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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Aug 25. 2022

아이들의 행동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림책 육아상담 <짧은 귀 토끼>

내 아이는 부모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논리를 숨기고 싶을 때가 있어요. 부모한테 조차 말하고 싶지 않은 자기만의 고민. 어떤 고민일까요?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요?


오늘은 잠잘 때나 어린이집에서도 종일 양말을 벗으려고 하지 않는 아이를 만나 <짧은 귀 토끼>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5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애 양말 좀 벗게 해주세요.

상담을 요청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상담을 요청할 대, 상담하는 이유를 꺼내기보다는 치료 결과를 얻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다. 예를 들면, 왜 아이가 양말을 벗지 않으려 하는지 설명하기 전에, 상담을 의뢰함과 동시에 상담과정을 생략한 채 첫날부터 어떤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은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울고 떼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분명히 양말을 벗지 않으려는 어떤 이유가 있을 텐데 어른들은 특히 자녀를 둔 부모들은 성급하다.   

  

어른들이 몰라서 그렇지 아이는 어른보다 감정적으로 더 섬세하다. 상담할 때 조심스럽게 다가가고 다뤄야 할 것들이 많다. 아이들은 ‘나랑 코드가 맞겠군.’이라는 생각이 들기 전까지 아무리 꼬셔도 말 한마디 않는다. 그런가 하면 한 시간 내내 주변을 돌아다니며 혼잣말하는 아이들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가볍게 상담을 시작하는 편이다. 가볍게 상담을 시작한다는 말은 내담자(만나는 대상)과 편하게 주고받는 편이라는 말과 같다. 아이들처럼 까불면서, 아이 말투로 말을 건네면 아이들도 부담 없이 다가와 준다. 억지로 꿰어맞추듯 상담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러, 어설프게 다가가려는 표가 나지 않아야 한다. 친한 이웃집 언니나 누나처럼 접근하면서 심드렁하게,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아이들은 좋아한다. 아이 말에 공감하면 끄덕여 주고, 눈 마주쳐주고 적당히 호응해주면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자가 멋지고 잘생기고 예쁘지 않아도 된다. 말이 번지르해서도 안 된다. 진심이 통하고 그저 아이들과 편하게 이야기하면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소재를 끄집어낼 수 있는 능력만 있더라도 반은 성공이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치료단계를 인내심 있게 지켜보면서 상담해야 한다. 꼭 전문가가 아니어도 좋다. 평범한 부모들도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접근을 편하게 시도하면 된다.       

양말을 벗지 않는다는 남자아이는 어린이집에 2년째 다니고 있는 여섯 살 정진이었다. 정진이는 눈이 조금 큰 편이었고 연예인 김민호를 닮을 만큼 잘생겼다. 정진이는 아침에 양말을 신으면 잠자리에 들어도 벗지 않으려고 운다고 했다. 엄마는 할 수 없이 정진이가 완전히 잠에 떨어진 뒤 양말을 벗겼다. 양말 바닥이 시꺼멓게 되어도, 더워서 땀에 쩔어도 정진이는 좀체 양말을 벗지 않으려 했다. 엄마는 그런 정진이가 안타깝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한다면 하소연했다.     


정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네 살 무렵부터 이 버릇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정진이는 종일반에 다니고 있었는데, 종일반의 경우 점심을 먹고 바로 낮잠을 재운다. 여름이라 더울 것 같아 양말을 신기지 않고 어린이집에 보냈다.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정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버티며 울었다. 친구도 싫고 어린이집도 싫다며 아예 안 다니겠다고 울며 버티는데 화가 났다. 정진이 엄마는 몸도 아픈데다가 아이 둘을 볼 생각에 머리가 지끈 거렸다고. 정진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우는 걸 보니 무거운 짐 하나 던져 안겨준 것 같아서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는 정진 어머니.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한참을 울고 난리치던 정진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갑자기 서랍장에서 양말을 몽땅 꺼냈다. 그리고는 모두 신겨달라고 또 울기 시작했다. 여름이라 더우니까 그냥 가라고 해도 신겨달라고 울었다. 꺼내놓은 양말을 모두 신겨주기 전에는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버텼다. 몇 개를 겹쳐 신으면 스스로 더워서라도 벗겠다 싶어 세 켤레를 신겨서 어린이집에 보냈다. 그런데 발바닥을 손가락으로 긁고 온뭄에 땀을 흘리면서도 양말은 절대 벗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이 벗으라고 해도 벗지 않았고 친구들이 놀려도 벗지 않았다.


그렇게 몇 겹의 양말을 신고 며칠을 보내던 정진이. 결국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서 더 이상 양말을 신을 수가 없게 되었다. 엄마는 그제야 왜 정진이가 양말을 벗지 않으려는지 알았다. 정진이 왼쪽 발가락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조금 다른 모양이었다. 엄지와 두 번째 발가락이 비슷하거나 보통은 엄지 발가락이 가장 길고 점점 짧아진다. 검지 발가락이 엄지 발가락 보다 조금 더 긴 사람도 있다. 그런데 정진이는 검지 발가락이 가운데 발가락 보다 짧은데다 바닥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발가락이 서로 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린이집에서 정진이의 가운데 발가락을 본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신기하게 쳐다보고 만져보면서 자기네들 발가락과 비교해보며 못생겼다고 놀렸단다. 그다음부터 정진이는 양말 벗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발바닥을 박수치듯 맞대고 앉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발 근처에 손만 갖다 대기마나 해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하지만 부모는 정진이한테 발가락은 양말 신으면 괜찮다며 달래주었는데 그게 오히려 감추는 게 만능처럼 되었다.   

 

양말이 미끄러워 슬리퍼 앞머리에 발이 쑥 나오는데도 절대 벗지 않았다. 장마철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장화를 신고 다녔다. 샌들에 양말을 신으면 비가 다 스며서 양말이 축축해지는 데다가 젖은 양말을 벗으면 못생긴 발가락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도 정진이가 양말을 벗지 않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진이가 워낙 발가락 보이는 것을 싫어해서 도리가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괜찮지않느냐, 누가 너 발가락만 보느냐, 누가 뭐라고 놀리면 엄마가 혼내줄테니까 데리고 와라, 발가락 하나쯤 못생기면 어떠냐는 둥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이런 경우 아이에게 혼을 내도 안 되고 윽박질러도 안 된다. 정진이 엄마는 어린이집은 그렇다 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럴 걸 생각하면 혹시나 더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놀림 받는 아이가 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쳐 달라고 내게 상담을 의뢰했다.     


정진이를 만나기로 한 첫날에 난 미리 와서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지금 무척 WOlt는 책을 읽는 중이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정진아, 잠깐만. 선생님이 읽던 책인데 한 줄만 더 읽고.”

일부러 책을 활짝 펼쳐놓아 자연스럽게 정진이 눈에 띄게 했다. 

“그나마 난 낫지, 동동이는 귀고 난 발가락이니까. 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동동이가 누구예요?”

“참, 정진아, 선생님 처음 만나는 거지? 반가워. 동동이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친구.”

“강아지 이름 같은데.....?”

“강아지 이름 같았어? 비슷할 수도 있겠다. 토끼 이름이야.”


하지만 정진이가 워낙 발가락 보이는 것을 싫어해서 도리가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괜찮지않느냐, 누가 너 발가락만 보느냐, 누가 뭐라고 놀리면 엄마가 혼내줄테니까 데리고 와라, 발가락 하나쯤 못생기면 어떠냐는 둥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없었다. 이런 경우 아이에게 혼을 내도 안 되고 윽박질러도 안 된다. 정진이 엄마는 어린이집은 그렇다 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그럴 걸 생각하면 혹시나 더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 놀림 받는 아이가 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고쳐 달라고 내게 상담을 의뢰했다.     

정진이를 만나기로 한 첫날에 난 미리 와서 그림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지금 무척 WOlt는 책을 읽는 중이니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정진아, 잠깐만. 선생님이 읽던 책인데 한 줄만 더 읽고.”

일부러 책을 활짝 펼쳐놓아 자연스럽게 정진이 눈에 띄게 했다. 

“그나마 난 낫지, 동동이는 귀고 난 발가락이니까. 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동동이가 누구예요?”

“참, 정진아, 선생님 처음 만나는 거지? 반가워. 동동이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친구.”

“강아지 이름 같은데.....?”

“강아지 이름 같았어? 비슷할 수도 있겠다. 토끼 이름이야.”


사실 정진이를 상담 의뢰 받고 가슴이 철렁했었다. 왜냐하면 나 또한 발가락이 무척 못생겨서 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아직 약간은 신경을 쓴다. 난 오른쪽 발가락이 정진이와 비슷하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스타킹이라고 꼭 신는다. 여름 샌들 경우 앞트임이 최대한 것은 신발을 신는다. 정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더운 여름날에도 양말을 신어. 오늘같이 더운 날에도. 아! 답다 더워.”

“양말 신으면 더운데.”

“그치? 덥지? 그런데도 선생님은 양말을 신어. 봐봐. 오른쪽 발.”

“......”

“툭 튀어나온 거 보이니? 눌러도 잘 안 들어가네.”     

나는 튀어나온 발가락을 손가락으로 눌러 보였다. 발가락은 잠시 들어가는 듯하지만 금세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나는 그런 발가락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일부러 부채질하면서 덥다는 핑계로 양말을 벗었다. 정진이는 깜짝 놀라면서도 내 발가락을 못 본 척했다.     


“선생님이 구두를 신었는데 오래 서 있었더니 발가락이 숨을 쉬어 달라고 하네. 물집도 생길 것도 같고. 너무 아파서 안 되겠다 싶어서 약국에서 밴드를 하나 샀거든. 선생님 발가락이 조금 이상하게 생겨서 사람들 앞에서 발가락 보이는 게 싫었어. 창피하거든. 왼쪽 발가락에도 물집이 생겨서 밴드를 붙이려고 하는데 발가락들이 따닥따닥 붙어서 잘 안 붙는거 있지. 몇 개나 붙였다가 떼었다가 했는지 몰라. 그런데 오른쪽 발가락에 밴드를 붙일 때는 한 번에 붙었다! 신기하지?”

“선생님 발가락은 왜 그래요?”

“글세. 잘 모르겠네. 선생님 엄마가 그러시는데, 선생님이 아주 어릴 때 가난했었대. 너무 가난해서 신발을 사줄 돈이 없었대. 발은 점점 커지는데 신발이 작아서 발가락이 이렇게 됐다고 하셨어. 좀 이상하게 생겼지?”

“작은 신발 신어도 그렇게 돼요?”

“그런 건 잘 모르겠네. 정말 작은 신발을 신어서 그런 건지는. 선생님 엄마도 선생님 발가락이 이상하게 생겼다고 어릴 때 걱정 많이 하셨어.”

“선생님은 울었어요?”

“음....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 그런데 선생님이 어릴 적에는 창피해서 친구들 집에도 안 놀러갔어.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싫었거든. 특히 여름은 더더욱 싫었어.”

“선생님도 여름이 싫어요?”

”응. 더워서 싫기도 하고, 얼굴에 땀띠가 나서 싫고, 더운데 양말을 꼭 신어야 하는 게 특히 싫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좋아.”

“왜 지금은 좋아요?”

“왜냐구? 글쎄, 선생님이 지금보다 젊었을 때 이야기야. 지하철을 탔어. 지하철에 앉아서 한참을 가고 있다가 앞에 앉아 있는 삶들의 신발을 보았거든. 아저씨 신발은 구두를 신어서 발가락이 잘 아나 보이잖아. 아줌마나 누나, 언니들 신발을 보면 슬리퍼도 신고, 샌들도 신고 그러는데, 자세히 보니까 희한하게 생긴 발가락들도 있더라구.”

“어떤 발가락인데요?”

“선생님은 가운데 발가락이 짧고 이렇게 올라왔잖아? 어떤 누나는 아기 발가락이 거의 안 보이는 거야. 높은 구두를 신었는데 발가락이 아팠나 봐. 신발 위에 발을 올려놓더라구. 스타킹을 신어도 발가락은 보이거든. 그 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참 그렇게 발을 꺼내놓고 있다가 다시 신발을 신었어.”

“또 얘기해 주세요. 또요.”

“또? 글쎄. 그날은 사람들 발가락이 보였어. 다른 때는 잘 보지 않았거든. 사람들 발가락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지도 않았어.”


나는 정진이가 오면 일부러 잘 신고 있던 양말이나 발목 스타킹을 벗었다. 못생긴 발가락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기 위함이기도 했고, 발가락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없애기도 좋았다.     


정진이는 자기 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나누면서 색칠공부 하며 잠깐씩 놀아주었다. 그렇게 즐겁게 상담을 진행했다. 어느 날 함께 바닥에서 놀고 있는데 정진이가 나의 오른쪽 발가락을 눌러보았다. 난 모른 척했다. 정진이는 다시 한번 꾹 눌렀다.


“안 아파요?”

“아프지 않아. 눌러주니까 시원한데?”

“나도 아프진 않는데....”

정진이는 처음으로 자기 발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선생님하고 저하고는 짝꿍이죠?”

“짝꿍? 맏다. 상담하는 친구끼리는 짝꿍이지.”

“그 짝꿍 말고, 나랑 친하면 짝꿍이요. 짝꿍은 놀리지 않아요.”

“정진이와 선생님은 짝꿍! 짝꿍끼리는 손가락도 걸고 약속도 잘하지. 우리 더 친해지자고 서로 약속하자. 더 재미있게 놀고 이야기하기! 약속!”

우리는 새끼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서로 더 친해지기로 다짐하는 약속.    

 

“정진아. 정진이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 보고 있었던 그림책 기억나니?”

“강아지 나오는 거요?”

“호호호. 강아지 말고 토끼 나오는 거, 동동이가 주인공이 책.”

“알아요. 선생님 오늘은 그 책 읽어주세요. 선생님이 책 읽어주면 정말 재밌어요.”     




『짧은 귀 토끼』 다윈시 글, 탕탕 그림, 심윤섭 옮김. 고래이야기

다른 친구들은 귀가 쫑긋하고 길고 예쁜데 주인공 동동이는 귀가 통통하고 짧았다. 안 먹어서 귀가 짧은 거라는 생각이 들어 많이 먹고 잘 잤는데도 자라지 않고 여전히 짧다. 여자친구 미미는 괜찮다고 했다. 엄마도 아무렇지도 않다며 예뻐해 주고 자장가도 불러주지만 동동이는 괜히 심술이 나고 화가 났다. 집게로 귀를 집어서 빨랫줄에 매달려보기도 했다. 물주면 잘 자라는 채소를 보고는 땅속에 들어가 귀를 내놓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귀는 커지지 않았다. 동동이는 자기의 짧은 귀를 볼 때마다 화가 났다. 그래서 날씨가 더워도 모자를 썼고 화장실에 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종일 모자를 벗지 않았다. 어느 날 바람이 불어 모자가 날아가는 바람에 친구들한테 놀림을 당한 동동이. 집에 와서 엉엉 울고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귀를 만들어 붙이겠다고 맹세했다. 멋지고 반짝 반짝 윤이 나는 긴 “토끼 귀 빵”을 만들어 붙였다. 머리에 붙이고 나가자 친구들이 멋지다고 칭찬해주었다. 이때, 하늘에 있던 독수리가 탐스럽게 생긴 동동이의 긴 귀를 낚아챘다. 동동이가 살려달라고 발버둥 치자 토끼 귀 빵이 톡 부러졌고, 동동이는 버섯이 있는 땅으로 떨어졌다. 마치 귀여운 버섯처럼 보여서 동동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동동이는 “토끼 귀” 빵집을 열었다. 동동이의 가짜 토끼 귀 빵을 먹어 본 아기 독수리들은 엄마 독수리한테 더 사달라고 졸랐다. 동네 친구들도 동동이가 만든 빵과 과자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빵 가게로 몰려들었다.




“선생님, 저는 요리를 못해요.”

즐겁게 읽던 정진이가 갑자기 시무룩해졌다. 동동이의 마음을 알았고 귀여운 동동이가 마음에 든다고 하던 정진이었다. 그런 정진이가 갑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며 힘없이 말헀다. 나는 그런 정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했다. 그러던 정진이가 갑자기 축구공을 가지고 와서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달리기를 잘해요.”

그렇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답을 찾아주기 전에 스스로 답을 찾는 방법을 안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아는지 참 신기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요리를 못해서 동동이처럼 발가락에 붙일 빵을 못 만든다고 울먹이던 정진이가 금세 밝아졌다. 나는 내가 고민했던 부분을 정진이가 알아서 찾은 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했다.


“우와! 정진이는 요리못한다고 속상했는데, 그러고 보니까 달리기를 잘하는구나? 그런데 어떻게 그걸 바로 찾았어? 선생님도 못 찾아서 고민했는데?”

“치, 선생님은 내가 아니잖아요. 선생님은 달리기 잘해요? 난 진짜 잘하는데. 애들이 나랑 달리기 짝꿍하고 싶어해요.”

“선생님도 달리기 잘했는데 지금은 모르겠네. 정진이는 달리기 잘해서 좋겠다.”    

 

이제 정진이가 마음의 문을 연 듯하다. 그렇다고 섣불리 성큼 다가가면 안 된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추측이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정진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자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나는 정진이와 상담하는 동안 양말을 신기도 했다가 벗기도 하면서 양말을 신고 벗는 것을 자유롭게 반복했다. 덥다는 핑계도 대고 땀이 찼다는 핑계도 대는 등 어느 날은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신문지 뭉치를 눈 모양으로 만들어 던지는 게임이었다. 다양한 게임을 즐겁게 함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공처럼 말아서 우산꽂이에 넣는 게임을 했다.     


나는 그날 정진이의 발가락을 처음 보았다. 정진이는 즐겁게 게임에 몰입한 채 아무렇지도 않게 양말을 벗었다. 아마 정진이는 양말을 벗어서 기뻐했을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나는 매우 기뻤지만 그 기쁨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려 했다. 혹여 지나친 표현이 정진이에게 또 하나의 부정적 자극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정진이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 게임을 계속했다. 상담이 끝날 때 쯤, 정진이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선생님, 양말 벗으니까 안 미끄러지고 더 재밌어요. 담에 또 해요.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1주일에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 분들, 상담현장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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