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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화 Mar 22. 2024

0.1%의 영감

2018년

  “수필은 어쨌든 자기 생활 얘기를 주로 쓰게 되니까, 어쩔 수 없이 ‘사연 팔이’를 하게 되는데, 몇 년 쓰니까 그런 소재를 계속 다루는 건 맘에 안 차고, 인문학 지식이 딸려서 그런지 고급진 글은 안 나오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세상에 널린 게 다 글쓰기의 소재라지만, 그것을 반짝거리게 가공하는 건 쉽지 않은 문제였다. 하루 삼시 세끼 밥 먹는 것처럼 일정한 시간에 주기적으로 번쩍번쩍 뭔가 떠올라 주면 좋겠지만, 영감(靈感)님은 좀처럼 자주 와 주지 않았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라는 에디슨의 명언을 대부분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이와 달리 그의 실제 의도는 1%의 영감이 없으면 99% 노력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다. 1932년 「하퍼스 매거진」에 실린 문장의 전문 해석(나무위키 참조)을 보며 에디슨의 의도를 파악해 보자면 분명한 동기, 목표를 가지고 필요한 것을 발견해서 발명의 방향을 잡고(1%의 영감), 끊임없는 노력으로 발명을 해 왔다는 것(99%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천재들끼리는 분야가 달라도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 베토벤의 생애를 보면 에디슨의 이 명언에 딱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토벤의 작품은 일상생활에서도 많이 들을 수 있어서 나처럼 음악 전문가가 아닌 사람에게도 익숙한 곡들이 많다. 그중 「월광 소나타」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서번트 증후군을 앓는 자폐아, 진태 역을 맡은 박정민의 연기와 어우러져 인상에 깊이 남았다.

  영화에서 진태는 엄마가 지방에 일하러 간 사이 ― 사실은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간 사이 ― 17년 만에 만난 형 조하(이병헌)와 지내게 된다. 캐나다로 가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려고 아르바이트 중이었던 조하는 진태에게 전단 나눠 주는 일을 시킨다. 바로 옆 길목에서 먼저 일을 마친 조하가 진태를 데리러 갔으나, 보이질 않는다. 이때 진태는 대학로 거리에 놓인 피아노를 보고 낯선 장소임에도 마치 제집인 양 익숙한 모습으로 그 앞에 앉는다. 그런데 왜 하필 「월광 소나타」 ‘3악장’이었을까?


  베토벤의 달빛은 1악장에서는 아주 조용히 흐른다. 구름 속에 희미하게 존재를 감추고 있다가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은은하게 드러나는 달빛이다. 새벽녘에 잠시 떴다 사라지는 그믐달처럼 금방이라도 스러질 듯하다.

  2악장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마냥 조용하기만 한 달빛이 아니다. 1악장이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었다면 2악장은 애써 눈물을 감추고 화사하게 웃으며 내는 밝은 목소리다. 이어지는 3악장부터는 달의 외침이고 절규다. 분노하고 절망하는 울부짖음이다.

  베토벤의 삶이 평탄했더라면, 그런 울부짖음이 나올 수 있었을까? 귓병이 시작되던 시기에 작곡했기에 터져 나오는 달빛의 절규를 들려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소나타의 각 악장이 계속해서 슬픔만 표현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어떤 힘든 일을 겪는다 해도 24시간, 한 달, 1년 내내 눈물을 흘리진 않는다. 모친상을 치르면서도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꾸벅꾸벅 졸게 되는 것처럼. 이 곡도 때론 슬며시 웃음 짓고, 잠시 눈을 감고 쉬기도 한다. 채 20분이 안 되는 소나타 안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진태는 유일한 보호자이자 세상 전부와도 같은 엄마를 잃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 물론 본인은 알지 못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기도 모르게 감지했던 위험, 불안, 공포 등이 무의식적으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3악장으로 표현되어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에 더해 진태를 잃어버리고 당황하여 길을 헤매는 조하의 표정은 그저 17년 만에 처음 보게 된 동생을 잃었다는 처지뿐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그의 현재와 맞물려 영화에 긴장감을 더한다. 두 형제의 상황과 심정, 심리에 꼭 맞는 곡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면 자막으로 ‘음악 감독 베토벤’이라고 나올 것만 같다.     


  베토벤은 이렇게 세대를 넘나드는 명작의 영감을 어디서 가져온 것일까. 바이올리니스트 슈뢰서(Louis Schlösser)와의 대화에서 짐작해 볼 수 있었다. 그는 “내 생각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지니고 다니지. 어떤 때는 아주 오랫동안 지니고 다닌다네. 그런 후에 작품으로 기록한다네. (중략) 이 기본 주제는 생성하여 자라서 전체의 구도가 마치 하나의 조각품으로 주조해 놓은 것처럼 모양을 갖추고 내 앞에 나타난다네. 그래서 나에게 남은 일은 그것을 기록하는 일뿐이지. 이 작업은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신속하게 진행된다네. (중략) 아이디어는 예기치 못하게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온다네.”라고 했다.

  작가로서 그가 느꼈던 영감을 1%, 아니 0.1%라도 불러오고 싶은 마음에 몇 날 며칠 「월광」을 끼고 지냈다. 달빛에 파묻혀 지낸 지 3주쯤 됐을 때였다. 3악장의 초입에서 뭔지 모를 갈급함으로 답답하던 차에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다.


  달밤에 시커먼 망토를 휘날리며 벼랑 끝에 서 있는 새하얀 얼굴의 여자였다. 참을 수 없는 흡혈의 욕구로 당장이라도 뾰족한 이를 드러내고 달빛을 배경 삼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금방이라도 떠오를지 모를 아침 햇살에 한 줌 재가 되어 버릴까 두려워하면서도, 충족되지 않으면 누구라도 찢어발기고 싶을 만큼 성난 욕망을 간신히 참으며 버티고 있는 흡혈귀.

  뜬금없고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영감님이 날아왔다. 우리나라에도 흡혈 귀신이 있나. 처녀 귀신을 AI 시대 버전으로 진화라도 시켜야 하는 건가. 이걸 어떻게 수필로 쓰지. 소설이나 드라마를 시도해야 하나. 기대한 바와 다른 영감님의 등장에 순간 당황했다. 어쨌든 베토벤이 불러 준 0.1%의 영감을 붙들었으니, 하나의 조각품으로 자라날 때까지 99.9%의 노력이 남았다.


  당분간, 어쩌면 아주 오래도록 내 마음속엔 까만 망토, 얼굴 허연 여자가 자리 잡고 있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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