 뒷모습이 호시와는 사뭇 다르지만, 특유의 매력이 있다.
(연작) Cat stand-ups는 표면적으로 두 발로 서 있는 야옹이가 담긴 사진들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집사에게는 사진 한 장, 한 장에서 에너지가 가득 느껴지는 장면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