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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책살롱 김은정 Aug 02. 2023

아래층에서 그만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

마음 껏 뛰어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란스럽다, 시끄럽다, 왜 그렇게 설치냐' 등의 부정적 피드백이 아닌 '즐겁게 지내는구나, 어릴 때 실컷 놀으렴, 이만할 땐 뛰어놀아야 튼튼해지는 거야'를 듣는다면 육아 스트레스 확~ 날아갈 듯 합니다.


오늘은 조금은 느린 특별한 아이 상담과 층간소음으로 힘들어하는 특별한 아이의 어머니와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로 그림책심리상담했던 사례입니다. (12년 전의 사례이고, 주인공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아래층에서 그만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     



요즘은 단독주택보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거주형태가 많다. 한 층에 한 세대만 사는 것이 아니다 보니 층간 소음으로 서로 껄끄럽게 지내는 이웃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나 어릴 적만 해도 동네방네 시끄럽게 돌아다녔고,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친구 집도 내 집 드나들 듯 신나게 놀았다. 동네 골목에서 해지는 줄도 모르고 뛰어놀다가 엄마가 “밥 먹어라.”라는 소리가 들리면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된 지 오래다. 예전에는 옆집에서 시끄럽게 굴어도 소음이라기보다는 ‘그런가 보다.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여서 시끄러운가 보네.’라며 이해했었는데, 지금은 이런 이해보다는 자신이 욕구가 먼저인 경우가 많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위아래에서 들리는 소음-피아노 소리, 아이들 뛰노는 소리, 콩콩 굴러가는 소리부터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 변기 물 내리는 소리 등-으로 여러 가지 고충을 겪고 있다고 한다. 물론 불편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내 상가, 편의시설과 병원과 학교와 유치원이 있으면 짧은 동선으로 여러 가지 일을 볼 수 있어 편하고 좋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으로 직행하면 저녁 시간, 늦으면 12시가 다 되어야 집에 돌아온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숙제하랴, 공부하랴 이래저래 바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에게는 조용하게 보내야 할 시간이 길고, 방해받지 않는 공간에서 하고 싶어 한다. 맞벌이 부부가 많다 보니 그들 역시 저녁 늦은 시간에 귀가해서 조금이라도 조용한 집에서 편히 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늦게 들어온 엄마 아빠와 놀 시간이 늦은 저녁시간 밖에 없어서 애타게 기다린 만큼 신나게 놀고 싶어진다. 부모님 또한 지친 몸이지만 미안한 마음을 지친 몸에 어 잠깐이라도 아이의 행동을 용인하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아파트 주민의 고충은 층간 소음이다. 이 소음 문제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집에서 다시 이사 갈 결심하고, 이웃 간 다툼이 격해지기도 한다. 위 아래층에서 들리는 소리에 누구라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조용해야 할 공간에서 일단 방해받는 느낌이 들면 화가 난다. 어렵게 청한 잠이 이제 막 간신히 잠이 들려고 할 때라든지, 입시가 코 앞이라 모든 신경을 책에 쏟고 있을 때, 늦은 시간에 갑자기 들리는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나 피아노 소리,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린다면 ‘한 번만 더 들리면 인터폰을 누르거나 항의 해야지.’ 하면서 때를 기다린다. 고민 끝에 어렵게 마음먹고 이웃집으로 가서 조용히 해달라고 말을 건넸다고 치자. 그러나 여전히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건 문제 상황이 된다. 관리실 경고에서 벗어나 경찰의 손을 빌려야 하거나 절차를 밟아야 할 때도 있다.     

 

지인의 소개로 아파트 3층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 현국이를 방문 상담했다. 현국이는 약한 발달지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행동에 자제가 잘되지 않았다. 기분이 나쁠 때는 방금 했던 말을 반복해서 내뱉었다. 자기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목소리가 커져서 마치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종종 발뒤꿈치로 바닥을 내리찧듯 행동했는데 이런 행동을 반복했다.    

  

현국이는 아직 한글을 잘 몰랐고 학교 숙제도 혼자 하지 못했다. 나는 현국이의 학습적인 부분을 도와주는 상담을 했다. 책을 읽어줄 때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나오면 현국이는 내게 물어보기 전에 발을 한 번 굴렀다. 그러다가 안 되면 두 발을 떼쓰듯 동시에 번갈아 가며 굴렀다. 현국에게는 학습도 중요했지만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전하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 필요했다.     


현국이가 처음부터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처음엔 버릇없는 아이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현국이 현국이가 손이 귀한 집안에 어렵게 얻은 자식이라 가족들이 너무 예뻐하며 키워서 신이 질투해서 이렇게 발달 장애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어쩌면 잘못된 유전인자가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병원을 돌며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지만 별다른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3.4kg의 정상체중으로, 그것도 자연분만으로 순풍 낳아서 건강하게 태어난 현국이었다. 더구나 여자아이 못지않게 애교도 많은데다 적당한 장난으로 가족 모임에서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세 살 무렵부터 열 감기에 자주 걸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40도가 넘는 고열로 아이가 경기를 일으켰다. 고열과 갑작스럽게 몸의 경련으로 급히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두 차례 정도 받았다. 그 뒤부터 현국이가 다른 아이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고, 숫자에 지나치게 집중하면서 달력만 보면 숫자를 오려달라고 했다. 만화영화를 볼 때는 불러도 모를 정도로 몇 시간씩 집중력이 대단했는데, 아무리 어깨를 건드리고 쳐도 모를 정도였다. 끼니도 거른 채 반나절 이상 같은 비디오만 볼 때도 있었다. 보다 못한 엄마가 비디오를 끄면 현국이는 발을 구르고 신경질을 내면서 물건을 물어뜯었다. 이렇게 부모를 난처하게 만든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릴 적에는 이렇게 집에서 비디오만 보더니 다섯 살 무렵부터는 밖에 나가 혼자 놀기를 즐겼다. 마구 뛰어다니면서 숫자가 적힌 거물이나 상가에 들어가 홀로 배회했다. 엘리베이터 전 층을 눌러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주변을 보지 않고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길을 잃어 미아 신고로 경찰서에 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2학기쯤에 병원에서 발달지체라는 진단을 내려다. 부모는 아이를 계속 일반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게 옳은지, 특수학교로 보내는 게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학교에서 큰 문제 일으키지 않고 잘 다니고 있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변화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다니고 있던 학교에 그대로 다니기로 했다. 이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한 부모님은 그 후 독서치료, 미술치료, 개인과외, 태권도 등 현국이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며 돌봤다.     


현국이는 무언가에 관심을 한 번 가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했고, 거기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았다. 한 시간 내내 『짧은 귀 토끼』(다원시 글, 탕탕 그림, 고래이야기) 같은 그림책을 내내 읽고도 모자라 더 읽어달라고 해서 거짓말 조금 보태면 50번은 족히 읽어주었을 정도였다. 현국이가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서 『수호의 하얀말』(오츠카 유우조 글, 아카바 수에키치 그림, 이영준 옮김, 한림출판사) 그림책을 읽어주었는데 도중에 나가더시 소파에서 혼자 뛰어놀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현국에게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는 현국이 집을 방문 할 때 우선 여러 권의 책과 장난감, 미술도구를 챙겨갔다. 무엇이든지 일단 현국이의 관심을 끄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상담이 진행되자 현국이는 자연스럽게 한글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또한 관심 없는 것에도 조금씩 집중하는 시간이 늘었다. 이즘에 현국이 어머니가 다른 내용의 상담을 의뢰했다.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현국이를 상담하는 동안 여러 차례 아래층 할머니가 올라왔었다. 그때마다 현국이 어머니는 죄인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현국이 행동을 자제하려고 애썼다. 감정 기복이 심한 현국이가 예민해지지 않도록 일일이 신경 쓰는 모습이 안타까웠고 조심스러웠다. 신경쇠약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교육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는 중요한 시기였기에 더욱 많은 신경을 쓰셨다. 이런 때 현국이에게 행동의 제약을 심하게 주면 오히려 상담받기 전보다 못할까 조심스러워하셨다.     


“지난번 살던 곳보다 지금 사는 이곳이 더 신경 쓰여서 힘들어요. 툭하면 올라오는 아래층 할머니가 미워서 서럽기도 하고요. 아이 키워본 사람은 알잖아요. 더군다나 아파트에서 아이들이 뛰어놀 때마다 부모들이 얼마나 가슴 졸이는지, 매번 혼내고 주의 주어도 그때 만요. 아래층 할머니한테 우리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다는 것까지 말씀드렸는데도 여전히 올라오시니…….”
“힘드시겠어요. 아이의 발달 상태를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고, 서로 불편한 이웃이 되는 것도 힘들실테고요.”
“이사 가는 건 더 힘들어요. 저도 여기에서 이런 소리 듣느니 한적한 시골에서 살고 싶은데 현국이 생각하면 그렇게 하지도 못해요. 뛰어노는 걸 좋아하면서도 아파트를 좋아해요. 숫자를 좋아해서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내리는 것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아시죠? 학교 가기 전에 맨 위층까지 한 번 올라갔다가 학교 가는 거. 학교 마치고 나서 학원 갈 때도 마찬가지고요. 우리 현국이는 새로운 데 적응하는 걸 가장 힘들어하는 아이잖아요. 다른 애들처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겁을 잔뜩 먹는 아이라. 적응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닌 아이예요. 이곳에 이사 온지 아직 3개월도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머, 죄송해요. 선생님께 상담을 부탁해놓고서 이렇게 혼자 떠들었네요.”
“아니에요. 그냥 편하게 말씀 주셔도 돼요. 어머니 가슴이 답답한 것이 아마도 아래층 할머니가 올라오는 것 때문에 더 그러신 것 같아요.”
“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까 정말 답답해요. 아예 나쁜 소리 듣지 않게 이사 가면 좋은데 그것도 현실적으로 되지 않으니까 말이죠. 이사 가면 제 생각만 하는 거잖아요. 아픈 현국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을 써도 모자랄 텐데, 제 마음 편하자고 아이를 망칠 순 없잖아요."
"어머니, 진자 힘드시겠어요.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혹시 다르게 생각해 놓은 것이 있을까요? 대안이라든지 방법을 생각하신 거라도요."
"모르겠어요. 원래는 1층으로 이사 오려고 했어요. 현국이를 위해서. 그런데 계약 날짜가 안 맞더라고요. 그전에 살 때는 항상 1층에 살았어요. 아래층에서 시끄럽다고 올라온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이사 온 이 아파트는 1층도 안 되고, 2층도 안 되고, 계약 날짜는 맞춰야 하고……. 전에 살던 곳이 옆 아파트였거든요. 멀리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나마 1층과 가장 가까운 3층으로 이사 왔는데……."    


현국이 어머니는 한참을 울면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런 현국이 어머니 손을 잡아주었다. 흐느껴 울어서 어깨가 들썩거렸고 등에 땀줄기가 흐르는지 촉촉했다. 나는 아이를 상담할 때 아이만 상담하지 않는다. 의뢰한 분과도 상담하고 부모님과도 후속 상담을 한다. 그러다가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관련기관에 연예해주기도 한다.     


현국이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현국이 어머니는 나에게 아래층 할머니를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고민했다. 어떻게 보면 위험부담이 더 클 만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다.     


한번은 1층 현관문 열리는 곳에서 현국이와 놀고 있는데 아래층 할머니가 운동을 마치고 들어오셨다. 나는 할머니께 인사드렸다. 그랬더니 왜 오늘은 밖에서 아이를 만나느냐고 하는 척을 해오셨다. 날씨가 좋아서 외부 활동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내가 왜 현국이를 만나는지 궁금해하셨다. 나는 간단하게 나를 소개했다.

”저는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책 읽어주는 상담 선생님이에요.“

나를 익히 들어 알고 있다고 하시면서 할머니는 자신에게도 손녀가 있는데 걱정이 있다며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 하셨다. 현국이 상담을 마치고 방문드렸다.     


현국이 집과 같은 구조라 낯설지 않았다. 외국에 나갔던 아들 내외와 손녀가 들어와서 조만간 같이 살지도 모른다고 하셨다. 할머니는 손녀가 한국말을 잘 못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하셨다. 좋은 방법이 있는지 물어오셨다. 또 할머니도 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소설 종류를 즐겨 읽는다고 하셨다. 손녀가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나라에 잇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다며 소개해달라고 하셨다. 손녀 사랑이 대단한 데다 사고가 개방적이어서 말이 잘 통했다.     


다음 주에 현국이 만날 때 아래층 할머니께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렸다. 할머니는 책 선물 받은 게 오랜만이라고, 그림책은 처음이라고, 손녀와 자신을 위한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셨다.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엘리자베트 슈티메르트 글, 카를리네 케르 그림, 유혜자 옮김. 비룡소)     

4인 가족은 전에 살던 집이 비좁아 3층으로 이사를 왔다. 방이 여러 개라 좋았고 환하고 넓어서 무척 마음에 들었다. 형제들은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런데 그 소리에 아래층 할머니가 시끄럽다며 올라왔다. 그날부터 아래층 할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왔다. 의자 끄는 소리가 시끄럽다, 변기 소리가 난다, 생쥐들이 지나가는 줄 알았다 등, 아이들이 노는 소리 외의 일상적인 대화조차 그냥 두질 않았다. 가끔 올라오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지팡이나 빗자루로 천장을 두드려서 소리 없는 잔소리를 했다.      

가족들은 점점 말수가 줄었고 행동도 조심스러워졌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무섭기도 했고 귀찮게 쫓아다니면서 간섭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점점 생쥐처럼 행동했다. 생쥐처럼 기어 다니면서 조금씩만 밥을 먹었고 귓속말로 대화했다.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편하게 행동하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생쥐처럼 행동했다. 자신들 때문에 부모님이 아래층 할머니한테 혼나는 게 무엇보다도 싫었다.     

한편 아래층 할머니는 위층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궁금해졌다. 아무리 신경을 곤두세우고 들어봐도, 문 앞까지 가서 귀 기울여봐도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귀에 문제가 있는가 싶어서 병원에서 진료 받았지만 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하러 밖에 나갔는데 거리에서 만난 한 꼬마 아이가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할머니, 귀가 애 그렇게 커요?“ 할머니는 이 말을 듣기 전까지 자신의 귀가 거진 것도 몰랐던 것이다.     

다음 날도 위층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들어보려 애썼지만 역시나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천장에 귀가 닿을 수 있도록 의자 위에 높이 높이 책을 쌓았다. 할머니 귀는 너무 커져서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가 되었다. 결국 의사 선생님에게 다시 갔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억지로 들으려고 해서 ‘못 들어서 생기는 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선생님은 위층 집에 쪽지를 밀어 넣었다.


‘아래층 할머니가 못 들어서 생기는 병에 걸렸는데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야 나을 수 있으니 도와주세요.’     

위층 가족은 할머니를 도와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모처럼 마음껏 뛰어놀았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소리 지르며 신나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 아이들은 다시 찾은 행복에 즐거웠다. 아래층 할머니 역시 귀를 쫑긋 세우지 않아도 들을 수 있어 편했고 즐거웠다. 점점 할머니의 귀가 작아졌다. 귀가 정상으로 돌아오자 용기를 낸 할머니가 먼저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얘들아, 안녕!"  


나는 현국이 아래층 할머니에게 이 책을 선물로 전해줄 때, 이 그림책에 나오는 의사 선생님처럼, 책 뒤에 작은 쪽지를 써서 넣었다.   

  

할머니. 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저는 사람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거든요. 위층 현국이를 만난 인연으로 할머니와도 좋은 인연이 되었습니다. 지난번 타주신 커피 감사합니다. 현국이 어머니와도 커핀 한잔하시면 어떨까요? 현국이를 사랑하는 제가 할머니께 어려운 첫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 손녀를 위한 그림책 몇 권을 준비해가겠습니다. 다음 주에 반가운 얼굴로 뵙겠습니다.  

        

현국이는 한글을 떼면서부터 점차 고집이 줄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더 화내고 짜증내며 발 굴렀던 것도 나아졌다. 말로 표현할 수 있게 되고 휴대폰으로 문자도 보낼 수 있게 되면서 현국이의 행동이 부드러워졌다. 특히 화날 때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자주 사용했던 행동, 뒤꿈치로 방바닥 두드리는 행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서 다행이었다. 더불어 아래층 할머니가 올라오는 횟수도 줄어들어 서로 왕래하는 이웃이 되었다. 할머니는 지금 아들 내외와 손주가 귀국해서 함께 사는 재미에 바지셨다고 한다.     


층간 소음은 자칫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큰 소음이 날 만한 일은 낮에 한다든지, 평일 밤 밖에 시간이 없다면 휴일 낮에 하는 것도 지혜라고 본다. 덧붙이자면, 서로 조금씩 이해하고 한 발 물러선다면 미간 찌푸리는 일보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감정이 섬세한 것과 신경이 예민한 것은 단어 하나 차이지만 엄연한 차이다. 감정이 섬세하여 타인의 마음도 이해해주는 그런 하루였으면 좋겠다.




이 글은

제가 2010년에 쓴 <엄마랑 아이랑 책에서 해답찾기> 책이 2020년 계약만료로 절판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목차별로 원고 수정 및 재작성하여 쓴 글입니다. 2월부터 책의 한 꼭지씩을 올리고 있어요. 아이를 육아하고 계시는 양육자분들, 상담현장에 계시는 분들께 도움되면 좋겠습니다. 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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