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카 Sukha Sep 29. 2020

엄마의 엄마

집에서 쉬지 않는 명절


추석이다.


오랫동안 나에게 명절은 4인용 차의 뒷좌석을 언니, 남동생과 꾸역꾸역  낑겨 앉아 열몇 시간을 버텨야 했던 겹고도 고통스러운 귀 기억되는 것이었다.


더 이상 좁은 차를 나누어 타지 않아도 되게 됐던 때는 아빠가 자식 된 도리를 운운하며 가기 싫어하는 자식들에게 호되게 혼을 내는 것을 그만두었을 무렵이었다. 머지않아 그때그때 상황이 되는 자식 한 명만 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고, 나왜 자식을 셋이나 나은 거냐는 좁은 뒷좌석 시절의 투덜거림 자식이 세명이나 되니까 이럴 땐 좋다는 농담으로 바얼거리곤 했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변화하던 우리 집 명절 방침올해 드디어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쉰다'가 되었.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좁은 뒷좌석에서 갇혀있는 시간이 그리워진 것은 전혀 아니었고, 자식 중 유일하게 내려온 한 명이 되어 특별취급을 받는 것이 아쉬웠던 것도 아니었다. '아무 데도 가지 않고 집에서 쉰다' '않고' 사 '못하니까'였기 때문이다.


.


할머니가 넘어지신 건 한 달 전쯤이었다.  몇 년 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던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했고, 그런 할머니가 혼자 지내시는 게  마음에 쓰여 엄마는 매일같이 전화를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아침 먹었어? 어제 잠은 푹잤고?"


평소처럼 할머니에게 안부를 물은 엄마는 전화를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모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가 부엌으로 가던 길에 넘어지셨, 수술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어쩌면... 할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고 했다.


그날 밤, 엄마는 많이 울었다. 그날 밤뿐 아니라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계속 울었다.  때문에 계속 바쁘다가 이제야 시간이 좀 났는데, 왜 진작 올라가서 곁에 있지 않고 미루다가 이 사단을 냈을까 하며 자책했다. 엄마 탓이 아니라는 내 말은 저 공허하게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살짝 술에 취해 엄마 말했다.

"부모는 어쩔 수 없이 부모고, 자식은 어쩔 수 없이 자식이야. 할머니가 이렇게 되셨는데도 엄마한테는 너네가 더 우선이야. 그래서 너무 죄스럽고 속상해..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


엄마 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나중엔 너도 알게 될 거야. 덧붙여진 엄마의 말쓴 미소가 마음으로 와 박혔다. 아니라고, 엄마 마음 나도 다 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엄마 말처럼 사실 잘 모르겠어서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아는 건 엄마의 잠긴 목소리와 젖은 눈빛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란 것뿐이었다.


.


그로부터 일주일 후, 다행히 할머니의 수술은 잘 됐다고 했다. 다만 코로나 때문에 병원 면회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그 사실이 엄마를 더 괴롭히는 듯했다. 올해의 명절이 집에 서 쉬는 명절이 된 것은 그렇게 된 일이었다.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댁.

면회가 허락되지 않은 병원.

아무 곳도 가지 해서 찾아온 집에서 쉬는 명절.


나는 어쩐지 그렇게 듣기 싫었던 아빠의 자식 된 도리 운운이 조금 그리웠다. 그 도리를 조금이라도 고 싶어서, '할머니 댁에 가게 해주세요. 올해가 아니어도 좋으니 내년부터는 다시 그런 평범한 날들 오게 해 주세요.'하고 소망했다. 그래 엄마가 할머니에게, 엄마의 엄마에게 그 자식 된 도리를 다할 수 있게 되어서 더 이상 속상해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어쩌면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나의 철없음이 조금이나마 덜 죄송해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하며.

 

.


바람이 이루어진 것일까. 모두들 엄마와 같은 심정이었던 행동파 이모는 평생 마음에 걸릴 것 같다며 할머니를 퇴원시켜버렸다. 만약 병원에서 다시 안 받아준다면 자신이 할머니 곁에 24시간 붙어 또 다른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보살피겠다고 선언했다.


그렇게 올 추석은 여느 때와 같이, 아니 어느덧 한참 지나버린 어릴 적 명절 추억처럼 모두 함께 좁은 차에 끼여 타고 할머니 댁에 가게 되었다. 명절을 쇠러 가기로 결정 나자 은 다시 분주해졌다. 가져갈 음식 준비로 정신이 없다며 마는 투덜거다. 그런 엄활기차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솔직한 글, 노정석의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