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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카 Sukha Aug 25. 2020

솔직한 글, 노정석의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


솔직한



얼마 전 생일 선물로 교보문고 기프트카드 5만 원권을 받았다. "삶이 비록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줘도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내는 너는 그 누구보다 강하고 따뜻해"라는 작은 카드와 함께.


갖고 싶은 책도, 읽고 싶은 책도, 읽어야 할 책도 늘 넘치는 나라서 5만 원을 채울 만큼의 책을 고르는 것은 단지 가득 차있는 장바구니를 확인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같이 온 말이 소중한만큼 의미 있게 남을 책을 고르고 싶어서 신중하게 한 권 한 권을 골랐다.


삼파장은 아니지만 형광등 아래서 찍어본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


노정석의 『삼파장 형광등 아래서 -고등학생 A의 기록들-』은 그렇게 고른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집 근처 독립서점에서 글쓰기에 참고할 만한 에세이 서적들을 뒤적거리다가 알게 됐다. 가볍게 훑어본 후 들었던 생각은 '솔직하다.', 그리고 '나중에 사서 제대로 읽어야지.'로 두 가지. 그렇게 생각한 게 벌써 넉 달 전이니 제대로 읽기 위해 꽤 오래 묵혀둔 셈이다. 그렇게 묵혀뒀던 책을 드디어 읽을 때가 온 것 같아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제 때를 맞아 마침내 읽은 책이 준 느낌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솔직하다.'였다.


솔직함은 커다란 매력이자 용기다. 서툴지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솔직한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담백하고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고 싶지만 글을 쓰다 보면 늘 내 글이 모자라 보이고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감추고 또 꾸미게 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꼭 솔직하게 써야지 다짐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지만, 쓰다 보면 결국 글 속에 하나둘씩 미사여구를 집어넣고 글의 몸짓보다도 큰 의미를 애써 부여하고야 만다.


그래서 고등학생으로서의 자신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감추려 하지도 않는 노정석의 글들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는 고등학생 A 로서 지금 그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생각들을 에세이로, 시로, 일기로 자유롭게 기록하고 공유한다. 글을 읽다 보면 그의 깊이 있는 사유가 놀랍긴 하지만 분명 한국에서 아침에 일어나 수업을 듣고 입시를 준비하는 한 명의 학생으로서 하는 생각들임을 볼 수 있다. 고등학생 때 치열하게 생각했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잊어버린 대한민국의 잘못된 입시제도에 대한 고민과 비판,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 공부만 반복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나오는 두려움과 답답함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청소년으로서만 할 수 있는 이상적이면서도 용기 있는 생각들. 모두 다 지나간 내 모습들이었고 그래서 그리운 것들이었다.


고등학생 때 브런치에 글을 쓴 그처럼, 나도 고등학생 때 블로그에 글을 썼다. 나는 그 글들이 읽히길 바랐지만 부끄럽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비공개로 올렸다. 가끔 용기 내어 공개한 몇몇의 글들도 대학생이 된 후 흑역사로 치부해버리고 전부 비공개로 돌려버렸다. 이런 나한테 자신의 어린 생각을 망설임 없이 공유한 그의 태도는 존경스럽다. "노정석 작가는 고등학생이지만 나에게는 이미 대학에서 나와 만나게 된 새로운 지도교수 중 한 명이다."라는 출판사 정미소 대표 김민섭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계속해서 내 글들을 삭제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가만히 양치질을 하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갑자기 '아 부끄러워. 다 지워버릴까?'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오늘도 그랬다. 글을 쓰겠다고 앉아있자니 이 모든 게 헛된 시간낭비이자 스스로의 흑역사 생성처럼 느껴져서 몇 시간을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래도 어린 고등학생, 노정석의 생각들이 기록된 것처럼 나의 현재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썼다. 다른 글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하면서.



*노정석의 브런치 주소

https://brunch.co.kr/@jacob0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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