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봉조목

by 이성화

내가 만약 실력이 좋은, 멋진 솜씨를 가진 화가라면 그려 보고 싶은 그림이 있다.

방바닥에 뿌리내리고 앉은 할매의 모습이다. 할매는 바느질을 한다. 무릎 덮개 위에 그날의 일감인 니트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옷의 소매를 모아 쥐고 나비 봉조를 한다. 오른쪽엔 완성된 옷이 열 장씩 묶음으로 개켜져 있고 왼쪽엔 다소 너저분한 미완성 옷들이 할매의 손길을 기다린다. 위로는 바늘땀으로 만들어진 나무가 줄기를 뻗어 올라가고 매달린 가지에는 완성된 반듯한 옷들이 걸려 흔들린다. 옷들은 저마다 자태를 뽐낸다. 각종 브랜드의 태그를 잎사귀처럼 대롱대롱 매달고. 방바닥 아래로 할매의 손끝, 바늘에서 시작된 알록달록 색실들이 뿌리를 내린다. 할매가 기대앉은 고목은 그대로 할매의 몸이다. 그 모습을 아름다운 풍경이나 수채화가 아닌 산업 포스터처럼 그려 보고 싶다. 세련되고 우아한 이미지로.


남편은 30~40평 남짓한 작은 니트 가공 공장 사장이다. ‘갑’인 브랜드에서 일감을 받은 ‘을’ 프로모션을 다시 ‘갑’으로 모시는 제일 아래 하도급 공장이다. 처음 일을 시작했던 때는 직원만 7~8명이었는데, 몇 번 가공비를 통째로 뜯기고 난 뒤로 직원 둘, 남편과 나만 남았다. 10여 명이 하던 일을 넷이 하려니 각다분했다. 그런 우리에게도 ‘을’이 존재했다. 니트 가공의 특성상 지퍼, 단추, 자수, 사시, 봉조 등 밖에서 일부 만들어 줘야 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중 내가 그리고픈 할매는 상계동 봉조 할매의 모습이다.

남편은 자기 몸이 들어가고도 남을 커다란 봉지에 일거리를 가득 싸 들고 상계동으로 갔다. 할매는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같은 기술을 가진 다른 할매와 함께 일감을 받아 내렸다. 젊은 내가 들어도 ‘헉’ 소리가 나는 무거운 짐을 구부정한 허리로 받아 일감을 펼쳤다.

“이거 A 사장이 내일 아침까지 납품 가야 한다고 생난리야.”

남편의 투정 섞인 재촉을 할매는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아이고, 할매들 또 밤샘 시킬라고? 늙어서 잠 없다고 아예 안 재울라는갑네.”

“헤헤, 미안혀요.”

“내일 새벽에 가지러 와요.”

“고마워요.”

짧은 농담과 일감을 던져 놓고 남편이 나왔다.

할매는 봉지봉지 쌓인 일감을 정리해 쌓아 놓는다. 늘 하던 일이니 어려울 것도 없다. 정리가 끝나고 앉으면 손에 바늘을 들고 뿌리를 내린다. 소매 양 끝, 양쪽 밑단과 에리. 천을 끊어 만드는 옷과 달리 니트 옷에는 마무리를 손으로 해야 하는 부분들이 많다. 그런 옷을 사 본 적은 없지만, 브랜드명을 줄줄 꿴다. 비싼 브랜드 옷일수록 손 봉조가 많은 까닭이다. 할매는 온종일 앉아 사면 봉조와 에리 봉조에 열중한다.

만들 수 있는 양은 때마다 다르다. 브랜드마다 주문하는 내용이 각각 달라서다. 꼼꼼하게 하라든지 조금 대충 하더라도 빨리하라든지. 그렇게 하루에 수십 장에서 수백 장을 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많은 양의 일을 하지 못한다. 나이 들어 실력이 줄어서가 아니다. 잘난 척하는 젊은것들보다 얼마든지 더 많이 더 오래 바느질을 할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은 애들도 챙겨야 하고 놀러도 가야 하고 피곤하고……. 3일만 야근을 해도 힘들다고 난리들이다.

할매가 젊어 한창 일을 할 때는 야근은 늘 하는 일이었고 철야도 심심찮게 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그렇게 일해서 새끼들 키워 냈으니까. 일만 가져다준다면야 몇 날 밤쯤은 거뜬하다. 일을 많이 못 하는 건 일감이 줄어들고 있어서다. 세상 좋아져 기계가 대신해 줘서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할매의 손바느질을 당할 수 없다. 저임금 국가에서 일을 많이 해 오기도 하지만 그눔의 경기 침체가 계속되어 일거리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할매가 그렇게 바느질로 사는 동안 많은 사장이 돈을 벌어 이 바닥을 뜨기도 하고 망해 사라지기도 했다. 온종일 일해서 받은 부업비는 백화점에 걸린, 할매 손으로 만든 니트 한 장도 못 사는 금액이다. 할매는 최저임금을 받았다. 때론 최저임금도 채우지 못했다. 할매에게 ‘갑’인 하도급 공장을 운영하는 우리도 할 말은 있다. 브랜드 옷이 29만 8000원이니 38만 9000원이니, 심지어 60~70 얼마짜리 태그를 달고 나가도 우리가 받는 가공비는 기껏해야 5000~6000원, 많아야 1~2만 원이 고작이다. 그래서 할매는 옷 한 벌에 고작 몇백 원 받고 하루에 100여 장 꿰매어 몇만 원. 한 달 내내 일해 봐야 일 없는 날을 제외하면 몇십만 원, 혹은 100만 원 겨우 채우는 일을 말없이 했다. 그래야 손주 과잣값이라도 쥐여 주고 쓸모없는 노친네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이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고 일하는 할매들의 모습 속에서 나는 과거 우리 엄마를 보고 내 미래를 보았다. 우리 엄마는 건물 청소를 하셨더랬다. 역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서 우리를 키웠다. 남편은 새벽같이 나가서 밤늦게까지 일했다. 나는 아이들을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장판이 된 집을 조금 덜 난장판으로 만들고 남편을 따라나섰다. 그러고는 이제 껍데기만 남은 친정 엄마가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이들을 돌보다 지칠 때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결혼 전엔 공장 근처에도 안 가 봤던 내가 공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시다였다. 쪽가위질이 힘들었지만 다른 일을 할 겨를도 새로운 시다에게 줄 월급도 없었다. 그저 곁눈질로 일을 배우며 온종일 쪽가위를 들고 공장을 종종거렸다.

더는 서 있을 힘도 없을 때쯤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난장판이 된 집을 조금 덜 난장판으로 만들고 아이들을 조금 안아 주고 재웠다. 집안일, 휴식, 취침을 조금씩 하고 나면 다시 하루 시작이었다. 우리 부부의 수입은 사업 시작하면서 얻은 은행 빚과 떼먹힌 가공비 때문에 생긴 지인들의 빚도 갚기 버거웠고 생활 수준은 최저 생계였다. 남편의 성실함과 가공 실력, 젊음을 믿고 열심히는 했지만 내가 할매가 되었을 때 상계 할매처럼 쪽가위 하나 들고 미싱대 앞 시다 다이에 뿌리내리면 어쩌나 겁이 났다. 늘 두려웠다.

상계 할매의 모습을 상상으로나마 그려 보며 생각했다. 고목이 고목이라 불리며 울타리를 거창하게 두르고 몇백 년 된 무슨 무슨 목이라 칭송받는 게 몇 그루나 되겠는가. 그렇게 굵게 오래 살아남지 않은 나무여도 의미가 있고 눈물을 담고 있다면, 늙어져 휘어진 가지 하나만 가지고 있다면, 고목으로 인정해 주어도 좋지 않겠는가. 어떤 모습도 그들 안에서는 나름의 의미와 이유가 있을 거니까.

봉조의 여러 이름 중 나비 봉조란 말이 참 마음에 든다. 할매의 인생이 방바닥에 뿌리내려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면, 다음 생에는 평생 꿰매었던 수천수만의 아름다운 나비이길 바라 본다. 이번 생에는 손에서 바늘 떨어뜨리는 순간까지, 한 땀 한 땀 엮어 꿰매 올린 고목 밑에 그대로 한 줌 흙이 되는 날까지 쉴 새 없이 바느질할 테지만 말이다.


훗날 정말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다면, 산업현장에 화려한 젊음을 바친 할매를 그린 그 그림에 ‘나비 봉조목’이란 푯말 하나 세워 주고 싶다. 그 옆 작은 아기 나무에 ‘시다목'이라 수줍은 푯말도 하나 세워 보련다. 나의 할매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 의미 있는 고목이길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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